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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구류당한 큰오빠

한족대학에 당당히 붙어 기뻐하다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25]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푸름의 계절이다. 해맑은 하늘가엔 꽃구름 피고 전야(논밭과 들)엔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그윽이 풍겨오는 계절이다. 저기 하얀 감자꽃들은 그 어여쁨을 뽐내면서 활짝 웃어준다. 울타리안의 파란 채소들이 서로 키돋움하고 가지 고추 오이…… 들은 제가 먼저 컷노라 웃어 보이고…… 앞내에선 아이들의 물장구 소리가 와짝 들려온다. 젊음과 랑만의 계절 희망의 계절이었단다.

 

큰오빠는 연변1중 필업장(졸업장)을 안고 대학시험도 마치고 부풀어 오르는 심정을 안고 고향길에 올랐단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대학시험 치는데 요란한 대부대 응원단도 없었고 대문에다 찰떡, 차표를 부쳐놓는 일도 없이 그냥 조용히 저 혼자 시험을 마치고 이불짐을 메고 고향에 돌아왔단다.

 

고향이야기 대대로 전해주는 백살도 넘는 아바이 비술나무가 7자로 자라 동구 밖에서 오빠를 맞았고 늘 고향이야기 싣고 조잘조잘 흐르는 시내물이 오빠를 맞았으며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이 오빠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단다. 마을에 들어서자 아랫집 말뚝의 얼룩배기 황소가 음메하고 오빠의 귀향을 알렸고, 바빠서 신발도 바로 못 신고 엎어질세라 한 녀인이 달려나간다…….

 

“왔구나! 시험 잘 쳤겠지? 축했구나!(여위었구나)”

덥석 아들의 손을 잡는다. 방학마다 오던 고향집이건만 졸업장을 안고 오는 다자란 오빠의 마음은 더욱 흥분되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개굴개굴”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더욱 정다웁게 느껴졌단다.

 

오빠는 철없는 우리 동생들을 데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를 도와 가마스도 짰고 나무하러도 산에 갔으며 우리를 데리고 강가에서 고기 잡이도 하면서 소리 없이 입학소식만 기다렸단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오빠는 갑자기 친구들과 같이 갔다올 데가 있다면서 어데 론가 갔었단다. 저녁이 될 때까지 둘째오빠와 나는 좋아라고 애들과 같이 밖에서 놀고 있었다.

 

길 건너 우리집에서 엄마의 부름소리가 들리었단다. “꿀울, 꿀, 꿀…… 구구구……” 그 다음엔 “영자야~”. 저녁밥까지 다 먹어도 큰오빤 오지 않았단다. 엄마는 마을을 한고패(한바퀴) 돌면서 차문(남에게 모르는 것을 물음)하였단다. 역시 모두들 모른다고 했고, 캄캄한 밤이 되었지. 달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엔 별들만이 총총하고 무성한 곡식밭 속에선 당장 무엇이 뛰쳐나올 것만 같은 무 서운 밤이었단다.

 

가끔씩 저 멀리서 개구리울음소리와 매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란다. 엄마는 열두 가지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마당에 혼자 멍해 서있었단다. 갑자기 엄마를 부르는 리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란다. “아즈마이, 이집 철학이 구류당했담다. 이제 구정부(행정기구 이름)에서 소식이 왔습더구마.”

 

“예? 리대장 그게 무슨 소림둥? 우리 철학이 어째서 구류당함두? 잘못 들었겠습꾸마.”

“글쎄 구체적으론 모르겠는데 소식은 맞습꾸마. 늦었으니 래일 아침에 가봅소.”

엄만 그만 땅에 풀썩 물앉았단다.

 

“우리 아인 나쁜 애가 아닌데……”. 리대장은 래일 다시 알아보자면서 돌아가셨단다. 엄마는 앞이 캄캄하더란다. 엄마가 눈을 비비고 하늘을 쳐다보았지. 이상하게두 별 하나가 엄마를 뚫어지게 보는 것 같은 가운데 아버지가 엄마를 보는 것 같더란다.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알았스꾸마. 알았스꾸마. 철학이가 날 기다리겠스꾸마……”. 엄마는 정신없이 같이 없어졌다는 오빠 동무네 집을 찾아가서 구정부로 가자고 했단다.

 

그집 아버지가 어두운데 래일 가보자더란다. 엄마는 두말없이 혼자 간다고 떠났단다. 그집 아버지가 혼자는 못 간다면서 할 수 없이 나서서 그 집 엄마까지 셋이서 가게 되었단다. 인적이라곤 없는 한밤중 셋은 나무에다 불을 부쳐들고 (밤에 짐승들은 불을 무서워한단다.) 허둥지둥 걸었단다. 가끔 풀숲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어도 셋은 손잡고 찍소리도 못 내고 걷기만 하였단다.

