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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은 없고 영혼만 제사하는 야스쿠니신사

[맛있는 일본 이야기 50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해외 전몰자 240만 명 가운데 현재 116만 명의 주검이 미송환 된 상태로 전사자유골의 약 48%가 여전히 해외에 방치된 상태이다. 이 가운데 바다에서 전사한 경우와 상대국 국민감정으로 수습할 수 없는 주검을 제외한 60만 명은 지금도 수습이 가능하지만 일본 정부는 주검수습에 소극적이다. 이렇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검수습을 미루는 것은 일본 특유의 ‘초혼(招魂)’ 사상과 관련이 깊다. 특히 야스쿠니의 제신(祭神)으로 모셔지는 것은 최고의 예우이기에 주검 수습에 그다지 힘을 들이고 있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2010년 일본 NHK에서 방송된 ‘의혹의 주검을 좇아, 전몰자주검수집의 어둠’이라는 기획물이다. 일본정부는 1952년부터 1975년까지 3차에 걸친 전사자 주검수습 작업을 해왔으나 필리핀의 경우 거액을 들여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수습된 주검이 일본인 전사자 주검이 아니라 필리핀인 주검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주검수습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각 전쟁터에서 전사한 전사자 주검 수습은 거의 방치된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장례식은 반드시 주검이나 죽은 이의 뼈를 수습하여 지내는 풍습이 있다. 화장의 경우에도 완전히 재로 부수지 않고 주검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하여 제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등 죽은 이의 주검에 대한 존중과 숭배는 아주 오래된 풍습이다. 하지만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 때 주검을 수습할 수 없거나 주검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주검 대신 작은 돌이나 루사콘이라고 하는 모래를 넣은 백골모래상자가 유족에게 전달되었다.

 

 

주검이 없는 장례식은 주검대신 참배할 다른 대상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중일전쟁 때부터 제단(祭壇)이 등장하고 초상화가 고안되기도 하였다. 메이지유신(1868) 이전에는 주검을 묻고 제사를 지내는 초혼장(招魂場)이 많았으나 점차 분묘는 사라지고 영령만을 모시는 제사 중심시설인 초혼사(招魂社)가 늘어났다. 그 뒤 1875년 도쿄초혼사 설립 이후 ‘혼령의례(魂靈儀禮)’의 거점으로 야스쿠니가 출현하게 되었다.

 

혼령의례에 무게를 두게 된 것은 전사자의 주검을 거두기가 어려운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일부 전사자의 주검이 해외에서 송환되었을 때 주검의 매장 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야스쿠니 경내에 분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야스쿠니 측에서는 이의 수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외 전몰자 240만 명 가운데 주검이 수습되어 송환된 수는 약 33만 명으로 14%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수습된 주검 가운데 무명전몰자의 주검은 1959년 3월에 설립된 ‘치도리가후치전몰자묘원(千鳥ケ淵戦没者墓苑)’에 별도로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