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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을 강조한 조선의 임금 세종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생각하는 정치를 펴는 세종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묻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위에 관계되지 않은 일이라면 독단을 내릴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이 세종이 임금으로서 직에 임하는 자세이고 그 근간에 백성을 생각하는 정신이 업정신이다.

 

오늘 날 우리는 각기 직(職)을 가지고 일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영업이고 농사직이다.(현재 우리나라 직업의 종류는 1만 4천여 개다. 2013년 기준) 직은 맡은 바 일이다. 그런데 일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데 이것이 업정신이다. 업정신은 몸과 정신이 합쳐 이루어지는 의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칭 직과 업을 합치어 직업이라고 부른다.

 

많은 청년과 50대가 직이 없다고 산에 오르거나 SNS를 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결국 하차하게 됐다.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사람이 직을 찾고만 있을 뿐 업정신 이야기는 빠져 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무슨 일을 왜 하고자하며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하는 생활에 대한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세종은 직과 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직과 업을 강조한 세종

 

실록의 기록에는 먼저 직의 종류 그리고 백성이 매일 먹고 사는 직으로서의 생업에 대한 기사가 있다. 세종의 관심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직[업] : “국가에서 십학을 설치하고 ... 매 학(學)마다 제조만 있고 참좌관이 없어서……. 더구나 악학(樂學)ㆍ의학(醫學)ㆍ음양(陰陽)ㆍ풍수(風水) 등 학문은 평소에 가르치지도 않다가 임시로 고강(考講, 과거시험에서 지정한 경서를 외는 것으로 치르는 하던 시험)하게 되니, 인재(人材)를 뽑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세종실록》즉위년 12월 17일)

 

“바로 십학(十學, 조선시대 국가 운영에 필요한 각종의 전문 관리를 양성하던 기관)에 관리(참좌관)를 둔다는 것은 학문의 다양성과 진흥책을 펴는 일이다. 직만이 아닌 업의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들이 상호 교류하며 발전하는 방책을 세웠다. (십학에 대하여는 첫째는 유학, 둘째는 무학, 셋째는 이학(吏學), 넷째는 역학(譯學), 다섯째는 음양 풍수학, 여섯째는 의학, 일곱째는 자학(字學), 여덟째는 율학, 아홉째는 산학, 열째는 악학(樂學)인데, 각기 제조관을 두었다.” 《태종실록》 6년 11월 15일)

 

그리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당시에도 직의 다양성이 있었음이 기술자들인 공인 조사에서 잘 나타난다. 한양의 성을 쌓는데 공장(工匠, 기술자)이 2,211명이나 동원되었다.

 

공장工匠 : 우의정 정탁으로 도성 수축 도감 도제조를 삼고, 제조 33명과 사(使)ㆍ부사(副使)ㆍ판관(判官)ㆍ녹사(錄事)를 합하여 1백 90명을 더 두다. 처음에 병조참판 이명덕이 그 일을 주관하여 여러 도의 정부(丁夫)를 합계 43만 명을 징발하였다. (중간 줄임) 모두 32만 2천 4백 명이요, 공장(工匠)이 2천 2백 11명이다. (《세종실록》 3년 12월 /10일)

 

다음으로 생업 곧 생활을 영위하는 일상 직업에 관한 기록이다. 《조선실록》 ‘생업’ 원문 전체 기록 252건 가운데 세종이 말한 것이 59건으로 약 1/4을 차지한다. 세종은 생업을 강조한 조선의 임금이다. 세종은 일상의 일이 있어야 안전하고 일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생업’ 정신을 강조하고 실현하려던 입금이다. 백성인 민(民)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민이 업정신을 통해 생민으로 가는 길이다.

 

 

   민 / 생민    →   업 / 생업    →  (업/ 정신)

   -----------------------------------------------

   하민                 로민(勞民)  →  (생민)

 

 

바닥 층에 있는 백성은 소민 혹은 하민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권리 면에서도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낮은 신분이다. 다분히 농민이나 기술자로 농사꾼, 일꾼이라 불리고, 머리를 쓰는 정신노동자에게는 직이라는 이름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일의 근본에는 무엇이 있을까. 업에 대한 정신적 자세라고 하겠다. 자기가 하는 직에 대한 ‘업 정신이 어떠한가?’이다.

 

‘업 정신’은 무엇인가? “이 때에 한나라 군사는 업행(業行)의 시점에 있었다. 무릇 일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을 업이라 한다.” (《치평요람》 제8집, 16권) “是時漢兵已業行 事已爲未成曰業。” 여기서 ‘사위미성(事爲未成)’이란 일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세종과 정인지는 《치평요람》에서 한 고조 유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상 군주의 업(業)에 대해 말했다. BC 200년 쯤 한 고조 유방과 신왕 묵돌[冒頓]과의 평성 전투에서 위기를 모면한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업정신은 우리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계속 이어가야 할 가치다. 엄숙한 철학적 명제다.

 

직(職)에는 업(業)정신이 따라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나머지 업 정신이 없으면 어찌될까.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외교관이나, 번역가, 통역사가 되는 줄 알았더니 많은 학생이 의대를 간다고 한다. 동남아로 일 찾아 나서라는 것도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접고 동남아로 나가 취직해보라는 말이다. 업정신 곧 나는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취직이 전부라는 생각은 설령 일을 찾았다 해도 퇴사하기 십상이다.

 

사회학에 '지위와 역할(position and role)'이란 논리가 있다. 자기 자리에 따른 알맞은 역할이 있는 것이다. 역할을 높이고 넓혀가며 자기 책임을 다해가는 것에 대해 세종은 직과 업정신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생생지락(生生之樂)’ 곧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세종의 직과 업의 기본 목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