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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통일된 나라의 고향에 가고 싶다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6]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누구나 다 자기의 소원이 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해마다 봄이 와 어김없이 피어나는 울타리안의 살구꽃을 보면 버릇처럼 엄마손 잡고 “또 살구꽃이 피였소. 얼마나 곱소? 내 고향에두 감나무 잘 자라고 있겠지?” 하곤 “난 정말 고향에 가보고 싶소. 해방된 내 나라 충주에서 우리 족보를 펼치고 떳떳이 충주김씨 가문회의를 열어야겠는데…… 언제면 이 소원 이룰지? 우리애들 잘 키워 학문으로 대를 잇게 하기요……”

 

먼 옛날 아버지는 남쪽의 감나무 우거진 충주에, 엄마는 또 멀리 북쪽의 갑산골에 태를 묻었다고 한다. 얼마 세월이 흘렀는지 지금도 북과 남은 그 “작은 금” 하나 그어놓고 동강난 땅덩어리 위에서 친인을 서로 그리며 목메어 설음에 흐느끼고 있지 않니? 일제 강점시기 나라 잃고 땅 잃고 살길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는 수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지금도 메아리쳐 들려오는구나!

 

여섯 살에 아버지의 쪽지게에 앉아 사품치는* 두만강을 건넜다는 엄마의 서러운 이야기…… 애를 업고 물함지이고 남편 따라 두만강에 들어섰다는 외할머니의 구슬픈 이야기…… 열서너살에 동생들 손을 잡고 자기 아버지 따라 넘실거리는 압록강을 허둥지둥 건넜다는 아버지의 쓸쓸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영화 필름마냥 내 눈앞에 펼쳐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은 내가슴 속에 흘러들어 시냇물로 강물로 되어 흐르고 있구나! 저기 압록강 두만강도 지금 저렇게 넘실거리며 흐느끼고 있구나! 아버지의 소원은 이런 설음 속에서 자꾸만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이국땅에서 자란 엄마는 16살에 나의 아버지한테 시집왔었다 한다. 그때 우리집은 “학문으로 대를 잇는다.”는 가문의 준칙으로 맏아들인 아버지만을 공부시켰더란다. 그리고 28살의 아버지는 충주 김씨 가문의 족장으로 족보도 관리하고 김씨 가문 전체회의도 집행하시더란다. 그러나 아버진 늘 한숨 쉬면서 엄마보고 “내 고향은 무궁화, 목련화, 진달래가 피어나는 조선이오. 내 동년은 그곳에 있소. 한강, 대동강이 흐르는 내 나라 광복이 되면 같이 꼭 가보기오.”하시더란다.

 

꽃피는 봄이 오면 “우리집 앞마당에 살구꽃 피었으니 내 고향 충주에는 감나무꽃 피었겠지? 빼앗긴 내 고향 산과 들에도 무궁화 피었을까? 내가 뛰놀던 산과 들 가보고 싶구나! 당신의 고향 갑산에두 진달래 피었겠구만…… 언제면 마음 놓고 가볼 수 있겠소?”. 또 평시에 늘 책을 보시면서 놈들 때문에 하던 공부도 채 못하였음을 한탄하시면서 “우리 가문은 학문으로 대를 잇는 가문이니. 명심하기오. 저 우리애들 공부를 잘 시켜야겠소.”라고 하시더란다.

 

 

드디어 1945년 그렇게 고대해 기다리던 광복을 맞아 이젠 고향에도 가볼 수 있겠다며 기뻐하시던 아버지! 1946년10월 “머저리병”이라는 괴상한 병이 온 마을을 휩쓸었고 우리집은 새끼줄을 둘레에 쳐져서 경계선까지 늘이었단다. 8살짜리 큰오빠를 제외하곤 모두 쓰러졌는데 아버지가 제일 중했다하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락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궂은비 쓸쓸히 내리던 어느 날이었단다. 아버지는 힘겨웁게 역시 앓고 계시는 엄마 손을 만지면서 “난 아무래도 안되겠소. 저 불쌍한 것들을 당신 한 몸에 맡기고 먼저 가야할 것 같소. 내가 이 병마들을 싹 걷어 가지고 가야겠는데…… 우리 고향에 같이 가보자는 약속도 못 지키고…… 우리애들 학문으로 길을 잘 닦아주려고 했는데…… 미안하오……”하면서 힘겹게 한숨 쉬던 며칠 뒤 조용히 눈을 감으시더란다. 43살의 젊으신 나이에……

 

고향, 고향이 뭐길래. 조국, 조국이 뭐길래, 이 세상 떠나시면서도 그토록 고향, 조국을 그리었을까? 고향도 조국도 모두 자애로우신 어머님의 품이시다. 하기에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로 어머니품을 떠나야만 하는 그 아들- 나의 아버지는 흐느껴 외쳤겠구나!

 

“고향에 가보고 싶다. 통일된 내 나라에 언제면 갈까?!”

“학문으로 애들의 길을 닦아 주오……”

 

아버지의 소원은 애들을 공부시켜 나라의 인재로 키우는 것이었단다. 아버지의 소원은 우리 백의민족의 소원이었단다. 언제면 그 소원 이루어지겠는지? 저 망망한 밀림 속의 장백산 미인송도 푸른 하늘 꿰뚫고 솟아 우리 백의민족의 그 슬픔을 외치고 있지 않니? 저기 백두봉우에 흰 수건 동여맨 우리 투사들 넋이 지켜보고 있단다.

 

아버지의 소원, 아니 우리 백의민족의 소원은 반드시 삼천리금수강산에서 꽃이 필 것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별나라에서 하늘아래 굽어보시며 깜빡깜빡 빛을 뿌려 통일잔치 준비를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통일의 그날은 지금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통일잔치 맞는 그날 생각만 해도 흥분으로 들뜹니다. 그날의 그 기쁨은 아버지 계시는 먼 하늘나라에도 멀리멀리 울려 퍼질 것이고 나는 또 선참으로 아버지에게 그 기쁨의 메시지를 보낼 겁니다.

 

* 사품치다 : 세차게 부딪쳐 움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