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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못 오는 까닭 3가지

인도 사람들, 예수는 불교 승려였다고 생각
다람살라 방문기 1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지애 보살은 달라이 라마의 통역사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애보살은 달라이 라마와 관련되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뉴스를 많이 알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를 수행하는 비서는 형님의 아들(그러니까 조카)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 사원의 주 수입원은 달라이 라마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강연의 강연료라고 한다. 어느 날 달라이 라마는 측근들에게 “나는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서 강연할 때에는 미안한 마음이다.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로 오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 머튼(1915~1968)은 미국 가톨릭교회의 수도사였는데, 죽기 몇 주 전인 1968년 11월 태국에서 열린 수도원 장상(수도원장)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이때 다람살라로 가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는데, 달라이 라마는 3일 동안이나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머튼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당시 다람살라의 티베트 불교도들은 미국에서 생불이 왔다고 칭송했으며 달라이 라마는 그 후 가장 존경하는 기독교인으로서 머튼을 꼽았다고 한다.

 

청전 스님은 다람살라에서 살고 있는 유일한 한국 스님으로서 달라이 라마의 애제자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 불교 역사를 보면 원측 스님이라는 분이 불교 경전 하나를 티베트어로 번역하였는데, 청전 스님이 원측은 한국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지애 보살의 말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동양의 여러 나라에 불교가 전파되어 있지만 한국은 비구니계(戒)의 전통이 살아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 불교계에서 초청장을 보내면 다른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한국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지애 보살의 말을 들어보면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인데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기독교계에서 반대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뒤에 천주교 신자가 크게 늘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계에서 은근히 반대한다고 한다.

 

둘째는 조계종에서 반대한다고 얘기된한다. 총무원장 명의로 초청장을 보내야 하는데, 조계종 지도부가 소극적이다. 왜 그럴까?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오면 세속화 되어가는 한국 불교에 대해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할 것으로 염려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불교계의 내부를 잘 알지 못하는 외부자로서는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셋째로 한국 정부의 외교부에서 반대한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달라이 라마에게 비자를 주지 말라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염려하여 한국 정부가 반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티베트 차를 주문하여 마셨는데,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나에게는 한국 차와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병산과 나는 지애 보살에게서 달라이 라마를 만날 때 의전에 관련된 주의사항을 들었다. 병산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우리식으로 삼배를 하겠다고 말하니, 지애 보살은 접견 장소의 사정상 엎드려 삼배를 하는 것은 무리고 그냥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 정도로 할 것을 권했다. 우리가 직접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보안상 금지되어 있고 대신 의전실에서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보내준다고 한다. 우리는 내일 달라이 라마 친견 직전 아침 8시에 카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람살라에서의 일정은 매우 느슨하였다. 바쁜 일정이 아니었다. 공식 직함이 ‘생명탈핵 실크로드 순례단장’인 병산이 모든 일정을 결정하고 순례단원인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선택에 따른 갈등은 병산의 몫이고, 나는 마음 편하게 따라다니면 된다. 지애 보살과 헤어진 뒤에 우리는 아침 10시에 다른 장소인 피스(Peace) 카페에서 로자 씨를 만났다. 특별한 목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그저 차 마시며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난 것이다. 만나는 시간과 장소는 다람살라 거리를 잘 알고 있는 병산이 정하였다.

 

델리에 사는 로자 씨는 다람살라에 한 달 정도 쉬러 왔다고 한다. 다람살라 외곽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고 있는데, 게스트 하우스는 호텔에 견주어 거의 1/3 수준으로 값이 싸다. 시설은 조금 떨어지지만 숙박하기에 큰 불편은 없다고 한다. 식사는 세끼 다 사 먹거나 가끔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단다.

 

조금 있자 다른 한국인이 카페에 들어와 우리와 합석을 한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젊은 남자는 여행자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이름은 안현철. 나이는 40살이고, 비혼. 여행하기를 좋아해서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 다람살라에 왔다고 소개한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았고 언제까지 여행할지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다람살라에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를 빌려서 장기 투숙하고 있다고 한다. 로자 씨처럼 현철씨도 다람살라 분위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는 며칠 전에 병산을 우연히 한국 식당에서 만났는데, 로마까지 순례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놀랐단다. 병산의 순례 이야기를 듣고서 놀라지 않는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그는 병산이 오늘 다시 만나자고 해서 카페에 나왔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철씨 가 제안을 했다. 자기가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경치 좋고 근사한 카페(Cafe Trek and Dine)가 있는데 거기 가서 점심 식사를 하자고. 그 카페는 다람살라에서도 가장 북쪽 높은 곳에 있다. 거기까지 걸으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택시를 타는 대신 걷기로 결정을 했다. 네 사람은 시간이 많고 전혀 바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걷자는 데에 찬성을 한 것이다. 걸어가는 중간에 나는 모자 가게를 발견하고서 디자인이 티베트다운 모자를 하나 샀다. 가격은 200루피이니 우리 돈으로는 3,500원 정도다.

 

 

풍광이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기독교 선교사인 로자 씨에게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의 생애 가운데 14살에서 29살 사이의 행적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이 없다. "잃어버린 16년"이라고 알려진 이 공백은 1894년까지 예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신비로 남아 있었다. 19세기 말 러시아 의사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는 인도,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등을 여행했다. 그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1894년에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노토비치는 여행 중인 1887년에 다리가 부러졌는데, 라다크에 있는 도시 레(Leh)에 있는 티베트 불교사원에서 다리를 치료하면서 지냈다. 이때 수도사들이 노토비치에게 티베트어로 쓰인 두 권의 책 《이사의 삶, The Life of Saint Issa》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사의 이야기가 예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윤회를 믿는 인도에서는 ‘라마’라고 부르는 성스러운 사람이 사망하면 현자가 별자리와 다른 징조를 검토한 뒤에 라마의 환생자를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환생자라고 인정되는 아이가 발견되면 충분히 자랐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를 데리고 부모를 떠나서 불교 신앙 교육을 받게 한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이 관습이 예수가 탄생한 직후에 예수를 방문한 3명의 동방박사 이야기의 근원이라고 추측한다. 동방에서 온 현자들은 예수를 관찰하며 기다리다가 13살에 인도로 데려가서 불교도로 교육시켰다. 당시에 불교는 이미 500년 역사를 가진 종교였으며 기독교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 뒤 1952년에 러시아의 과학자 니콜라스 로리히 (Nicholas Roerich)가 티베트 수도원에서 예수에 관한 다른 문서를 찾아내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예수는 베나레스, 바라나시 등등 인도의 여러 고대 도시를 방문하였다. 예수는 불교를 공부한 뒤에 승려가 되었다. 불교 승려인 예수는 30살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유태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배척하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인도로 도망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쓴 4복음서에는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제자들의 믿음이지 사실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예수가 카슈미르 지역과 티베트 지역에서 살다가 80살 나이로 죽었다고 믿는다. 특히 카슈미르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가 죽은 뒤에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Srinagar)에 있는 신전에 묻혔다고 믿고 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2011년 12월 11일에 유튜브에 게시된 BBC 다큐멘터리 “예수는 불교 승려였다”이다. 아래 주소로 들어가면 영어로 된 49분짜리 동영상을 볼 수 있다.

 

▶ BBC 다큐멘터리 “예수는 불교 승려였다”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