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1 (월)

  • 흐림동두천 -5.9℃
  • 맑음강릉 1.3℃
  • 흐림서울 -3.2℃
  • 흐림대전 -1.5℃
  • 맑음대구 -0.2℃
  • 맑음울산 0.9℃
  • 구름많음광주 0.5℃
  • 맑음부산 0.8℃
  • 흐림고창 0.8℃
  • 흐림제주 5.7℃
  • 구름많음강화 -1.1℃
  • 맑음보은 -2.2℃
  • 흐림금산 -4.8℃
  • 구름조금강진군 3.6℃
  • 맑음경주시 0.2℃
  • 맑음거제 2.2℃
기상청 제공

석화 시인이 만난 연변의 배달겨레

“엄마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석화 시인이 만난 연변의 배달겨레 4]
가족사로 연변조선족 이주역사를 담아내는 김영자 작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아침의 맑은 이슬 한 방울에 찬란한 햇살의 일곱 빛깔이 깃들어 눈부신 무지개빛을 뿜어내듯이 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에도 그 민족의 굴곡진 역사가 올곳게 담길 수 있다. 그것은 나라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한 가족, 한 동네, 한 지역…… 이렇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문화신문”에 이어싣기(연재)로 시작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장편실화문학 “엄마가 들려준 엄마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다시 들려주는 독특한 구성으로 엮어가는 이 작품은 중국 연변의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중국조선족의 백년 남짓한 이주와 정착 및 번영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글을 쓴 작가와 만났다.

 

 

- 장편실화문학 “엄마가 들려준 엄마이야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우리 엄마는 연변의 여느 집 어머니처럼 지극히 평범한 엄마였다. 1915년 조선 함경도 갑산골에서 가난한 농삿집 딸로 태어나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지금의 중국 조양천 근로촌에 건너와 열여섯 살에 시집가서 아들딸 다섯을 낳았다. 그러나 1946년 일제가 투항하며 퍼뜨린 세균에 온 마을이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 마을학교 교장이던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졸지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자식들을 중국과학원 연구원, 대학교 교수, 중학교 교원, 국가공무원 등으로 훌륭하게 키워냈다.

 

나도 지금 딸 가진 엄마가 되고 보니 눈물겨운 엄마의 일생이 가슴 먹먹하게 쌓여가서 몽땅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엄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내 딸에게 다시 들려주는 형식을 빌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 문학전공자가 아닌 작가가 이처럼 훌륭한 글을 써냈다. 본인 소개와 함께 글쓰기에 성공한 비결을 밝혀 달라.

 

“나는1946년 용정 태양향 중평촌이라는 시골마을에서 일제의 세균전에 남편을 막 잃은 홀어미 막내딸로 태어났다. 째지게 가난하여 남의 집에 막 보내지려다가 언니가 붙들고 우는 바람에 다행히 남아서 자라게 되었다. “맹모삼천” 이야기보다도 자식사랑이 더 큰 어머니 덕분에 대학을 다니고 중학교 교원이 되었다. 그리고 2004년까지 30여 년 동안 쭉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퇴직하고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니 여럿 있었다. 등산, 노래교실, 시랑송회, 컴퓨터학습반 등 이곳저곳 많이 다녀보았다.

 

그러다가 예전부터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엄마의 이야기가 자꾸만 생각나서 글쓰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문학은 배운 바 없었기에 부득불 먼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연길)문학아카데미를 찾아가 열심히 배웠다. 비록 내 인생에 글을 써 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니 이 또한 큰 수확이었다.“

 

- 한평생 수학을 가르친 중학교선생님이 글쓰기에 도전하여 많은 성과를 이뤄내었다. 어떤 작품을 창작하였는가?

 

“수필을 많이 썼다. 수필작품으로 “저 언덕에 묻고 온 추억”, “이불이야기”, “5 점짜리 개구쟁이가 대학교 교수로”, “보슬비 내리던 날”, “나의 첫 필통”, "<바보> 친구 준선이”, “까치의 울음소리에”, “고향 뒷산에 묻고 온 이야기”, “하얀 설기떡”, “엄마의 학교”, “말 한마디”, “만남의 즐거움”, “고향에 다녀오세요”, “엄마로 되던 날” 등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시 “집체호친구”, 시조 “고향의 사계절”, 동요 “새끼오리 입학하던 날”, 가사 “꿈엔들 잊으랴” 등 작품도 썼다. 그 가운데 내가 가사를 쓴 노래 “아! 두만강, 아! 장백산”과 “곱게 곱게 피여다오”가 연길아리랑방송과 연길텔레비죤방송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었다.“

 

- 이런 작품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가?

 

“신문, 잡지, 방송 등 다양하다. 중국에선 위쳇 “해란강문학성”, ⟪연변녀성⟫, ⟪청년생활⟫, ⟪로인세계⟫, ⟪민들레⟫ 등 잡지와 ⟪길림신문⟫, ⟪종합신문⟫ 및 “중앙인민방송”, “연변라디오방송”, “연변텔레비방송”, “연길아리랑방송” 등에 발표되었다. 한국에도 많이 발표되었는데 ⟪우리문화신문⟫과 계간 ⟪문학시선⟫ 그리고 한국KBS방송에도 나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 훌륭하다. 이제 또 하고자 하는 일은…

 

“요즘 ‘백세인생’이라 한다. 지금 나는 중국(연길)문학아카데미 회원, 연변음악가 협회회원, 가사창작학회 회원 그리고 연변노간부대학 컴퓨터학원 학생으로 새로운 공부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남은 인생에 후회가 없도록 깨끗이 살고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문학은 외항이지만 좀 더 노력하여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윗세대들이 겪어온 삶을 적어 가치가 있는 재료로 자녀와 후대들에게 남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