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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화주당 지킴이와 화주당 귀물(鬼物) 그리고 하직굿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15 - 서울의 신당(神堂) 3

[신한국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화주당 지킴이 톺아보기

 

화주당 당지기 조영환은 1944년에 태어나 올해 74살이다. 조점석과 양동순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조영환은 4610남매 가운데 장남이다. 조영환의 형제 중 두 명은 625 동란 때 죽었다. 조영환은 한때 동대문에서 포목장사를 하다가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경기도 여주로 이주하여 양계장을 운영하였다.

 

이후, 아파트 경비원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화주당으로 들어가 살면서 당주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물림되어 온 지킴이의 운명을 안고 부인과 함께 화주당을 지켰다. 조영환의 부인은 2살 아래인 문정자이다. 조영환과 문정자 사이에 3남매를 두었다. 자녀 중 무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 조영환 문정자 부부는 화주당을 떠날 때까지도 남한산성 청량당을 큰집으로 삼고 있었으며 화주당을 작은집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화주당 당지기는 부자(父子)지간으로 대물림돼 온 부계 전승 계도로 이어져 왔었다. 그러면서 당에 관한 실질적인 일은 고부(姑婦) 전승 때문에 이어져 왔다. 화주당에서는 당지기를 시봉자라고도 하는데, 역할에서는 부부가 분담하여서 하였다. 이를테면, 경제적 측면서의 권한이나 단골들이 찾아와 당을 개폐하고 하는 것은 부부가 반반 정도의 권한을 가진 형식이었다. 주로 물리적인 일은 남편 조영환씨가 하지만 그 외의 당 관련 일을 맡는 것이나 신도를 맞이하는 일은 부인 문정자가 하였다. 경제권도 부인 갖고 있었다.

 

당지기 계보를 현재의 입장에서 소급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영환() - 조점석 - 조성용 - 조성삼 - 조씨이다. 조영환은 고조할아버지 이름을 기억 못 하지만 당을 지켰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계보를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조영환의 고조부모 (당을 소유하지 않고 관리자로서 당지기 역할을 함) 조영환의 증조부모인 조성삼과 부인 윤씨 (조성삼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곡물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어 하주당을 산 후 소유자로서 당지기를 함) 조영환의 조부모인 조성용과 김수인 부부 조성환의 부모인 조점석과 양동순 부부 조영환과 문정자 부부이다.

 

조영환의 할머니 김수인은 88세 때 사망하였는데 살아생전 그를 진주할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조영환의 어머니 양동순씨는 한때 대한승공경신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조영환 문정자 부부는 당집 내부 신단에 진둥항아리과 업항아리를 모셔두었다. 진둥항아리에는 일 년 내내 화주당을 운영하여 벌어들인 돈을 담아 둔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옹기에 담아 두었던 돈을 꺼내어 당굿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하얀 항아리로 된 업항이리에는 햅쌀을 담아 두었다가 가을 햇곡식이 나오면 새로 교체한다. 꺼낸 쌀로 떡을 해서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 두 개의 항아리는 조영환 문정자 부부가 새로 이주해 간 집으로 가져가 모신다고 하였다.

 

샤머니즘박물관으로 옮기게 된 화주당 귀물(鬼物)의 하직굿


 


화주당 귀물(鬼物)이 샤머니즘박물관으로 옮기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양종승은 1982년 봄, 강령탈춤 및 서도 연희의 스승이었던 박동신(국가무형문화재 강령탈춤 보유자)이 화주당 굿일을 나갈 때 따라간 적이 있다. 1994년 서울굿을 조사하면서 화주당집 딸이자 당지기 조영환의 누님 조임신(19322007)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행당동 애기씨당굿 보유자 김옥렴과 서울굿 무악연주자 최형근(서울시 무형문화재 행당동 애기씨당굿 보유자)과 서울굿 큰만신 신현주를 통해 조임신 만신과 더욱 친분을 갖게 되었다.

 

2005, 조임신 만신이 사망하기 두 해전, 자신의 신당을 내모시게 되자 조임신 만신과 무업을 함께 하였던 최형근, 신현주가 샤머니즘박물관 건립을 준비해 오던 양종승에게 신당 귀물 일체를 기증하는 방안을 제시하였고, 조임신 만신 또한 흔쾌히 허락하였다. 당시 조임신 만신은 양종승에게 훗날 화주당 귀물 또한 모셔갔으면 하는 뜻을 말하곤 하였다.

 

2017년 화주당이 헐리게 되자, 조영환, 문정자 부부가 서울 무악 연주자 한상기와 상의하여 그해 초여름에 양종승에게 연락하였다. 양종승은 20175월과 6월 한상기 선생과 화주당을 방문하고 신당에 대해 조사 및 당지기와 면담을 하였다. 화주당에 있었던 내부 물건 일체는 이미 오래전 모두 정리되고 없었다.

 

다만 벽에 걸려 있었던 무신도 16- 이회장군, 송씨부인(이회장군 처), 유씨부인(이회장군 첩), 원당대신할머니, 원당대신할아버지, 사신할아버지, 곽박선생, 장군, 용장군, 칠성, 삼불제석, 임씨할머니, 엄씨할머니, 박씨할머니, 대신할머니(1), 대신할머니(2)와 나무현판 그리고 여행 가방에 담겨 있었던 신복, 놋종 3, 촛대 한쌍, 시루상 2개 만 남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살아 있는 귀물이었기에 다른 곳으로 이동 전에 하직굿을 해야 했었다.

 

화주당 하직굿은 2017626일 낮 2시 화주당에서 이루어졌다. 하직굿을 하기 전날인 25일 밤, 문정자는 꿈을 꾸었다. 수많은 여자 관현악 악단들이 하얀 옷을 입고 합주하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문정자는 양종승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신령님들이 기쁘게 움직여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좋다는 신호를 알려준 것이라 좋아했다. 앞서, 하직굿 논의는 5월부터 있었지만, 신령을 움직이는 일이라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 건달로 치는 윤달에 잡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