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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물일곱 가지 낱말들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14]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사람을 몸으로만 보면 누리 안에 잠시 머무는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사람은 온 누리를 모두 받아들여 갈무리하고도 남을 만한 크고 넓고 깊고 높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는 그날부터 몸으로 온 누리를 받아들여 마음에 갈무리하면서 끝없이 자란다. 그러고는 스스로 작은 누리(소우주)’라 뽐내기를 서슴지 않는다.

 

사람이 누리를 받아들이는 몸의 창문을 다섯 가지로 꼽는다. 얼굴에 자리 잡은 네 구멍 곧 눈과 귀와 코와 입에다 온몸을 덮고 있는 살갗 하나를 더해서 다섯이다. 이들 다섯 가지 창문이 누리를 받아들일 적이면 눈은 보다’, 귀는 듣다’, 코는 맡다’, 입은 맛보다’, 살갗은 느끼다같은 노릇을 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보다는 가장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창문이라는 사실을 세상 학자들이 두루 밝혀 놓았다. 게다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하는 속담은 보다가 가장 또렷하고 알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열어 보면 움직씨 보다의 뜻풀이를 스물여덟 가지나 내놓았다. 게다가 보다가 다른 움직씨를 돕는 도움움직씨로 쓰이는 뜻풀이로 네 가지, 다른 그림씨를 돕는 도움그림씨로 쓰이는 뜻풀이로 네 가지도 내놓고 있다. 모두 보태면 보다는 서른여섯 가지 뜻으로 쓰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에는 보다라는 낱말이 ‘see, look, watch, gaze, glance, stare’ 같이 여러 가진데 우리말에는 그런 낱말들이 없다.”라고 하면서 안타깝다고 했다. 서른여섯 가지나 되는 뜻을 보다라는 낱말 하나에다 겹겹이 쌓아서 담아 놓았으니 누가 헷갈리지 않고 쓰겠느냐, 어째서 여러 낱말을 만들어 뜻을 서로 나누어 가볍고 또렷하게 쓰도록 하지 않았느냐, 하는 뜻으로 나는 들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의 과녁은 우리말이 아니라 우리 국어사전이며 우리 국어 교육이어야 올바르다. 국어사전이 그처럼 뜻풀이를 마구잡이로 너절하게 쌓아 놓고 사람들이 헷갈리도록 만들고, 국어 교육이 낱말의 뜻풀이를 제대로 가려서 가르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토박이말 보다는 영어보다 훨씬 더 많은 여러 가지 뜻을 서로 나누어 드러내는 낱말들을 거느리고 있다.


 

우선 보는 자리를 안과 밖으로 나누면 내다보다’, ‘들여다보다’, ‘넘어다보다’, ‘넘겨다보다를 쓴다. 안에서 바깥으로 보면 내다보는 것이고, 바깥에서 안으로 보면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때 집이나 방처럼 둘러싸인 빈자리를 안이라 하고 그런 안을 둘러싸고 열려 있는 빈자리를 밖이라 하지만, 어둡고 밝은 자리로 나누어지는 곳에서는 어두운 쪽을 안이라 하고 밝은 쪽을 밖이라 한다.

 

그런데 안과 밖으로 갈라놓는 울이나 담이 하늘 쪽으로 열려 있으면, 안에서나 밖에서나 담이나 울 위로 눈을 올려서 내다보거나 들여다보거나 하는데 이는 넘어다보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에 무슨 욕심을 감추거나 어떤 짐작을 하면서 넘어다보면 그것은 넘겨다보는 것이 된다.

 

보는 자리를 안팎이 아니라 높낮이로 나누면 바라보다’, ‘굽어보다’, ‘쳐다보다’, ‘도두보다’, ‘우러러보다’, ‘낮추보다’, ‘깔보다같은 일곱 가지를 쓴다. 보는 눈이 보이는 무엇과 높낮이 없이 평평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바라보다’, 보는 눈이 보이는 무엇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은 굽어보다’, 보는 눈이 보이는 무엇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은 쳐다보다라고 한다.

