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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달라이라마의 머리맡 침상에는 있는 고행부처상

청전스님, 달라이라마 곁에 있는 것이 지금도 좋다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2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청전스님이 한국에 와서 하신 법문이 있다. 내가 읽어 보니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소개하는 매우 좋은 글이다. 또한 이 법문은 한국불교가 바른 길로 나가도록 조언하는 죽비와 같은 법문이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소개한다.

 

저는 1987년에 인도의 다람살라에 가서 수행을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1977년도에 송광사로 출가해서 참선 공부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유신 반대 투쟁에 관여도 했었고, 그러면서 서양중(신부를 지칭)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되어 불가로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를 해서도 내가 사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스님들에게 물어도, 어떤 답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 답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1986년도에 망월사에서 수행할 때였는데, 그 해에 박종철 학생이 고문사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박종철 사건 때 우리 불교계에서는 그를 어떤 종교적이거나 인간적으로 비호하는 쪽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박종철 학생의 49재를 조계사에서 봉행하는 것도 무산됐습니다. 저는 당시의 그런 일을 보면서 (한국불교에 대해) 일어나는 분노를 젊은 나이에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의 10년 출가의 삶에서 가야할 길도 없고, 유신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치 않게 남방 불교권이나 인도에서 수행하는 말로만 이름을 듣던 스승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물론 태국이나 미얀마 등에서 존경받는 쟁쟁한 스님들을 다 만났습니다. 제가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만났을 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한국에서도 (큰스님들에게) 다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랍게도 그동안 어디서도 듣지 못한 답을 달라이 라마 존자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답은 고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지요. 당시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나이가 53살이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기가 몹시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무작정 다람살라 주석하시는 곳의 사무실로 찾아 갔더니 안거 중이라서 만나는 것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그 곳의 분들께서 매일 7시에 존자님께 차를 올리는 데, 그 때 전달해드릴 테니까 정말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 메모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존자님께서 메모로 답을 주신다면서 내일 10시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10시에 갔더니 아주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면서,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안거가 끝나면 저부터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안거가 끝나는 날 드디어 존자님을 뵈었습니다. 내 인생의 변화를 준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요. 저는 그분으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여러 가지로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답변들이었습니다. 저는 존자님으로부터 들은 이 놀랍고 감동적인 말씀들을 언젠가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존자님께 들은 여러 말씀 중에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만 소개하도록 하죠. 제가 우리나라에서 수행할 때 큰스님들을 만나면 거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옛 스님들은 말 뿐이 아니고 이적도 보이고 신통도 보이는데 오늘날의 스님들은 왜 못하십니까?"라는 질문이지요. 그러면 답은 대부분 똑 같습니다. "옛 스님들은 도력이 세니까 그렇지"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묻습니다. "도력이 센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라고요. 그러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얻은 답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밀교의 수승한 법이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답은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오늘은 시간 상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서산, 사명까지는 밀교의 수승한 법이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사실상 이런 위대한 전통은 끊어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한국의 비구로서 어떻게 다람살라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달라이라마 곁에 있는 것이 지금도 좋습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저의 존경심과 사랑은 30년이 넘게 상향곡선이 계속되는 중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유럽 강연 때 내 종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종교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내 종교는 바로 민중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지난 1988년 노벨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그 때에 남미 난민촌의 큰 텔레비전으로 수상 장면을 보았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오늘 상을 받았는데 영어로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티베트말로 연설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티베트에 있는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가 아니고 법(진리)입니다. 특히 티베트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어떤 이유로도 중국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코지하지 말고 좋은 선연으로 만날 때까지 법에 맞춰 사는 게 중요합니다. 이 생에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납시다.”

 

저는 존자님의 이 말씀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나라나 이민족의 지배에 저항합니다. 당시 (네팔) 무스탕 지방의 게릴라로 중국이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압력을 받은 네팔에서 달라이 라마에게 공식 사절단을 보내 무스탕 게릴라를 나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생각을 녹음해서 게릴라 대장에게 보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제자로서 불살생을 첫 번째 덕목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후로 총을 버리고 죽이는 싸움을 하지 마십시오. 다람살라로 오든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무스탕 게릴라들은 대장 이하 모든 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달라이라마의 녹음 육성을 들었습니다. 게릴라들은 아연실색하였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펑펑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게릴라 대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대장으로서 (티베트 독립의 당위성을 밝히기 위하여) 총을 버릴 수 없으니 독배를 마시고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존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적에 대해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머리맡 침상에는 난행고행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가 되어버린 석가모니만 알지 부처가 되기 이전의 고행은 놓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닙니다. 또한 선택한 불편은 불편이 아닙니다. 선택한 가난은 정말 필요한 것 이외는 소유하지 않습니다. 많이 소유하면 불편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말 편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무소유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필요한 것만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