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방으로 알아보는 건강상식>를 연재했던 유용우 한의사가 이제 새롭게 <음식과 건강>이란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귀중한 의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하여 “음식과 약은 본질적으로 같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용우 한의사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법을 가 가르쳐 줄 것입니다.(편집자 말씀) 봄이 되면 괜히 몸이 무겁고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개운하지 않고, 오후가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흔히 ‘춘곤증’이라 부르지만, 이때의 피로는 단순한 나른함과는 다르다. 겨울 동안 안으로 모였던 기운이 위로 올라오면서, 몸이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피로다. 이럴 때 예로부터 찾던 음식이 있다. 다슬기국이다. 맑은 국물에 쌉싸름한 맛이 도는 다슬기국을 한 숟갈 떠먹으면, 묘하게 속이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 경험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식생활의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한의학 고전에서는 다슬기를 ‘석라(石螺)’ 또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時來天地皆同力 시래천지개동력 運去英雄不自謨 운거영웅부자모 愛民正義我無失 애민정의아무실 爲國丹心誰有知 위국단심수유지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 하니 영웅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구나! 백성과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 허물은 없었다오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누가 알아주리 한 영웅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운이 다함에 슬퍼하는군요. 누구일까요? 바로 전봉준(1855~ 1955)입니다. 동학혁명이 실패하고 체포된 전봉준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읊은 절명시(絶命詩)입니다.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인 전봉준이 이런 절명시를 썼다는 것에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은 전라 고부군의 향교에서 장의(掌議)를 지낸, 성리학에 소양이 있는 몰락양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봉준은 5살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서당 훈장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몰락한 양반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당연히 이런 절명시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봉준의 위대한 점은 그래도 양반의 끝자락에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당시 도탄에 빠진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한 것입니다. 전봉준의 별명이 녹두장군이지요? 키가 5척(약 152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젯밤 경기도 소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엄청난 기러기 떼가 서쪽에서 북쪽으로 낮게 날았다. 밤에 기러기 소리에 종종 잠을 깼다. 오늘은 꽤꽥거리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잦다. 정말 많은 기러기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조선인들은 기러기를 건드리거나 잡아먹지 않는다. 대신에 기러기를 잡아 집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안성장에 갔다. 규모가 매우 컸다. 족히 4천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군중이 나를 보러 밀려든다. 북새통 속에서 한 소년이 넘어지며 감을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등을 밟히고 진흙탕에 머리를 쳐박힌다. 사람들에 에워싸인 나는 앞을 볼 수 없다. 내게 적개심을 보이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랍다. ‘’쉿”, “제미”라고 외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천태만상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보인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무례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내 일꾼들이 몽둥이질을 해댄다. 소년을 후려치기도 하고 갓을 잡아채기도 한다. 나는 악당 같은 그들의 행동을 막느라고 힘들었다. 10시 42분 가까스로 장터를 벗어났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겨울의 묵직한 외투를 벗어 던진 대지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때, 지표면 어디쯤에선가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대지가 겨우내 품어온 뜨거운 생동감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봄의 지문(指紋)이자, 잠든 생명을 깨우는 고요한 합창입니다. 아지랑이는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세상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흔들어 놓습니다. 메마른 논둑길 위로, 혹은 보리밭 사잇길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딱딱했던 세상의 경계는 이내 부드러워집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지만,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그 움직임은 마치 대지가 추는 느릿한 춤사위와 같습니다.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원경(遠景)은 마치 덜 마른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고, 그 일렁임 속에서 세상은 잠시 현실의 무게를 잊은 채 몽환적인 꿈을 꿉니다. 아지랑이는 단순히 공기의 밀도 차이가 만들어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가운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 애쓰는 씨앗들의 거친 호흡이며,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며 숨 쉬는 안도감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땅속 깊은 곳에서 이미 봄의 맥박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햇살이 지면을 애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道)와 길 도가 진리면 길은 삶의 방향 (돌) 도가 추상이면 길은 구체 삶 (심) 로고스와 통하니 길 넓어져 (달) 넓은 길엔 드나들 문 없다네 (빛) ... 25.2.3. 불한시사 합작시 “도(道)”를 단순히 “길”로 번역하는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이해의 문제이다. 길은 분명 인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방향이며, 실천의 방식이고, 선택의 궤적이다. 그러나 도(道)는 그러한 길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질서이자, 모든 길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진리와 법칙에 가깝다. 이 점에서 “길”은 경험적이고 구상적이며, “도(道)”는 초경험적이며 근원적이다. 길은 걸어가야 비로소 생겨나지만, 도는 걷기 이전에도 이미 그러한 길이 가능하게 하는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를 길이라 옮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것을 지상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이해하게 되며, 그 본래의 심연적 의미는 일정 부분 가려지게 된다. 