 

드디어 구정부에 도착하였지. 새까만 방안에서 땅바닥에 쪼그려 잠들고 있는 철학이를 보는 순간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이니? 네가 어찌 여기에 있니?” 하면서 오빠를 불렀단다. 글쎄 빈 집안에 끌끌한 청년 다섯이 쪼그리고 있더란다. 큰오빠는 친구들과 함께 산 넘어 큰 과수원에 가서 배를 도적질하였는데 그 집 한족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망가다가 자루에 넣은 배가 너무 무거워 던지고 말았단다. 그런데 앞마을의 친구가 그냥 메고 달리다가 그만 그 한족 주인에게 덜미를 잡히고 두들겨 얻어맞고 친구들의 이름도 고발하였기에 오빠네들은 집에도 도착하기 전에 몽땅 붙들려 구정부에 압송되었더란다.

 

정부 공안파출소에서는 2일 동안 구류시킨다 하였는데 그 한족은 어찌나 무섭게 달려드는지 배상금까지 받는다면서 지금 정부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더란다. 정말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말이 없더란다. 엄마는 변명은커녕 배상금도 내고 착오도 승인하겠으니 그저 때리지 말고 놓아 달라고 빌었단다. 엄마는 얼른 집에 돌아와서 꼬깃꼬깃 모아둔 오빠의 “대학입학금”으로 준비한 돈에서 꺼내어 ‘배상금’으로 바치곤 오빠와 같이 그 구류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었단다.

 

정부 일군들은 “망신이꾸마. 다 큰 청년들이 왜 도적질함둥? 저 한족사람이 가만 있자 안합꾸마.”하더란다. 그때는 대약진 인민공사 시기라 “학생감정서(학생의 사상 품질을 평한 서류)”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에 엄마는 구류소에서 나오면서 정부사람보고 “제발 학교에는 고발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애는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하고 연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단다.

 

엄마도 오빠도 누가 고발만하면 이젠 공부는 끝장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다 마을의 일부 사람들이 “과부집 자식 그러겠지.”, “애비 없는 집 애가 머 그렇겠지” 하고 비꼬아 오빠는 “왜? 내가 왜 애비 없음둥? 나는 김광종의 아들이꾸마.”하고 그 사람과 대판 싸움도 붙었더란다. 사실 우리 아버진 큰집가문 아들인데 이 동네 첫7호동네 개척자란다. 이 동네가 지금 백여 호로 되였어도 갓 이사해온 사람들 외에는 “불로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서당훈장”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단다.

 

활발하고 쾌활하던 오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루 종일 집에서 가마스만 짜더란다. 이러는 오빠를 지켜보던 엄마의 가슴은 큰 돌덩이가 지지눌러 쓰리고 아팠지만 너무 근심하지 말라고만 위안하였단다. 엄마의 이런 말씀 들을 때면 오빠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문대곤 말없이 가마스만 짜내려 가더란다. 철없는 둘째오빠는 “내가 크면 형님과 둘이 그 새끼를 때려놓기오.”라고도 하더란다.

 

오빠는 이렇게 말없이 가마스 바디만 “찰싹 찰싹”내리치면서 일하다가도 밤이면 또 캄캄한 마당에 홀로서서 하늘의 뭇별들만 한참씩 바라보다가도 “될 대로 되라지. 차라리 집에서 엄마고생 덜어주는 편도 좋겠지……”하고 혼잣말하더란다. 이런 아들을 소리 없이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속엔 눈물이 큰 호수를 이루었건만 퍼내지도 못하였단다.

 

또 얼마마한 시일이 지났던지, 오빠가 병 들가봐 근심이었단다. 그런데 하루는 멀리서 우편배달원이 마을에 오더란다. 엄마와 오빠는 모두 “학교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관심 없이 제할 일들을 하고 있는데 우편배달원이 “아즈마이, 집에 학생 이름이 김철학임둥?” 하더란다. 엄마는 가슴에서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듯하더란다.

 

“예, 또 무슨 일이 있습둥?”하고 엄마가 물어 “무슨 통지가 왔으꾸마”하여 엄마는 놀라서 “또 구류 더 시킨담둥?”하는데 큰오빠가 얼른 달려가면서

“내 철학이꾸마. 보깁소”하며 피봉을 뜯었단다.

 

 

“입학통지서, 장춘 광학정밀기계학원”

“엄마, 됐습다. 붙었습다.” 오빠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더란다. 나는 벌써 앵무새가 되여 동네 한 바퀴 소식광고 내였단다. 그때 조선족학생도 한족대학을 지원하면 한어로 시험 쳐야 했기에 우리 조선족이 한족대학에 간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였단다.

 

푸름의 계절 푸른숲은 설레어 우리 집 기쁨을 노래했고 오빠에게 축하를 보내오는 듯 하였단다. 하늘가의 태양도 자식위해 헌신하는 엄마에게 희망의 찬란한 빛을 선물하더란다. 오빠는 푸름의 계절에 받은 푸르른꿈을 안고 빨갛게 익어오는 그 계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