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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의 꿈, 세종은 햇무리에 앉아 있었다

[김슬옹의 세종한글이야기]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위인들의 태몽은 위인전의 첫머리를 장식하곤 한다. 필자도 어렸을 때 위인전을 읽고 위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태몽을 어머니께 여쭈었다가 기억이 안 난다는 어머니 말씀에 낙담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위인 중의 위인 세종의 태몽이 궁금했다.

이러 저리 찾아보니 여럿 기록들에 세종의 어머니인 민씨(훗날 원경왕후)가 햇무리 한가운데 세종이 앉아 있는 꿈을 꾸고 세종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더 조사해 보니 사실 이 꿈 이야기는 태몽이 아니라 세종이 네 살 때인 1400년 2차 왕자의 난 때 어머니 민씨가 꾼 꿈이었다.

 

   
▲ 이방원의 비 민씨(뒷날 원경왕후)가 꿈을 꾸니 햇무리가 있었고, 그 안에 막동(세종)이 앉아 있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세종은 조선왕조가 세워진 지 5년째 되던 1397년에 태어났지만 곧바로 정치 격랑의 회오리 속에서 자라난다. 두 살 때인 1398년에 아버지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 방번’ 두 이복동생과 정도전 쪽 사람들을 없애는 피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조는 물러나고 1398년에 정종이 즉위하고 1400년에 이방원이 친형인 이방간 파를 제거하는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던 것이다. 바로 이때의 기록인 《정종실록》 정종 2년(1400년) 1월 28일자 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있다.

부인(세종의 어머니 민씨)이 이웃에 사는 점치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어제 밤 새벽녘 꿈에, 내가 신교(新敎)의 옛집에 있다가 보니, 해가 공중에 있었는데, 아기 막동이(세종의 아이 때 이름)가 햇무리 가운데에 앉아 있었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하니, 점치는 사람이 말하기를,
"공[이방원]이 마땅히 임금이 되어서 항상 이 아기를 안아 줄 징조입니다.( 夫人謂婆曰: "昨夜之曉夢, 我在新敎舊宅, 見太陽在空。 兒莫同 【今上兒諱】 正坐日輪之中, 是何兆也?" 婆判曰: "公當爲王, 常抱此兒之應也。)

이 말은 2차 왕자의 난중에 부인이 꿈을 얘기하고 이에 점치는 이웃 사람이 대답한 내용이다. 해 곧 남편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을 암시하고 햇무리는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될 세종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의 기록이 《세종실록》 맨 앞에 있는 총서에 “처음에 상왕이 잠저에 있을 적에 원경왕후의 꿈에 태종이 임금을 안고 햇무리 가운데 앉아 있어 보이더니, 얼마 안 있어 태종이 왕위에 올랐고, 이에 이르러 임금이 또 왕위를 계승하였다.(初, 上王在潛邸, 元敬王后夢, 太宗抱上, 坐於日輪中, 未幾太宗踐阼, 至是, 上又嗣位.)”라고 거의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2차 왕자의 난 때의 꿈 이야기가 태몽으로 와전된 듯하다. 위인 중의 위인인 세종의 태몽 기록은 실제 없다. 그러나 세종이 죽을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왕자의 난중에 꾼 꿈이야말로 상서로운 꿈으로 태몽 그 이상의 꿈의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다. 어찌 되었건 충녕대군은 아버지 이방원 곧 태종의 후광으로 왕위에 올라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자 문제를 해결한 꿈 속 이야기와 같은 인류의 빛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