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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시인이 만난 연변의 배달겨레

연변사랑을 실천하는 <신 조선족> 김한수

[석화 시인이 만난 연변의 배달겨레 3]
연변BNC & BNG 유한회사 대표 김한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 겨레의 발상지인 동북지역은 예로부터 고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 발해의 성스러운 터였다. 1800년대 말 함경도지역의 심한 가뭄과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에 떠밀려 많은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오면서 이 땅에 다시 흰옷의 그림자가 비끼게 되었다. 이들은 북방의 거친 땅에 개척의 괭이 날을 박았으며 일제에 항거해 피 타는 싸움을 벌이고 새 중국의 탄생을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1952년, 이 땅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창립하며 중국조선족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 200만 동포들은 새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역사를 엮어나갔다. 그러나 디아스포라(離散)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20세기 90년대 이후, 중국과 동북아정세의 변화로 새로운 이동을 진행하여 현재 한국 거주자만 70만 명을 웃돌고 있다. 이와 반대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10년, 20년이 넘는 시간을 “신 조선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4년 연변과학기술대학 상경학부 경영정보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연길에 와서 10년이 훨씬 넘게 살아가며 연변사랑을 실천하는 “신 조선족” 김한수 선생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적어본다.

 

 

 

- 연변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본인 소개도 곁들어 부탁한다.

 

“나는 한국 한양대학교에서 산업공학과를 다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조지아공대 산업공학과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유학할 때 연변조선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매우 큰 매력을 느꼈으며 이곳의 젊은이들을 위해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2004년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세계의 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이 시기에 중국의 조선족들과 함께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과 봉사활동을 마음껏 펼쳐 보고 싶다.”

 

- 연변에 와서 어떤 일을 하였는가? 어떤 소감이 있는가?

 

“연변에 와서 15년 세월을 보내면서 많은 일을 하였다. 연변과기대의 강의 외에 굵직한 것만 꼽아도 여러 건이 된다. 연길시 서부지구도시개발 프로젝트 정보통신(IT)부문컨설팅, 도문시 “2010 중국두만강문화축제” 대행, 룡정시 시민문화예술활동중심 건립프로젝트 컨설턴트, 연길시 청소년문화센터 건립프로젝트 기획 및 가행성연구, 연변국제연구개발원 (YiPark) 건립기획, 연변 한국국제학교 지역화교과서 기획 및 제작, 연길시소년궁 건립프로젝트, 길림한정인삼공사 ‘은백연’ 연변축구단 홍보프로모션 총감독, ‘2017 중국조선족빛축제’ 총괄기획 및 총감독 등이다.“

 

- 많은 일을 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가슴이 뛰는 일은?

 

“<2017 중국조선족빛축제>를 펼친 것이다. 9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진 중국조선족이 다시 모이고 빛을 발하며 더 큰 발전을 이룩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흩어진 조선족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반면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조선족은 같은 현상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한다. 그래서 긍정의 눈으로 기회를 삼아 많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지만 중국조선족의 마음의 고향 연변에서 함께 모여 우의를 다지고 소통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과 실천의 장을 펼치고 싶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서울 연길시를 가로지르는 부르하통하 강변에 ‘생명과 희망의 빛’을 주제로 중국조선족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수천수만 개의 밝은 불을 밝혔다. 장장 33일 동안 33만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연길과 연변을 알리고 중국조선족을 알리는데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 이 잔치 마당에 마음과 힘을 함께한 연길의 예술가, 작가들과 자원봉사자, 정부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 훌륭한 업적으로 중국 정부와 관계부문의 표창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것이 있는가?

 

“‘도문시인민정부 공로패’(2010. 8), ‘2010 중한 (연변) 정보통신(IT) 포럼 공로패’(2010. 8), ‘연변대학홍십자회 ’애심봉사상‘(2011. 6), ’연대과기학원우수교원 (2012. 12)‘, ’길림성인민정부 우수외국인전문가상‘(2016. 9) 등이다.”

 

- 현재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은?

 

“현재 BNC 기획자문 유한회사, BNG 교육과학 유한회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경영학회 연변지회장, 도문시건설국 성시연구원 전문위원,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보산업국 및 연변정보통신(IT)산업발전전문가자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사업과 교육을 통해 중국 조선족들이 중국의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함께 고민하며 일하길 소망한다.”

 

 

 

- 대담 제목을 ‘연변사랑을 실천하는 <신 조선족>’이라 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내(이숙, 연변과기대 교수)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첫째인 아들 선우와 둘째 인 딸 지우는 각기 미국에서 2002년과 2005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셋째인 아들 찬우는 2007년 연길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출생지부터 세계적이다. 셋째가 태를 묻고 자라는 연변은 우리 가족의 새로운 고향이며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백 년 전에 이주해온 중국조선족과 함께 <신 조선족>으로 영광스러운 이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