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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의 삼별초 뱃길 탐험

삼별초가 오키나와에서 부활할 것을 믿으며

[삼별초는 오키나와(유구) 왕국의 탄생 주역들] 1

[한국문화신문=채바다 삼별초뱃길탐험대장]  제주도는 항해학적으로 한반도와 중국일본으로 이어지는 항로상에서 중요한 등대와 나침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삼별초의 해상 활동은 해상 왕국, 탐라의 위상을 찾아 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삼별초의 마지막 활동 무대가 제주로 알려 졌다 그러나 이들은 또 다른 신세계를 꿈꾸며 오키나와 유구왕국(流球王國)의 탄생 주역일 가능성을 뒷받침 하는 증표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에 따른 연구와 관심들이 높아진다. 

 

   
▲ 제주 항파두리항몽유적지 제공

   
▲ 제주 항파두리항몽유적지 제공

2007년 제주 국립박물관에서 <탐라와 유구(琉球) 왕국> 해양문물교류특별전은 이러한 가능성을 점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때 전시된 유물 가운데 연하문와당 계유년고려와장조(癸酉年 高麗瓦匠造)”라고 새겨져 고려 장인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수막쇠와 깨어진 기와장은 주목 받기에 충분 하였다  

고려 관군과 유라시아를 정복한 세계 최고의 몽골 제국에 맞서서 고려를 지키겠다는 삼별의 발자취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 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서 사라진 유일한 대형 집단으로 떠오른 해양 세력이 삼별초이기에 그러 하다.  

필자는 당시 유물 전시와 학술 세미나를 참관 하면서 언젠가 이들을 추적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다른 항해 준비로 미루던 차에 이들의 제주-추자-진도로 이어지는 뱃길 탐험에 나서기로 작심하였다. 선박을 준비하고 팀을 구성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여러 차례 떼배를 타고 항해를 하였지만 강화도-진도 항해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제주-추자-진도를 이어지는 왕복 항해로 700년 뱃길 도전에 나섰다.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서둘렀다 

 

   
▲ 고려 청자운반 마도선 복원(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 고려과선(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그 첫 시도가 2011924일부터 30일까지 7일 동안 제주-추자도-진도로 이어지는 왕복 뱃길 계획을 잡았다 (항해일기는 금명간 출판 예정) 이 항해는 종전에 통나무 떼배를 이용한 것과는 다르게 5-60년 전 옛 풍선(風船)을 타고 갔다. 길이 5m, 2m, 1, 0.9톤에 지나지 않는 탐험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최소형 전통 목선(木船)이다. 

이 글은 필자가 제주-진도 삼별초 뱃길 탐험과 오키나와 구스크성 현장들을 살펴보면서 얻어진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제주와 진도 그리고 오키나와 옛 성곽을 만난 것은 여러해 전, 대동강에 위치한 고구려의 평양성을 떠올리는 기회가 되었다. 

국립 제주 박물관의 오키나와 유물 전시회 이후 진도 용장성 그리고 항파두리, 오키나와 구스쿠성 으로 이어진 여정은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들을 하나씩 벗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700년 뭍과 바다 한 가운데 깊숙이 뭍혀 있는 이들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이미 남긴 유물은 소중한 문화이며 역사이며 숨결이다. 이들의 생활상과 풍습과 제도 그리고 건축 기술과 디자인 세계를 살필 수 있는 타임 캡술이 개성, 강화, 진도, 제주, 오키나와에 살아 있다 

 

   
▲ 제주 환해장성(제주시 제공)

   
▲ 진도 용장산성 표지석(진도군청 제공)

윤용혁 교수(공주대), 임영진 교수(전남대 고고학문화인류학)가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면서 삼별초, 오키나와 이동설을 꾸준히 알려 온 것은 필자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나의 삼별초 여정에서 이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최부의 표해록은 제주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가 닿은 곳은 뜻밖에도 절강성 영파 부근이다. 제주도 출신 장한철은 표류해서 오키나와 남쪽까지 떠갔다. 그밖에도 오키나와로 표류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있다. 제주와 오키나와가 표류와 항해사에서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삼별초의 이동사 연구에도 도움이 주고 있는 대목이다. 

개경 환도에 불복하여 고려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화도에서 1천여척의 선단을 이끌고 진도와 제주로 이어지는 이들의 해양 이동사에서 고려의 선박, 조선 기술과 뛰어난 항해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멀지 않아 삼별초가 오키나와에서 부활하리라는 것을 믿게 해준다.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패자의 역사는 언제나 지워지고 빛을 잃었다. 이들의 눈부신 해양 활동사를 복원하는 출구를 기대하면서 뱃길 탐험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