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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은 ‘생생지락’으로 또 ‘안거낙업’으로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6]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업의 기초는 생업이다

 

업은 생업과 다른 말이 아니다. 이민족인 도도웅와에 대한 답서로 최종 목표는 그들도 생업에 종사하게 하려는 배려를 보이고 있다.

 

생업 즐기게 : (맹산 현감 박간 등을 불러) "수령은 〈임금의〉 근심하는 마음을 나누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임무가 지극히 중대하다. 그대들은 나의 회포(懷抱)에 부응(副應)하여 백성을 어루만지고 폐해를 없애는 데 힘쓰라.“ 그러자 박간이 ”명령을 받잡고 그 도를 직접 살펴보았더니, 넓게 빈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비록 많으나, 살고 있는 백성이 드물고 적어서 모두 새와 짐승들의 터전이 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백성들이 어려움이 많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며 생업(生業)을 즐기게 된다면 어찌 빈 땅이 있겠느냐. 그대가 가서 백성에게 갈고 심기를 권장하여 풍성하고 부유함을 이루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7년 12월 7일)

 

박간이 진헌마(進獻馬, 중국의 황제에게 바치던 말)를 점검하니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많으나, 사는 백성이 드물다고 하자, 임금이 한 말이다. 농사짓게 환경을 만드는 일이 관리가 할 일이다. 그밖에도 일반 직업으로 ‘고기도 잡고 술도 팔아서 생활을 해 나가기를 원한다.(釣魚賣酒, 以資生業)’(《세종실록》 8년 1월 3일)는 생업으로 모든 생활을 포용한다.

 

직업 : (수령의 임기에 관한 사헌부 집의 김타의 상소문) 자주 옮기면 사람의 마음이 구차스러워, 직업이 굳건하지 못할 것이며, 오래 맡기면 사람의 마음이 나태해져서 일보는 것이 차츰 쇠해질 것이오니, 자주 옮기는 것과 오래 맡기는 것이 그 폐단은 같습니다. (《세종실록》 7년 6월 2일)

 

직업은 직과 업의 합성어로 업은 평민, 직은 사대부에게 적용되었다. 이런 업과 직은 합하여 직업이라는 일반어가 된다. 직업(職業)이란 표현은 조선 조 전체는 24건이고 세종 1건, 성종 6건, 중종 8건이다. 중기 이후 상업의 발전으로 직업도 다양해져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종 이후 중종 때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록에서는 일반적으로 업이나 직으로 쓰는 게 일반적이다. 업(業)은 9천6백여 건, 직(職)은 4만9천여 건 보이고 있다.

 

업과 생업 : (허조에게 명하여 도도웅와의 서한에 답서하게 하다) 여러 고을에 나누어 자리 잡게 한사람들에게는 이미 옷과 식량을 넉넉히 주어서, ‘각기 그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하게 하였다.’ (使之各安生業) (《세종실록》 2월 윤1월 23일)

 

업이 생업이 되는 것은 업에 감성(感性)을 입히는 일이다. 업을 통하여 느낌 곧 마음으로부터 감흥 혹은 즐거움, 때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업의식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민이 감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생각’의 실마리로서 ‘느낌’을 갖는 일이다. 글자를 모르고 이로 인해 지식을 쌓을 수 없는 천민이라도 일을 통한 업의식을 알게 되고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과정, 이것이 세종이 바라는 인간의 자기 발견의 단초 제공이라 할 수 있다.

 

업은 ‘안거낙업’으로 간다

 

 

직을 갖고 업정신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목표는 생생지락(生生之樂)에 있다. ‘생생’을 조금 풀어보자. ‘생생’은 주역(周易, 繫辭上傳)에서는 ‘生生之謂易(생생지위역)’이라고 한다. 곧 낳고 낳음을 역(易)이라 한다. 천지자연의 모습을 보면 양(陽)은 음(陰)을 낳고, 음은 양을 낳아서 서로 변화하며 그치지 않는데 이러한 음양의 변화를 역이라 한다. 역에서 보면 우주의 변화나 인간 세계의 삶과 죽은 그리고 흥망성쇠도 이 이치에 따르는 것이라 한다.

 

‘생생’은 우리말로는 낳고 다시 낳고, 이다. 또 다른 뜻으로는 살고 사는 것인데 단순히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겨내는 ‘살아내는’ 삶을 말한다. 생생지락은 고통스러우나 일을 통한 작은 기쁨을 느끼게 되는 삶을 말한다.

 

함길도에서 정갑손이 “함길도 사람들을 다시 불러 살게 하지 않는다는 교서를 내려와 펴서 읽어 주면, 사람마다 깨달아서 안거낙업(安居樂業,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함)할 것이며, 떨어져 옮겨 다니는 사람도 모두 마을에 돌아오게 될 것이니, 이것이 어리석은 신의 계책입니다." (《세종실록》 25년 10월 24일)고 고한다. 곧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안심하고 ㉯이 땅에 돌아와 업에 기쁘게 종사하고 ㉰안거낙업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모두가 안정되어 업에 종사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생생의 목표인 ‘안거낙업’의 상태에 이름이 된다.

 

업이 생업이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자기의 업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이 인식이란 사대부에게 있어서는 심 곧 마음으로 아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의 기준에서는 《대학(大學)》 가운데 성의(誠意) - 정심(正心)’ 의 정심[바른 마음]이고 심학으로 보면 마음이다. 백성에게 있어서는 업을 인식한다기보다 느낀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내가 일로 존재한다는 느낌에서 나아가 작은 노동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업에 대한 인지라 할 것이다. 업이 생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순환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이 진화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