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2 (목)

  • 구름많음동두천 27.3℃
  • 구름많음강릉 29.1℃
  • 연무서울 29.1℃
  • 흐림대전 27.7℃
  • 대구 25.3℃
  • 울산 25.5℃
  • 구름많음광주 26.5℃
  • 부산 26.0℃
  • 구름많음고창 27.7℃
  • 흐림제주 29.8℃
  • 구름많음강화 27.9℃
  • 흐림보은 28.1℃
  • 흐림금산 26.3℃
  • 흐림강진군 27.7℃
  • 흐림경주시 25.5℃
  • 흐림거제 26.9℃
기상청 제공

백성에게 마음으로 다가갔던 세종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사맛의 길)’ 함께 걷기 2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관리와 전문가들 그리고 백성의 지혜까지 경험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제도 개혁과 사물의 변화에 응용되었음을 보아왔다.

 

새로운 4차 사업시대에 옛 경험에서 얻을 것이 있을까, 의문이 갈 것이다. AI, IT의 4차 산업시대에 지식은 컴퓨터, 로봇, AI 등이 대신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최후의 판단은 사람이 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사람은 결국 자신과 사회 속에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냉장고의 역설

 

사람은 식품을 오래 두고 또한 신선하게 먹기 위해 냉장고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영국의 가정을 찾아가 냉장고를 뒤져보니 어느 집에서나 주식인 빵의 1/3은 오래되어 먹을 수 없어 버리고 있었다.(TV 다큐멘터리 방송 소개) 우리나라에서도 아무리 빈곤층이라 하더라도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는 몇 분의 일의 음식은 기일이 지나 버리게 된 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제주도 해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해녀는 “왜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 한 번에 여러 개를 따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먹을 만큼만 따오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따서 팔더라도 오늘 먹을 양식만큼의 전복 소라만으로 하루가 해결되는 일이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며 텃밭을 가꾸며 고기 잡는 사람이 “왜 많이 잡아요?”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저희 집에는 냉장고도 없어요. 바다가 냉장고에요.”

 

옛 사람은 언제나 즉석에서 신선한 재료의 먹거리를 먹었다. 비록 없을 때는 굶을지 몰라도. 그러나 오늘 날에는 모든 것을 묵혔다가 먹는다. 즉석이 없어졌다. 냉장고의 역설이다.

 

산업시대에는 여러 좋은 제도와 기술변화가 선보인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실현은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한 예를 보자. 80년대 비디오 시대의 일본 소니의 Beta와 내쇼널의 VHS 파동이 기억난다. 기술로 또한 크기로 편리함으로 베타가 우월했다. 그러나 VHS는 연합전선을 더 크게 쳐서 여러 전자회사가 VHS 테이프를 생산하게 했고 시장에 싸게 풀었다.

 

결정적인 것은 VHS의 보급률이 높아지자 사람들이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친구. 친척들과 교환해 보고 싶은데 소니의 베타는 그 숫자가 적어 활용률이 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비디오 기기의 기술이 아닌 콘텐츠 교환이라는 유통의 편리성에서 경쟁은 끝났다.

 

새로운 기기의 연구도 마찬가지다. 기술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냐. 사용자가 호응할 것이며 시장에서 받아드릴 수 있느냐, 인간성을 해치지 않느냐 등 여러 부수적인 문제가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새 기술은 만들면 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실험실 내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고려하는 시대적 현실 상황 인식, 이것이 기술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전제가 될 것이다.

 

세종시대 정신 민연(憫然)

 

현 정부는 여민(與民)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바 있다. 많이 쓰는 위민(爲民)은 국민을 위하여 약간 시혜를 베푸는 느낌이 있지만 여민은 국민과 함께 몸자세를 맞추는 느낌이 든다.

 

세종은 민연(憫然)을 통한 28자로 편어일용(便於日用) 곧 실용과 백성의 편리를 추구한 친민(親民) 정신을 실천한 바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시 민연(憫然)(《세종실록》 28/9/29)을 통한 친민 정치를 폈다. 눈높이가 백성에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련민(憐憫)은 《조선실록》 모두 112건 가운데 세종이 52건이다. 무휼(撫恤)은 《조선실록》 원문 모두 647건 가운데 세종 81건이다. 무휼은 수직으로 물질과 죄 사함을 통해 은혜를 베푸는 일 그대로지만 련민은 보다 백성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이다. 한 예를 보자.

