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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세종처럼 우즈벡 역사에 획을 긋는 인물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7]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지난 2월 20일부터 8일 동안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에 한국 ‘문화미디어포럼’ 회원들과 우즈벡 국립저널리즘대 공동주관의 미디어 문화 세미나를 위해 타슈켄트와 유네스코 유적 도시인 사마르칸트를 다녀왔다.

 

느닷없이 세종과 우즈베키스탄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먼저 요약하면 나의 발표는 세종이 옛 사람이 아니라 세종이 행한 과학적 변역(變易) 정신이 오늘날 4차산업 시대에도 통하는 정신임을 예증했다.(이에 대한 글은 후에 소개) 이 발표 이외에 얻은 소득으로는 우즈벡 역사에서 세종과 비슷한 시기에 세종처럼 우즈벡 역사의 획을 긋는 인물이 어문학 그리고 천문학에서 있었던 것을 확인한 일이었다.

 

어문학의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oiy)와 천문의 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bek)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우즈벡은 현재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 터에서는 고구려 사람이 조우관(깃털모자)을 쓴 벽화가 발견된 바도 있어 예부터 한반도와 거래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종과 우즈벡의 역사적 인물을 비교 연구할 기회를 넓혀가고 싶다. 이는 문화 교류와 함께 특히 세종 시기의 세계문화를 비교하게 되는 좋은 비교연구로 진화될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세종을 우리나라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을 것이다. 우즈벡의 역사적 두 인물을 소개한다.

 

알리셰르 나보이(Alisher Navoiy, 1441년~1501년)는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티무르왕조 전성기였던 샤흐루흐(Shakhrukh) 통치기에 고위관료였던 아버지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알리셰르는 그 자신도 재상까지 지낸 고위관료였다. 그는 동시에 중앙아시아의 정치가이자, 신비주의자이자, 미술가이며 위구르 전통 시인이었다. 최초로 우즈베크어로 쓰인 글을 쓴 작가라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극장과 기념비가 있는 등 그를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여긴다.

 

 

알리셰르 나보이가 등장하면서 투르크어가 그 한계를 넘어 당당히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알리셰르는 30년 동안 30개의 작품을 차카타이 (Chagatai) 투르크어로 집필했다. 하위 언어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고 다수의 투르크계 백성을 위해 자신의 생활 언어로 작품을 쓴 것이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된 작품을 동포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르크어로 문학작품을 저술해 읽히고자 했을 것이다. 불편한 페르시아어로부터 백성들이 편한 터키어계의 우즈벡어를 발굴 확정시킨 것과 마치 백성이 모르는 한자 대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과 통하는 바가 있다.

 

투르크 언어가 문학적 목적으로 페르시아어보다 우월하다고 믿었으며 그 당시에는 드문 견해였다. 그는 페르시아어와는 달리 투르크어 어휘의 풍부함, 정확성 및 가단성(유연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백성이 사용할 한글 창제를 뜻한 세종의 의도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들은 오스만 투르크, 카잔 투르크와 같은 다른 투르크계 종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투르크 민족들이 모국어로 문학작품을 집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투르크어 계열의 언어는 민족에 따라 40여개가 있다.

 

알리셰르 나보이의 대표 작품은 다섯 가지 사랑이야기로 구성된 ‘함사 (Hamsa)’다. (성동기, 인하대학교, Bell Ringer 인문산책 참고)

 

 

 

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bek, 1394~ 1449)은 티무르의 손자로 뛰어난 수학자, 천문학자로 이 시대에 앞선 기술로 태양계나 시간 개념을 완성했다. 학문과 예술에도 관심이 컸다. 오늘날 1일 365일의 오차는 다른 나라 것과 비교해 오차가 가장 적다. 울르그벡은 천문에도 관심이 많아서 천문대 등이 남아 있으나 지하뿐이다. 더 발굴하면 기존의 천문대가 무너질 수 없어 조사를 멈추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 그의 기록은 책 《Zij Guragan》에 보전되었고 이는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 천문학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세종이 이천, 장영실 등과 천문을 연구하고 천문기구를 만든 사실과 비교할 수 있고 아라비아 천문과학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재해석되는 과정도 앞으로 연구해 볼 주제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우즈벡의 역사적 인물을 소개하는데 그쳤으나 앞으로 세종을 동시대 혹은 다른 시대의 역사적 인물과 견줘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이끌고 변화시켜 나갔는지 비교 연구하는 일이 세종을 세계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