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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세종, 늘 백성 편에 섰다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이 생각하는 임금이었다는 것은 열 번 이야기해도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을 보는 동안에 ‘생각이 일깨워져서[因以起意]’ 여러 가지로 정사에 시행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세종 20/3/19)”

 

세종은 생각하는 임금이었다. 실록 속에서 ‘사고(思考)’에 속하는 비슷한 말무리로 ‘중념(重念)’, ‘상념(常念)’ 따위가 있다. 중념은 말 그대로 ‘무겁게 생각하다’이다. 어려운 주제이기에 무거운 것이다. 세종의 양위와 양녕대군에 대한 2건이 있다.

 

중념(重念) : 거듭 생각하옵건대(重念) 전하께옵서 신을 세워 후사를 삼으실 적에도 오히려 감히 마음대로 하시지 못하고 천자에게 아뢰어 결정하셨거든, 하물며 군국의 막중한 것을 마음대로 신에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세종 1권 총서) 

 

‘상념(常念)’은 ‘늘 깊이 생각하다’ 이다. (‘상념’에 대한 원문은 모두 91 건이고 그 가운데 세종 7건이다. 참고로 ‘념(念)’은 깊은 생각이다) 
 
상념(常念) : 지금 지운(志云)이 인덕전의 아들이라고 사칭하였으니 죄가 크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하기’[然予常念,]를 사람의 죄가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더라도 만약에 사정에 따라 용서할 수 있다면 모두 용서하고 싶은 것이 나의 본심이다. (세종 6/6/4) 
 
중 지운의 죄는 처음에는 비록 어미 말을 곧이 듣고 외람되게 왕자라고 자칭했고 인덕전이 이미 ‘내 아들이 아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런 일도 깊이 생각해보면 용서할 틈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 초 정도전이 정한 이름이지만 국사를 논하던 장소의 이름이 사정전(思政殿)이다. ‘깊이 생각하며 정치를 한다.’는 것으로 사정전 앞의 본전인 근정전(勤政殿)과 함께 짝을 이룬다. ‘열심히 일하고,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마에 매달고 있는 셈이다. 세종은 글을 많이 읽었다. 이는 생각을 하기 위한 길이었다. 생각한다는 습관은 세종이 ‘새로워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말생의 죄 : 대사헌 신개가 아뢰기를, “조말생이 탐욕함은 감추는데도 한계에 이르러, 개국 이래로 장물죄에 범한 자를 다시 썼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임금이 소리 높여 말하기를, “말생(末生)은 다만 노비를 받았을 뿐인데, 그때 헌부(憲府)에서 사람까지 아울러 장물로 계산하였으니 실로 너무 심하였다. 내 소견이 어쩌다 옳지 않을지 모르나, 경 등의 이러한 청은 결단코 따르지 못하겠다." 하였다. (세종 14/12/13)

 

생각 끝에는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때 세종은 왜 조말생을 죄주지 않았을까. 훗날 파저강 전투를 대비한 북방군사전문가로서의 유보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세종은 멀리 그리고 깊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 15년에 파저강 전투가 있었다.)
 
백성과 함께 하라(여민가의-與民可矣)

 


그렇다면 나라의 규칙이 백성의 해석과 의견이 갈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좋은 한 예가 있다.
 
“(경상도 감사가 토지를 다시 측량한 뒤 새로 개간한 밭을 알아내기 힘들다고 아뢰다.) 경상도 감사가 아뢰기를, "토지를 다시 측량한 뒤 새로 개간한 밭을 알아내기가 매우 곤란하오니, 오래전부터 경작하던 토지의 예에 따라 세를 받아들이게 하소서."(세종 12년 12월 20일)

 

이에 임금이 말하기를, “어째서 알아내지 못한단 말이냐. 만일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백성과 함께 하면 될 것이니, 이렇게 하도록 호조에 이르라."하였다. 이것은 과거에 새로 개간한 토지에 대하여는 2년까지는 세를 면제하고, 3년에는 절반을 감하고, 4년째에 가서 전액을 받기 때문에 이런 보고가 있었던 것이다. 

 

법을 두고 백성과 의견이 갈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종은 백성의 편에 섰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생각하는 민본 정치의 사례가 되겠다. 여기 나타난 ‘여민가의(與民可矣)’는 조선 실록 전체에 오직 이곳 한 곳에만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