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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친엄마 아니예요?" / 최선숙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31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친엄마 아니에요?"

딸애는 종종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짐짓 정색해서 되묻는다.

"응? 어떻게 알았지? 내가 고아원에 가서 나 닮은 애를 데려다 입양한 줄을."

그러면 딸애는 이렇게 대꾸한다.

"거짓말, 그럼 사람들이 왜 나를 엄마 꼭 빼 닮았다 해? 난 엄마 친딸이야.“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나이 삼십이 다 되어 딸애를 본 우리는 애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쥐면 부서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애 아빠도 나도 다 애한테만 사랑을 쏟고 애가 없었던 나날들은 어떻게 살았던가 싶을 정도로 아기에게 엄청 집착하였다. 뒤늦은 아이의 탄생은 그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완전히 다른 즐거움과 쾌락을 안겨주어 우리는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중시절 한 숙사에서 가깝게 보내던 동창생이 상해에서 연길로 출장 왔던 길에 아기도 볼겸 그 동안 헤어져 살았던 회포도 풀겸 겸사겸사 우리집에 와서 며칠 묵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자기가 먼저 애를 키워보았노라고 애 키우는데 천방지축인 나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들어주면서 이런 저런 주의할 것들을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기저귀도 매일 깨끗하게 씻어서 꼭 땡볕에 말려 소독시켜 주고 태교 때처럼 아기한테 늘 은은한 음악을 띄워주어 감성을 키워주고 아기방은 구석구석 늘 깨끗하게 청결해주고 방안을 늘 시원한 바깥공기로 환기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아기가 너무 이뻐서 물고 빨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 부부를 보더니 이렇게 따끔한 충고 한마디 했다.

 

"‘애가 돌이 지나면 옷가게를 다시 시작하겠다.’ 하면서 애한테 너무 살뜰하게 굴지마. 그렇게 해야 이제 애하고 떨어져 출장 다녀도 너도 애도 다 같이 덜 힘들 거야."

 

그때에는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 도리는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차츰 많이 아쉽지만 많이 자제하고 의식적으로 조금씩 거리를 두고 키웠다.

 

그렇게 어느덧 애는 한 돌이 지나고 나도 가게에 나가 장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의류업종에 종사하는 나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외지에 물건을 사러 다녀야 했다. 돌이 지나서까지 모유수유를 했던 애를 집에 떼놓고 외지에 출장 갔는데 이것 참, 글쎄 때때로 "살인"미소로 쓰러지게 만들고 옆에서 살갑게 굴던 딸애가 눈에 삼삼해 미치겠는데 애를 먹이던 젖까지 띵띵 부어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나 죽을 지경이었다. 한쪽으로 짜버릴수록 점점 더 불어나는 젖 때문에 갔던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서 이튿날 곧바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나는 고생을 하며 집에 돌아와 보니 애는 아무 일도 없이 태평무사 하게 할머니와 “짝짜그르르~” 쾌활하게 잘 놀고 있었다. 그 친구의 말이 감동으로 안겨오는 순간이었다. 과연 애와 사이를 두고 키웠더니 엄마가 출장가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평소처럼 유쾌하게 잘 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그 친구한테 고맙던지. 그 때에서야 그 친구의 한마디가 얼마나 나와 애한테 도움이 되는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뒤에도 늘 출장이 잦은 직업인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잊지 않고 애한데 시종일관하게 그 원칙을 고집하며 키웠다. 그 덕에 지금은 "엄마가 오늘 한국에 물건 사러 갔다 와, 한 주일 걸릴지 모르겠어, 그 동안 집에서 애 먹이지 말고 잘 노세용."하면 딸애는 "그래요, 엄마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놀음에 빠져 논다.

 

순간 조금은 섭섭하지만 그래도 "엄마 가지마. 보고 싶어 안 돼."하면서 칭칭 매달리며 떨어지지 않으면 우리 모녀는 서로 엄청 더 힘들 것 같다.

 

며칠 출장 중에 차분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잘 처리하고 돌아와도 "엄마 그 동안 그리웠어." 하며 감겨드는 다른 집 "공주"나 "왕자"들과는 다르게 무탈하게 아빠랑 할머니랑 동네 이웃들과 잘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둥글둥글 성격 좋게 동네의 누구나 잘 어울려서 "동네아이" 라는 이름까지 가지고.

 

그렇게 애가 크는 동안 나는 늘 애를 마음으로만 이뻐하고 겉으로는 무관심인척 키우고 있다.

 

저녁 늦게 돌아와도 그때까지 기다리며 자지 않으면서도 자는 척, 아침에 학교 갈 때 "내 새끼 장하다. 오늘도 파이팅!"하고 싶으면서도 짐짓 다른 일 보는 척, 무덤덤하게 "잘가..." 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으면 출근해서 온 하루 애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 큐큐에 올리는 글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제일 먼저 읽어보고 학교에서 친구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부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나, 대학진학을 앞두고 어떤 학교 어떤 전업이 평생에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전공일지?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조언을 요청하는 나는 영락없는 친엄마건만…

 

겉보기에는 다른 집 엄마들처럼 섬세하지도 살뜰하지도 못하고 늘 랭혹하고 엄격한 나를 보며 의혹에 가득 차 묻는 딸…

"엄마, 친엄마가 아니지요? 친엄마 맞어?"

"그래 맞어, 나는 친엄마가 아니야, 너는 저기 고아원에서 입양했거든."

“그런데 왜 난 엄마를 꼭 빼닮았어요?"

"엄마가 나를 닮은 애를 뽑아서 데려왔으니 나 닮아보이는 거야."

"쳇, 엄마 언제부터 거짓말 이렇게 잘해 "

그러면 딸애는 호호 웃으면서 이렇게 맞장구친다. 종종 낯설게 굴고 차갑게 구는 내가 친엄마인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 우리 모녀는 하하호호~ 웃음보를 터뜨린다.

 

딸애가 열아홉 살 되는 해에 나는 딸애에게 나의 그 동창얘기를 해주었다.

 

"네가 알다시피 엄마가 늘 출장해도 그 친구의 충고대로 마음으로만 이뻐했기에 너는 이렇게 무난하게 잘 커줬단다. 나의 이런 무관심속에서 너는 홀로 서기 달인이 되었잖아."

눈 깜짝하지 않고 듣던 딸애가 어른처럼 이해된다는 듯 "의미심장" 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친구의 그 말 한마디에 애를 힘들이지 않고 무난하게 잘 키울 수 있었고 덕분에 딸애도 앞으로의 대학생활, 회사생활도 거뜬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친구의 충고는 보약 같은 말이었다.

 

"고마워 친구야, 나 두고두고 이 은혜 잊지 않을게. 그리고 꼭 이 '원쑤' 갚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