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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하는 말이 사리에 안 맞아도 죄는 주지 않겠다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은 신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 신하들의 간(諫)하는 말도 잘 들었다. 간이란 자기의 의견을 논리화하여 임금에게 전하는 것이다. 간하기는 사대부의 업이며 동시에 ‘직책’으로서의 의무다. 좌의정 허조의 말을 그의 졸기에서 보자.

 

 

간하면 행 : 내 나이 70이 지났고, 지위가 상상(上相,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성상의 은총을 만나, 간(諫)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유한(遺恨)이 없다. (《세종실록》 21년 12월 28일)

 

세종은 더 적극적으로 가뭄 때에 대언들에게 간언을 구하는 교서를 내린다.

 

정사의 잘못된 것과 백성의 병고를 숨김없이 다 말하여, 내가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애휼하(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품)는 뜻에 부합하게 하라. ‘그 말이 비록 사리에 꼭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죄주지는 않으리라.’ [言雖不中, 亦不加罪。](《세종실록》 1년 6월 2일)

 

신하들이 말하기를 주저하는 마음까지 읽어 말이 지나치더라도 간으로 하는 말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 한다. 요즘으로 보면 국회의원의 회의 중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과 같다.

세종은 듣는[以聞] 임금이었다. ‘以聞’은 《조선왕조실록》 원문 전체 4,211건 가운데 세종이 862건이었다. 압도적으로 다른 임금보다도 많다. 세종은 신하로부터 또 백성으로부터 듣고 또 들었던 임금이다. 두 번 째가 인조로 252건이다.

 

세종은 듣고[聞], 묻는[問] 임금이다.

 

 

   

       들을 '문' 사람이 입과 귀를 내민 모습이다. 특히 귀를 쫑긋 세워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귀로 듣는 모양으로 표시했다.

 

  

       물을 '문' 門(문 문)과 口(입 구)가 합쳐진 글자로, 문(門)에 들어설 때에는 입 (口)으로 안부를

       묻는다.

 

 

더불어 세종은 묻는 데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다. 묻는다는 이문[以問]은 《조선왕조실록》 총 554건 가운데 세종이 28건이다.

신지(新地) 구하기 :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이를 알아서 경내의 노인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상을 내걸어 묻기도 하고, 혹은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廣行咨訪以聞]" 하였다.(《세종실록》 23년 7월 14일)

 

이는 “지난날 강원도의 무릉도(武陵島, 별천지섬)를 찾으려고 할 때에 모두 말하기를,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뒤에 조민(曹敏) 등이 이를 찾아내어 상(賞)을 탔다. “조민의 일을 듣고서, 역시 제 스스로 찾겠다고 희망하는 사람이 이따금 있었다.”에서 보듯 울릉도, 독도의 확인도 지역 노인들에게서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여기에서 나아가 당대의 지배사상이라 할 성리학에 대하여도 이의가 있으면 의심해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바로 묻는 정신이다.

 

주자의 말도 의심 : 경연 강독에서 주문공이 옛말의 잘못을 바로잡은 대목에 이르러 말하기를, “문공은 진실로 후세 사람으로서는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은 말에도 혹 의심스러운 곳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한 말도 또한 의심스러운 곳이 있다. 주자의 문인으로서 스승의 말을 취하지 않은 자가 있었던 것이니, ‘비록 주자의 말이라도 또한 다 믿을 수는 없을 듯하였다.’”[雖朱子之說, 疑亦不可盡信也。](《세종실록》 19년 10월 23일)

 

성리학이 주축이 된 시대에 주자의 말에도 의심할 점이 있다고 이론을 제기했다. 시대와 사회에 맞지 않으면 새로운 논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현실을 바로 잡는 간하는 말을 듣고, 질문으로 이어 새롭게 나아가려는 변역(變易, 고쳐서 바꿈)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