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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국가적 제례를 지냈던 서울 국사당(國師堂)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17 - 서울의 신당(神堂) 5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목멱산대천제(木覓山大天祭)’는 조선 건국 이념을 담아 계승된 산천 신앙의 한 축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종묘와 사직에 제를 지내면서 목멱산에도 대천제를 올렸다. 범민족적 산악숭배 사상을 표방하고 천지를 감동케 하여 나라의 태평성대(太平聖代)와 시화연풍(時和年豊, 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목멱산대천제는 나라 안녕과 백성 통합을 위한 국중행사와 다를 바 없이 겨레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의 뿌리를 되살리고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범국민적 축제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해발 270m 높이의 목멱산(木覓山)’남산(南山)’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조선에서 정궁으로 삼았던 경복궁(景福宮) 맞은편인 남쪽에 있으면서 조선시대 한양의 안산(案山,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으로 한성부를 지켜주는 수호산 역할을 하면서부터이다.

 

그리하여 남산(南山)은 북악산(北岳山), 낙산(駱山), 인왕산(仁王山)과 함께 서울 분지(盆地)를 둘러싼 자연 방벽으로 역할 하게 된 것이다. 한양 성벽(城壁)도 이와 같은 사산(四山)의 능선에 따라 쌓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 또한 그러한 균형 위에서 정해진 것이다. 이처럼 남산은 옛 한양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주요 산으로 역할 하면서 옛 도성 구역을 표시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남산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일본 제국주의가 남산 기슭에 127,900여 평의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이때, 남산 꼭대기에 있던 목멱신사(木覓神祠) 국사당(國師堂)을 못마땅히 여겨 강압적으로 인왕산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때부터 국사당의 수모는 본격화되었다.


 


이에 앞서, 조선시대 말엽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국사당의 국가적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궁궐 별궁(別宮) 나인들이 치성을 드리거나, 개성 덕물산(德物山)에 치성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들러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명성황후 또한 나인들을 시켜 치성을 드리곤 하였으므로 국사당 존재 가치는 나름대로 살아 있었다.

 

과거 국사당과 남산의 관계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보면, 태조 512월에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였다. 그리고 태종 49월에는 목멱대왕을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국사당에서는 개인적 사적 제사들은 모두 금하고 국가적 행사만을 치르게 하였다. 태종 85월과 태종 97월에는 국사당에서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

 

이러한 국가적 제례는 고려 시대에도 지냈던 것인데, 이를테면, 하지(夏至)가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비 오기를 비는 기우제와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 날이 개기를 비는 기청제이다. 이와 같은 제례를 위해 태종 122월에는 국가에서 신주(神主)를 정하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신증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3권에 보면, 국사당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초제(醮祭)도 지냈다. 초제의 주요 대상은 오성(五星) 또는 혹성(惑星)이다. 땅에 오행이 있는 것과 같이 하늘에도 동쪽의 목성(木星, 세성-歲星), 서쪽의 금성(金星, 태백성-太白星), 남쪽의 화성(火星, 형혹성-熒惑星), 북쪽의 수성(水星, 진성-辰星), 중앙의 토성(土星, 진성-鎭星) 등 태양계에서 지구에 가까운 목성, 금성, 화성, 수성, 토성으로 된 다섯 개의 오위(五緯)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존재를 대상으로 수재나 가뭄 등 재난이 있을 때 소재기양(消災祈禳)’, 곧 재앙은 물러가고 복이 오기를 빌거나, 성변(星變), 곧 별의 위치나 빛에 생긴 이상에 따른 진병(鎭兵) 곧 난리를 진압하는 군사적 행동 그리고 임금, 왕비 등의 역질(疫疾)에 따른 치유기도(治癒祈禱) 등을 목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행해졌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같은 해 곧바로 조선신궁은 사라졌다. 신궁 터에는 남산식물원과 백범공원이 들어섰고 신사참배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93년이 지난 오늘, 국사당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는 팔각정이 들어서 있다. 1925년 인왕산으로 옮겨진 국사당은 이때부터 사적 재산으로 실추되었고, 오늘날에는 상업적 굿당으로 전락하여 과거의 위엄이나 위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남산 제모습찾기운동이 시작되면서 1970년대부터 관 차원의 남산성곽보존정비사업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남산복원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부분적 회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국사당을 비롯한 목멱산대천제 등 유무형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정책적 대안은 보이질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사당 원위치 복원 운동은 민간 차원에서 전개되어 온 까닭으로 미흡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중 2017년 말, 필자를 비롯한 남산도깨비문화원 김재연 원장 및 뜻있는 관련자들이 모여 <목멱산대천제보존회(木覓山大天祭保存會, The Mongmyeok Mountain Ritual Preservation Society)>을 결성하여 서울특별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인 국사당원위치복원 운동을 비롯한 국중행사로써의 목멱산대천제 복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인왕산에 있는 현재의 국사당은 기와로 된 건축물 1동이다. 평면으로 된 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주간(柱間)으로 되어 있다. 기둥 사이는 전면 어간(御間, 절의 법당이나 큰방의 한복판) 2.6m, 협간(夾間, 어간의 좌우 양쪽에 있는 방)과 측간(側間)은 각각 2.4m로 되어 있다. 내부 넓이는 모두 11평이고,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다. 동서 양쪽에는 뒤에 덧붙인 온돌방이 있다.

 

국사당이 원래 자리에서 떠나와 있긴 하지만 유산의 가치에 대한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1970년 국사당 내부에 있는 무신도 21점을 비롯한 명두(明圖, 무속인이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고 위하는 거울) 7점 등 모두 28점이 서울특별시 중요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 국사당 건축물이 서울특별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다.

 

19세기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백과사전 형식으로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藁)에 보면, 국사당 이름과 신도(神圖)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현재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국사당 신도들은 신당 정면 및 좌우 벽면에 걸려 있다.

 

그것들은 아태조(我太祖)를 비롯한 아태조비 강씨부인(康氏婦人), 호구(戶口, 홍역을 관장하는 신)아씨, 용왕대신(龍王大臣), 산신(山神), 창부씨(倡夫氏, 이름 높은 광대가 죽어서 된 신), 별상님(나라와 집안의 태평과 복을 도와주는 신), 무학대사(無學大師), 곽곽선생(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곽박-郭璞을 잘못 전해진 말) 산해경(山海經), 수경(水經)등의 저자이며 경학(經學,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과 역수(易數, 음양으로써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내는 술법) 등에 능하였으므로 점술가들 사이에서 신격화됨), 단군(檀君), 삼불제석(三佛帝釋), 나옹(懶翁)(고려 공민왕의 왕사), 칠성(七星, 북두칠성), 군웅대신(軍雄大臣, 무관 출신 임금), 명성황후, 최영 장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