 

련민정신 : (김종서가 경상도의 진군이 관직을 받고자 신문고를 치니, 이를 죄줄 것을 아뢰다) 좌대언 김종서가 아뢰기를, “경상도의 진군(鎭軍)이 기선군(騎船軍)의 예에 의거하여 관직을 받고자 하여 두세 번 신문고를 치니, 이것은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아닌데도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하니, 이를 죄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소원을 잃었는데 또 그 죄를 입게 된다면 ‘진실로 불쌍하다’(誠可憐憫). 비록 번거로움이 되나 죄를 다스리지 말게 할 것이다. 옛날에 원숙이 지신사(知申事)가 되었을 때 의리에 어그러진 일로 신문고를 친 사람이 있었는데, 원숙이 논죄하기를 청했으나 내가 죄주지 아니하였다. 만약 불순한 일로써 연달아 번거롭게 신문고를 치는 사람이 있으면 캐어 묻고 죄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세종실록》 14/7/18)

 

‘성가련민(誠可憐憫)’(진실로 불쌍하다)은 《조선실록》 모두 37건 가운데 세종 21건이다. 세종은 백성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임금이다

 

새로 만들려는 많은 IT 콘텐츠와 기기들은 수용자의 어떤 욕구에 그리고 어떤 눈높이로 이루려 하는 것일까. 수용자의 권리, 생명의식을 존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일이다. 새 시대의 창의란 ‘백성의 마음을 읽듯’ 인간의 기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희생과 봉사 정신

 

세종은 신하들에게 직이 중심이 아닌 업의 정신을 가지도록 요구했다. ‘련민’은 일반 관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게 되었다. 직(職)은 직무나 역할로 나아가 책임감을 느끼는 직책이다. 그러나 관직이 높은 사람들은 사직을 청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프면 이따금 나와도 되고, 또 약을 주었다. 세종 자신은 온 몸이 종합 병동이 되어 있어도 일을 수행했다. 누가 자신과 견줄 수 있겠는가. 정승에게는 헌신이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불윤(不允) : (이조 판서 권진이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나이 75세로 노둔(老鈍)하고 혼매(昏昧)하여, 하는 일마다 실수하고 움직일 때마다 허물만 얻으므로 청의(淸議)에 부끄럽사온데, 더구나 농사철을 당하여 한재가 심하오니 실로 불초한 신이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진 이의 등용을 막습니다. 청컨대 신의 벼슬을 거두소서.”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세종실록》 13/5/17)

 

직분인가 직위인가. 어떤 자리[직]에서 사명감이냐 출세 위주의 편의를 선택하느냐 하는 직(職)의 개념을 제기한다. 직이란 하늘[天]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하늘을 알게 되면 직은 천직으로 되살아나게[生生] 된다. 천직이란 직의 기능을 개념화 한 것이다. ‘맡은 바 해야 할’ 본연의 일이다. 그 맨 앞에 임금이 있고 재상은 임금을 보좌해 그 으뜸[하늘]을 돕는다. 임금과 재상 모두 천직을 잘 맡아 나가야 한다.

 

이예(李藝)(고려 공민왕 22, 1373~ 세종 27, 1445)는 왜인 전문 외교관으로 일했다. 나이 71살에 일본에 있는 조선인을 데려 오는 뱃길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때 이예는 예조 참판 허후를 통해 아뢴다. “신이 듣건대, 대마도에 사신을 보내어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오려고 하시는데, ... 다만 성상께서 신을 늙었다 하여 보내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신이 성상의 은혜를 지나치게 입었으므로 죽고 삶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세종실록》 25/6/22)

 

관리는 관리로서의 의로움을 희생을 통해 실현하는 정신, 기술자나 과학자는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봉사 정신 등이 세종이 추구한 사맛의 정신이다.

 

세종의 행도(行道)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세종시대에 초기적인 창의적 융복합ㆍ문제창조ㆍ관계 중심형의 모습을 보았는데, 이후 몇 세기가 지나며 세계적으로 산업형 시대가 되었고 이제 다시 문제 해결ㆍ전문 지식인화ㆍ개인 노력형 시대가 되어 있다. 이후 앞으로 새로운 창조ㆍ융복합ㆍ관계 중심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종을 다시보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