이는 곧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의 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문제와 직결된다. 도를 말할 수 있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고정된 개념이 되어버리고, 그러한 개념화된 도는 더 이상 “상도(常道)”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주에 공대 학장인 ㅂ 교수가 미녀식당에 와서 미스 K와 차를 마시는 중에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가 나왔단다. 우리나라 라면 업계에서 3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 회장의 아들인 ㅂ 교수는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하였다. 유명 공대에서 미사일 유도 기술을 공부한 그는 졸업한 뒤 바로 무기 관련 미국 회사에 취업하여 잘 나갔다. 그러다가 나이 50을 넘게 되자 고향 생각도 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서 귀국했는데, S대 총장이 학장으로 초빙하여 뒤늦게 교수가 되었다. 외국 여행이 취미인 ㅂ 교수는 방학만 되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ㅂ 교수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파스타 요리를 좋아한단다. 몇 년 전 그가 이탈리아 나폴리에 여행 갔다가 우연히 책방에서 영어로 쓰인 파스타 요리책을 한 권 사왔다. 그런데 미스 K가 파스타 요리를 연구한다는 것을 알고서 그 책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아름다움, 곧 미(美)에 관한 것이었다. ㅅ 학장이 미스 K에게 물었다. “K 사장님은 40대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20대로 보여요.” “호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검무(劍舞)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칼이라는 무구를 들고 춘다는 점에서, 이 춤은 인간의 생존과 권력, 그리고 의례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검무의 기원을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실제 전승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검무는 단일한 출발점에서 비롯된 춤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와 문화가 겹겹이 쌓이며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 최근의 논의는 이러한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 학술 발표에서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검무의 기원을 ‘항장무’와 연결지어 설명하였다(우리문화신문, 2026. 3.20). 항장무는 중국 《사기》 「항우본기」의 홍문지연 서사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평안도 지역에서 잡극 형태로 유행하다가 궁중 정재로까지 수용된 춤으로 알려져 있다(손선숙, 2023). 한편 국가무형유산 제15호 북청사자놀음 동선본 전승교육사는 북청사자놀이 전승 과정에서 항장무 계열로 해석될 수 있는 음악이 전승자 없이 음악적 형태로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전경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청사자놀이에는 칼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초장ㆍ중장ㆍ종장으로 나뉘어 점차 속도가 빨라지는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고려의 차는 더 이상 바다와 대륙을 건너온 흔적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질서로 완성된 문화 현상이다. 삼국과 통일신라를 지나온 차가 고려에 이르면, 그것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제도와 의식, 그리고 삶의 리듬 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백제의 차가 바다를 건너 타지에서 더욱 또렷해졌다면, 고려의 차는 오히려 이 땅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심에는 다방(茶房)이 있다. 고려 전기부터 설치된 이 관청은 궁중의 차 의례를 맡아 나라 행사마다 차를 준비하고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 원회(元會)와 같은 국가적 대의례는 물론, 왕비 책봉과 태자 책립, 공주의 혼례와 원자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차는 빠지지 않았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국가 질서를 맑히는 예의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에는 분명한 의미의 다례(茶禮)가 존재하였다. 비록 후대 조선처럼 ‘다례’라는 이름이 엄밀하게 정식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폭넓고 깊은 차 의식이 국가와 불교의식 전반에 걸쳐 시행되었다. 임금이 신하에게 차를 내리고, 신하가 다시 차를 올리는 과정은 단순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애(天涯) 벗이 없다면 하늘 끝도 없고 (돌) 믿음이 없으면 땅끝도 없네 (달) 세월의 끝동에 저민 다정함 (빛) 장흥엔 지기가 지켜 있구려 (심) ... 24.12.19.불한시사 합작시 '천애(天涯'는 문자 그대로 하늘 끝, 곧 세상의 끝을 뜻하나, 단순한 공간의 극한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고독과 교유(交遊)의 깊이를 함께 드러내는 상징적 개념이다. 중국 해남도(海南島) 남단 바닷가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천애(天涯)’ 두 글자는, 예로부터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의 끝을 만난다는 뜻을 품고 전해진다. 그 아래에 후인이 더한 네 글자 ‘해활천공(海闊天空)’은, 비록 땅끝이라도 마음이 열리면 세계 또한 넓어진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이 ‘천애’의 정서는 등왕각의 시인 당나라 왕발(王勃)의 시 "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에 나오는 구절, “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곧 “천하에 지기가 있으면 하늘 끝도 이웃과 같다”라는 구절에서 더욱 깊어진다. 이 구절은 필자의 서예 스승 소전 손재형 선생께서도 즐겨 쓰시던 시귀(詩句)로, 글과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초월하는 심물합일의 교감을 상징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중소기업 사장으로서 세상 물정에 밝은 ㄹ사장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애인은 젊을수록 좋다니까, 아가씨가 아줌마보다 좋기는 하죠. 그러나 아가씨는 위험해요. 일본에서 시작된 원조 교제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요즘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돈 많은 중년 남자가 젊은 아가씨를 돈으로 유혹하는 거죠.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가 되다 보니 사람들이 모두 돈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젊은 아가씨도 물론 돈을 좋아하죠. 그런데 아가씨를 사귀다가 갑자기 임신했다고 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본부인과 이혼하고 자기하고 결혼하자고 덤비면 대책이 없습니다. 혼빙간이 되면 골치가 아프지요.” “혼빙간이 뭐에요?” K 교수가 물었다. “아, 혼인 빙자 간음죄를 줄여서 ‘혼빙간’이라고 한답니다. 애인 상대로는 유부녀가 좋습니다. 돈도 적게 들고 또 비밀을 잘 지켜주니까요. 가정을 깨지 않는 조건으로 서로 즐기는 거죠. 유부녀 가운데는 의사 부인이 좋습니다. 돈 많고 시간 많으니까요. 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인가 봐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술을 많이 먹고 바람피우는 남자 의사도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