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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의 삼별초 뱃길 탐험

삼별초 드디어 제주에 상륙하다

[삼별초는 오키나와(유구) 왕국의 탄생 주역들] 3

[한국문화신문=채바다 삼별초뱃길탐험대장]  원종 12(1271) 삼별초가 진도에 상륙하여 본격적인 왕국을 건설하기 전부터 탐라의 거점 확보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고려 관군과 삼별초 별동군 사이에 벌어진 동제원을 중심으로 한 송담천 전투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고려 관군도 삼별초의 기습 상륙에 대한 사전 정보들을 미리 알고 있어서 그 공방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배하기 전에 선발대의 제주 상륙은 이들의 해양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신속성이다. 삼별초는 동서 남해안 섬뿐만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상대의 허를 찔러서 거점을 선점 하는 것은 어느 전쟁에서도 만나는 상황들이다. 관군과 삼별초의 관건은 진지 구축에 있었다. 두 세력이 물러 설수 없는 방어 수단이다.   

삼별초와 환해장성(環海長城) 

환해장성은 말 그대로 해안선을 따라서 섬을 길게 두른 긴 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정부가 삼별초의 상륙을 막기 위해서 주민들을 동원하여 12709월부터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성의 길이가 120여 킬로미터로써 제주도 전체 해안선, 절반에 가깝다. 해안 절벽을 제외하고 배가 닿기 쉬운 곳이라면 장성을 쌓은 것이다. 제주의 천리장성이라 부를 만하다 

 

   
▲ 제주시 화북1동의 제주도 기념물 제49-2호 별도환해장성 (別刀環海長城), 문화재청 제공
 
   
▲ 제주 성산읍 온평리 해안 환해장성

12708월 삼별초가 진도에 상륙할 당시 제주에는 영암부사 김수가 200명의 장병을 지휘하면서 주민들을 동원하여 방비에 주력하고 있었다. 개경 정부는 삼별초의 위세가 생각보다 높아지자 9월 중순경 고여림 장군에게 700여 명의 군사를 주어 제주에 급파했다. 김석익(金錫翼, 1885~1956)이 쓴 탐라기년(耽羅紀年)에 삼별초 상륙을 막기 위해서 곧바로 해안선을 따라 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삼별초는 개경정부의 이러한 방어조치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삼별초는 진도와 연계하여 자신들의 최후 거점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곳으로 판단되어 113일 별동대장 이문경은 삼별초를 거느리고 미리부터 제주로 갔다.  

그는 한림읍 명월포에 상륙하여 제주성을 관통하지 않고 외곽으로 돌아 동제원(현재 화북동)에 진을 쳤다. 삼별초 주력 부대가 진도에 진을 친 지 불과 석 달 뒤인 127011월이다. 이들의 공격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 놀랍기만 하다, 전쟁은 예상을 뛰어 넘는 전략이 항상 우세 한 것처럼 날렵하게 제주로 선수를 치고 들어갔다 

  

   
▲ 동제원(東濟院) 전적지삼별초와 고려관군이 결전을 벌인 격전지. 1270년(원종 11) 명월포로 상륙해온 이문경 장군의 삼별초를 맞아 고려관군은 이 동제원에 주진지를 구축하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고여림 장군, 김수 영광 부사 등이 전사하고 관군은 전멸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삼별초는 제주도를 점령하고 2년여에 걸친 여원연합군과 항쟁을 벌이게 된다.

   
▲ 삼별초와 여원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송담천. 제주됴육대학과 오현고등학교 사이에 있으며, 지금은 별도교가 가로지른다.

지금 환해장성은 옛 모습은 많이 훼손 되었지만 소중한 유산이며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제주시 북쪽으로 애월읍 고내리, 동쪽으로는 조천, 함덕으로 옛 모습들을 살펴 볼수 있다. 성산읍 온평리와 신산리 해안도로에서 만나게 된다. 서귀포와 대정으로 가면 일과리, 영락리 등에도 그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 높이는 2미터 안팎이다. 조천과 함덕 사이 해안 도로에는 3-4미터 되는 곳도 있다. 이런 장성 쌓기에 동원된 제주 백성들은 큰 흉년과 함께 큰 고통이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환해장성은 그 뒤 왜구에 시달리던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성벽을 수리하고 축조하는 공력을 들였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헌종 11(1845) 이양선(異樣船, 조선 후기 우리나라 바다에 나타난 외국배) 출몰 때문에 환해장성을 수리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 김석익(金錫翼, 1885~1956)이 쓴 《탐라기년(耽羅紀年)》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