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7 (금)

  • 맑음동두천 -5.2℃
  • 맑음강릉 -0.8℃
  • 맑음서울 -5.8℃
  • 구름많음대전 -2.3℃
  • 흐림대구 -2.2℃
  • 흐림울산 -1.4℃
  • 구름많음광주 0.0℃
  • 흐림부산 0.5℃
  • 흐림고창 -2.1℃
  • 흐림제주 4.5℃
  • 맑음강화 -5.0℃
  • 구름많음보은 -3.1℃
  • 구름많음금산 -3.3℃
  • 흐림강진군 -0.3℃
  • 흐림경주시 -1.5℃
  • 흐림거제 1.4℃
기상청 제공

극적 장면 없지만 몇 곳에서의 대사는 빛나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7
세종 <뮤지컬 1446> 감상기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이번 호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마당으로 지난 10월 5일부터 12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龍)에서 있었던 세종 <뮤지컬 1446>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뮤지컬 1446>은 극본 김선미, 작곡ㆍ연출에 김은영,이며, 여주시가 주최했다. 생각하는 정치인 세종과 뮤지컬 비평은 직접 연관은 없으나 세종의 사상과 뜻을 사회 여러 분야에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이번 뮤지컬 감상 소감을 잠시 피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뮤지컬은 “세종 28년, 스물여덟 자에 조선을 걸다!”를 부제로 ‘조선의 왕이 될 수 없었던 꼭두각시 왕 이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다.’이다. 주제가 그렇다보니 세종의 업적보다는 태종과 고려가 막을 내리며 발생한 잔여(원한) 세력들과의 갈등 등이 극 진행 상 저변의 축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세종 28년 1446년 한글 반포와 그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뮤지컬 극이어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게 진행되어도 극적 허구로 이해하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죽었던 태종이나 멀리 시골에 사는 양녕, 숨어 지내야 할 억울한 고려의 잔존 세력도 무대에 나타나 극 진행에 참여한다.

 

 

1418년, 태종은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세자 양녕을 폐하고 서책에 빠져 사는 충녕을 세자 자리에 올린다. 게다가 태종은 세자교육을 받지 않은 충녕에게 선위까지 해버린다. 어리둥절한 사이에 왕이 된 충녕. 하지만 태종은 충녕의 뒤에서 대신들을 조정하며 정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평소 외척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던 태종의 눈에 충령의 장인인 심온을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는 것이 포착된다. 그리고 심온은 조작된 사건에 연루되어 죽게 된다.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장인이 억울하게 죽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충녕. 게다가 아내마저도 죄인의 딸이라며 내쳐질 위기에 처하자 용단을 내린다. 자신만의 정치를 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맞서는 충녕. 그는 결국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 용상을 지켜낸다. 그러나 충녕 앞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놓여 있는데...

 

세종을 괴롭히는 망령은 양녕의 후원자들, 고려의 잔존 세력, 백성을 위한 정치 개혁을 반대하는 관리들의 압력 등이다.

 

세종은 이 하나하나를 극복하고 세자 문종에게 정사를 넘기면서까지 새 문자정음의 창제에 정신을 쏟게 된다. 백성이 억울한 죄를 짓게 되는 것도 법을 몰라 곧 한자를 몰라 법조문을 읽을 수 없어 죄를 짓게 되는 근본 원인이 있다고 여기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다.

 

극진행이 노래로 이어지면 대사[말]극인지 노래극인지 구별이 안 갔다. 노래는 성웅극의 기본 흐름에 충실해 힘차지만 밋밋한 곡의 연속으로 아름다운 들을만한 멜로디[곡조]가 없어 보였다. 작은 무대에 마이크를 달고 부르는 노래는 감동과는 거리가 멀고 시끄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끄러움은 달리 말하면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데 이런 현상은 단지 이번 뮤지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연극뮤지컬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외국의 뮤지컬 현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태종과의 갈등에 극 절반을 소비한 것이나, 여러 업적 소개를 대사만으로 처리하거나, 세종과 소헌왕후의 새로운 출발에 따른 아름다운 노래(곡)를 마무리하지 않아 대표적 노래 하나 드러낼 수 없었다든가, 세종의 업적이나 성과를 예를 들면 백성을 보살피는 장면을 예화로 소개하지 못했다든가 하는 작업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심온 사건과 소헌왕후 밀어내기, 조선의 시간 찾기 등은 세종에 대한 핍박으로 나타나는데 적극적 개척자의 세종이 아닌 소극적 극복의 이미지 형이어서 아쉬움이 따른다. 그런 가운데 몇 장면 속에서 세종의 마음 속 생각을 표현하는 깔끔한 대사는 몇 있었다.

 

태종 : (왕은 힘들다) 너는 칼을 받겠느냐?

충녕 : 그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드리겠습니다.

 

세종: (법과 백성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백성이 몰라서 죄를 짓게 됩니다.

신하: 백성들은 우매합니다. 믿음은 배우는 것과 무관합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믿고 싶은 것을 믿고자    할 뿐입니다.

 

(죽은 태종이 칼을 들고, ‘나를 따라오라’ 하자)

세종: 왕이 된다고 편하답니까. 이건 왕의 길일뿐입니다. (민본의 길)

 

신하: 백성은 이치를 모릅니다. 허상이오.

세종: 허상을 배우면 실상이 되는 것이오. 알게 되는 것이오.

 

세종: (훈민정음을 창제하고는) 나는 이 글자로 백성을 어루만져 주고 싶을 뿐이오. 28자의 글자에 나의 지긋한 마음만이 담기길 바라뿐이오.

 

앞으로 세종을 우리 마음속에 각인 시키는 작업은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비롯하여 아동극, 동화, 미술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좀 더 세종에 대한 여러 면 곧 역사 이외에 인간, 사상, 뒷이야기 등을 개발하고 정리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