 

이때 높낮이는 실제로 보는 사람이 몸으로 보는 눈의 높낮이를 뜻하지만, 실제로 보는 사람 눈의 높낮이와는 상관없이 마음으로 보는 눈의 높낮이에 따라 쓰는 낱말도 있다. 마음의 눈을 낮추고 보이는 무엇을 높여서 보면 도두보다’, 마음의 눈을 아주 낮추고 보이는 무엇을 매우 높여서 보면 우러러보다가 된다. 거꾸로 마음의 눈을 높여 보이는 무엇을 업신여겨서 보면 낮추보다가 되고, 마음의 눈을 한껏 높여 보이는 무엇을 아주 낮추어서 보면 깔보다가 된다.


 

보는 눈이나 마음의 높낮이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돌보다’, ‘엿보다’, ‘노려보다’, ‘쏘아보다’, ‘흘겨보다’, ‘째려보다같은 낱말들도 있다.

 

돌보다는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가짐으로 언저리를 떠나지 않은 채 맴돌며 눈을 떼지 않고 보살피는 것, ‘엿보다는 저쪽 사정을 훔치려는 마음가짐으로 제 모습을 감추고는 뭔가를 벼르며 살피는 것, ‘노려보다는 틈만 나면 달려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과녁을 겨누듯이 매섭게 바라보는 것, ‘쏘아보다는 틈만 나면 쏘아 맞히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과녁을 노리듯이 눈을 곤두세워 바라보는 것, ‘흘겨보다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마음가짐으로 눈알을 옆으로 굴리어 노려보는 것, ‘째려보다는 몹시 못마땅하여 참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눈알을 옆으로 굴리어 쏘아보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핀 열일곱 가지 보다가 주로 겉모습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속살까지 겨냥하는 보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속살까지 겨냥은 하되 겉모습조차 별로 보고자 하는 뜻이 없으면 거들떠보다’, 속살까지 겨냥은 하되 겨를이 없어서 뼈대만 추려서 보면 훑어보다’, 보이는 겉모습만 눈에 들어오는 대로 놓치지 않고 꼼꼼히 보면 ‘()여겨보다’, 보이는 겉모습에만 눈을 못 박았으나 이리저리 옮기고 뒤집으면서 샅샅이 보면 살펴보다를 쓴다.

 

이들 네 가지는 아직 속살을 보는 데까지 다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무엇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이모저모 헤쳐서 보는 뜯어보다’, 요모조모 뜯어서 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눈으로 본 바를 마음으로 맞추어 보는 따져보다’, 따져보는 것보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마음으로 셈하여 보는 헤아려보다로 들어가면 겉모습을 지나 속살까지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따져보는 것과 헤아려보는 것은 모두 눈과 마음이 겉모습과 속살을 아울러 보는 것이지만, 거기서도 따져보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겉모습에 좀 더 쏠리고, 헤아려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속살에 좀 더 쏠리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겉모습과 마음으로 보는 속살의 나뉨을 뛰어넘으면, 마침내 보아야 하는 그것을 겉모습에서 속살과 속내까지 온전히 하나로 보아 내는 알아보다에 이른다. 그리고 알아보다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키워 나가면 그 걸음에 따라 속살이 환히 보이는 뚫어보다에 닿았다가, 드디어 속살의 구석구석까지 남김없이 보이는 꿰뚫어보다에 다다른다. 여기에 이르면 비로소 더 보아야 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움직씨 보다라는 낱말과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니고 자주 쓰이는 낱말을 살펴보았다. 우선 겉모습을 보는 것에서, 보는 자리의 안과 밖에 따라 네 가지 낱말, 보는 자리의 높낮이에 따라 일곱 가지 낱말,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여섯 가지 낱말, 이렇게 열일곱 가지 낱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속살까지 겨냥하는 것에서, 아직 속살까지 다다르지는 못한 네 가지 낱말, 속살까지 닿아서 깊이 보는 세 가지 낱말, 겉모습과 속살까지 온전히 보는 세 가지 낱말, 이렇게 열 가지 낱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겉모습을 보는 것과 속살까지 보는 것을 모두 보태면 스물일곱 가지 낱말이 보다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니고 자주 쓰이고 있는 셈이다. 영어 낱말 예닐곱 가지를 어찌 우리말에다 견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