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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다람살라, 이젠 공기청정기가 필요할 수도

티베트의 젊은이들, 현 체제에서 편하게 살기를 원해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1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일어나서 《사피엔스》를 읽었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은 물론 자기보다 더 강한 거대 동물들을 제압하고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쓰다가 어느 순간 협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똑똑해지기 시작했고, 인지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인지혁명’은 《사피엔스》의 제1부 제목인데, 나로서는 생소한 용어였다.

 

호모 사피엔스 사이의 협동이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유발 하라리의 견해에 따르면 협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국가, 신, 돈, 인권 등의 개념을 믿고서 정치 체제, 종교, 교역망, 법적 제도 등의 협동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들은 허구, 곧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설명이다. 매우 위험해 보이는 설명이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곰곰이 음미해 보면,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신’은 실체가 아니고 허구 곧 지어낸 이야기이며 따라서 신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기독교도 허구라고 해석될 수 있다. 국가라는 개념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가 되나, 신까지도 개념에 불과한 허구라고 주장하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유일신 여호와를 강하게 믿는 유태교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그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지 않는 것이 의아하기만 하다. 이 주제는 더 공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8시에 또 다른 한국 사람을 만나러 사원 정문 앞에 있는 ‘OK 카페’로 갔다. 우리가 만난 젊은 여성을 병산은 지애보살이라고 호칭했다. 지애보살은 내일 우리가 달라이 라마를 만날 때에 티베트어를 한국어로 통역해줄 통역사이다. 지애보살은 매우 귀엽고 앳된 인상까지 주는 여인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녀의 나이를 20대 대학생 정도로 짐작했는데, 나중에 병산에게 들어보니 30대 비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나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요즘 여자의 나이를 정말로 짐작 못하겠다. 여자뿐만 아니고 남자들도 잘 늙지를 않아서 남자 나이 역시 짐작을 못하겠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 아예 나이에 대해서는 추측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

 

지애보살은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는 부모님을 따라서 22년 전에 다람살라로 이사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람살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티베트어를 잘하고 또 한국어도 우리와 똑같은 수준으로 잘 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인도말도 잘할 것 같다. 지애보살에게서 인도에 관해서 그리고 티베트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가 있었다.

 

지애보살은 다람살라 북서쪽에 있는 라다크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라다크라는 말을 들으니 반가웠다. 왜냐하면 나는 라다크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환경학의 고전인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라다크가 나오는데,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라다크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데, 고도가 3,500m 정도로 높아서 여행객들은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애보살의 경험으로는 고산병을 이겨내려면 세 가지를 지키면 된다고 한다. 첫째 적게 먹을 것, 둘째 적게 움직일 것, 그리고 셋째 도착하면 2~3일 가만히 쉬었다가 등산이나 트레킹을 시작할 것. 고산병이 심하면 여행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수밖에 묘책이 없단다. 라다크 지방에는 ‘레’라는 이름의 국내선 공항이 있어서 비행기로 들어간다고 한다.

 

라다크는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1992년에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지명이다. 호지 여사는 라다크에 16년 동안 살면서 자기가 관찰한 것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 책에서 호지 여사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임에도 라다크 사람들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생태적 지혜를 잘 소개하였다. 동시에 호지 여사는 라다크가 서구식 개발이 진행되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비극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호지 여사는 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은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1992년 펴낸 이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서구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살아가는 라다크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인간 사회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청춘이 바로 어제 같은데 나도 이제 올해가 칠순이니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두 다리가 쌩쌩하므로 더 늙기 전에 가까운 시일 안에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고 싶다. 이제는 대도시를 방문하고 문화 유적을 찾아가는 인문학적 여행보다는 높은 산과 넓은 초원, 빙하, 호수, 강 등등 아름답고 특이한 자연을 찾아가는 지리학적 여행을 하고 싶다.

 

병산은 앞으로도 계속 방학 동안에 4,000km를 더 걸어서 2020년 여름에는 로마에 가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친견하겠다고 한다. 실크로드 순례길은 중앙아시아, 터키를 거쳐서 동부 유럽을 지나 독일에서 알프스 산맥을 걸어서 넘어 이탈리아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는 내년 여름에 병산과 함께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꼭 한번 걸어서 넘고 싶다. 올 여름에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을 지날 때에 3주일 정도 순례에 동참하고 싶다.

 

지애보살의 말에 의하면 다람살라는 예전에는 매우 조용하고 한가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3~4년 전부터 인도 사람들이 관광이나 휴양을 위해 다람살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지애보살의 설명으로는 인도 사람들이 부유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디 총리가 2014년에 집권한 이후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외국 기업을 유치했다고 한다. 이어서 세제를 개편하고 복지정책을 추진하여 전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도의 중산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중산층이 늘어나 지갑이 두둑해지니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경제개발의 여파로 산골 동네인 다람살라에도 자동차가 늘어나 공기가 탁해지고, 이제는 공기청정기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다람살라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공사를 시작했는데, 1년 뒤에 개통된다고 한다. 지애보살은 개발의 물결이 밀려오기 이전의 다람살라 분위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애보살은 22년 동안 살아온 다람살라를 이제는 떠나야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녀는 라다크 지방으로 떠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애보살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 노인들은 모두 티베트의 독립을 원하고 가능하면 티베트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티베트에 사는 젊은 세대의 생각은 바뀌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에게 교육상의 특혜, 그리고 취업상의 특혜를 주어 불만을 달래는 정책을 추진한 결과 티베트의 젊은이들은 인도로 망명하여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냥 라사에서 교육을 받고 현 체제에 적응하여 편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인간의 욕구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을 것이다. 연변에 사는 조선족 젊은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연변에 살면서 조선족자치구를 지켜내는 것보다는 대도시나 베이징으로 진출하여 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보다 나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티베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추구하는 목표는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