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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오묘한 말맛, 훈민정음이 살려줘

세종대왕 즉위 600돌, ‘세종대왕즉위600주년모두모임’ 행사 열려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이번 호에서는 한 번 더 잠시 며칠 전의 세종 행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금년은 특히 세종이 임금에 오른 지 600돌이어서 여러 행사들이 있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뜻을 겸하여 ‘세종대왕즉위600주년모두모임’ 주최로 지난 12월 10일 세종 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관련 인사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의 과제’라는 강연과 감사장 수여식 그리고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강연은 이어령교수가 우리말이 갖는 특성에 대한 주제였고 발표문은 따로 없어서 그날 들은 것을 기초로 가)요지를 살피고 나)훈민정음의 뜻을 통해 세종 즉위 600돌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가) 이어령 교수: 우리말은 단순히 소리를 옮겨 놓은 글이 아니다.

 

말과 글에서 말이 아들이라면 글은 사생아다. 훈민정음은 말을 표현하수 있게 창안된 것이지 단순히 글을 적은 기호가 아니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

나라는 망했으나 산과 강은 그대로 있다.

 

이는 중국 당나라의 시성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의 ‘춘망(春望)’ 첫 구절로 실정과 내란으로 어지러운 세태를 견주어 그렸다. 많은 경우 “나라는 깨뜨려졌어도(國破) 산하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석하지만, 우리말 해석으로는 “나라가 패망하니 남은 건 산하밖에 없다.”가 옳다.

 

여기서 한문이 갖는 중의적 뜻과 달리 우리말의 ‘산하밖에’의 뜻으로 ‘산하뿐이 없다’는 애틋한 의미는 한문에는 없고 우리말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곧 한문으로는 도저히 그 깊은 뜻을 나타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두시언해〉초간본은 세종ㆍ성종 대에 걸쳐 왕명으로 유윤겸(柳允謙) 등의 문신들과 승려 의침(義砧)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1481-성종 12년에 펴냈다.)

 

 

우리말의 오묘한 말맛을 훈민정음이 살려준 것이라고 강조한다. 거기에 말소리가 갖는 의성어를 보면 한국어는 8,000개인데 일본어는 2,000여개, 미국어는 1,500여개, 독일어는 541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머루랑 다래랑’과 ‘머루와 다래’는 그 소리가 주는 효과가 다르다 할 것이다. 더불어 ‘아리랑’도 그러하고 오늘날 SNS시대의 젊은이들의 ‘하숑’도 이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설명한다.

 

훈민정음은 이러한 소리말, 더욱이 여자들이 갖는 내밀한 감성을 잘 나타내 준 우리 민족의 삶의 언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한글을 사랑해서 한글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한글이 아니면 우리 민족의 감성을 표현할 수가 없음으로 한글이 귀하다고 말한다. 방탄소년단이 시ㆍ청각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주듯 또한 우리말의 ‘꽃 피고 새가 우는’에서 보듯 앞으로는 시각과 청각을 함께 아우르는 언어가 뇌와 통합하여 새 시대의 언어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낯빛은 인공지능(AI)가 읽지 못하듯 우리말이 갖고 있는 깊은 뜻을 되살려가기를 기대했다.

 

나) 훈민정음 다시 생각하기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글을 몰라 법을 읽을 수 없어서 죄를 짓게 되어 이를 방지하려고 새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고 세종은 밝힌다.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율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로 번역하여서 민간에게 반포하여 보여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세종실록》 14년 11월 7일)

 

그보다 더 크게 훈민정음은 천지인의 삼재와, 음양오행의 원리에 입각해 인간 언어의 구조에 따라 창제한 문자다. 조선 사람의 말 구조에 맞춘 글자가 아니라 인간 보편적인 언어구조에 맞는 문자인 셈이다. 이에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고, 세계의 여러 언어를 사맛[소통]할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백성이 자신(自新)을 통해 새로워지고, 변역(變易)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삶의 기쁨(생생지락)을 넓혀가는 근간에 경험(방)이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도구로서 훈민정음이 있었다. 기록은 과학의 기초가 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은 세종 25년 음력 12월 상한(1443년 1월 15일)이며,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은 세종 28년 음력 9월 상한(1446년 10월 9일)이다. 비록 음력으로 12월과 9월이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며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마음이 느껴지는 1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