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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흰 행주치마를 두른 엄마

백의민족의 하얀넋을 지켰다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27]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행주치마” 하면 우리 백의민족 부녀들의 맑고 깨끗한 모습들이 확 떠오른다. 지금은 주방에서 남녀가 모두 즐겨 입는 것이어서 모양도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이 “행주치마”를 보통 “앞치마”라고 한단다.

 

우리 엄마는 특별히 “흰 앞치마”를 사랑하시는 깨끗한 분이시란다. 어린나이에 시집온 뒤 늘 가마목*의 큰집며느리로 살아오시면서 흰 저고리 검은색치마를 깨끗이 입고 흰 앞치마를 입고 가마목일을 하셨다하더구나! 이것은 일종 습관으로 되여 부엌일을 할 때면 우리가 옷을 입는 것처럼 여기시었단다.

 

흰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시는 엄마를 보면 어린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멋진 엄마”로 보여 늘 흐믓한 기분이었단다. 뒤에 내가 커가면서 교과서에서 “행주치마” 이야기 곧 조선의 녀성들이 행주치마폭에 돌을 날라 왜놈들과 싸웠다는 미담을 배웠을 때 이렇듯 행주치마는 조선 녀성의 고귀한 품성을 길이 전해가고 있음을 느끼었단다.

 

엄마가 칠십고개에 올라섰을 때란다. 엄마는 흰천으로 보기 좋게 크고 작은 앞치마 두벌을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왜 또 앞치마예요? 아직도 주방을 못 잊어서요?”

“아니, 이 좋은 세월에 내손으로 한 번 더 일해보구 싶구나!”

“일? 무슨 일? 지금껏 적게 고생했어요? 그래 전국이 개혁개방하니 엄마두 등소평 주석의 말씀대로 한번 해볼 맘 있어요?”

“딱 그런 건 아니구, 내 절로 한번 할일 찾아보자구…… 아직은 걸을 수도 있으니.”

 

엄마의 얼굴엔 벌써부터 웃음꽃이 피어있었고 활기가 넘쳐났었단다. 우리는 방법 없이 다만 엄마가 체력이 맞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엄마는 흰 모자를 쓰고 흰 앞치마를 입고 ‘떡장사’를 시작하시였단다. 내 사상은 확실히 엄마보다 뒤져서 이러는 엄마가 좀 부끄러웠단다. 그러나 엄마는 이 좋은 정책에 무얼 꺼리는가하면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시더구나! 원래 재간도 있고 알뜰하다보니 하얀 떡가루를 찌고 또 떡메로 쳐선 삶은 팥을 넣고 곱게 곱게 만두기*를 찍어 내시었단다. 그리곤 떡함지*에 곱게 담아 시장에 이고가면 내려놓기 바쁘게 팔리더란다.

 

참 멀리서 보아도 깨끗함이 한눈에 안겨오는 모습이었단다. 흰 모자를 쓰고 흰 조선족 저고리에 검은색 주름치마를 입고 흰 앞치마를 두른 조선족할머니, 또 인품 좋고 다정하게 손님들을 대하는 품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조선족할머니의 모습이란다. 떡은 매일 잘도 팔리고 엄마는 돈도 좀 벌었단다.

 

그러나 한집에서 매일 출근하는 며느리에게 영향을 주어 미안한 감 들더란다. 하여 아쉬워도 부득불 떡함지를 덮고 혼자의 힘으로만 하는 “콩나물 장사”를 택하였단다. 엄마는 이 좋은 세월에 노력만하면 돈을 벌어 잘 살수 있다며 또 다시 흰 위생모자를 쓰고 흰 앞치마를 두르곤 5-6개의 큰독들을 줄느른이* 세우고 콩나물을 재배했단다. 종자를 알뜰히 정선하고 날자 차이로 시간을 안배하고 재배한 덕에 나물들은 보란 듯이 매일매일 시장으로 나갔단다. 알뜰히 뽑고 가쯘하게* 다듬어 차곡차곡 그릇에 담고 흰 보자기를 꼭 덮어 시장에 이고가면 또 삽시간에 빈그릇이 더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콩나물 대가리들을 가쯘하게 한 방향으로 다듬은 나물들은 다시 다듬지 않아도 되는데 더욱 인기를 끄는 것은 인품이 후하여 저울대가 넘어도 그대로 주는 그 인품이었단다. 손님들은 그 한 냥 두 냥에 그 인품을 느꼈고 엄마는 또 딸 같은 그들에게 사랑마저 주고 싶더란다. 엄마는 매일 고달픈 줄도 모르고 새로운 삶의 희열을 느끼시었단다.

 

자기의 노력으로 열심히 하여 푼돈도 넉넉히 쓸 수 있어 오빠가 그 돈을 마음대로 써보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유람한번 가시겠다는 것이었단다. 그때는 크게 유람도 안 할 때라 우리도 미처 생각지 못했었단다. 엄마는 공원가도의 로인들과 함께 멋있게 원피스를 해 입고 숱 많은 머리도 멋있게 얹고 구두를 신고 류행가방까지 척 메고 나서니 누구든 80고령으로 보았겠니? 엄마도 애들처럼 기뻐하시고…… 엄마는 두만강유람, 만천성유람, 경박호유람, 장백산유람까지 갈만한곳은 이곳저곳 다녀오셨단다.

 

엄마는 자기절로 곱디 고운 한복 한 벌을 해 입고 자기가 천당 가는 날도 이 한복 입고 가겠다며 웃더구나! 우리도 그 약속 지켜드린다고 하였단다. 엄마는 또 딸들과 며느리에게 한복 한 벌씩 선사하면서 “우린 중국에서 살아도 조선족임을 잊지 말고 곱게 곱게 입어라.”고 하시더구나! 정말로 가슴이 뭉클해지더구나!

 

엄마의 사랑이 슴배인* 사랑한복을 받은 지 이젠 30년 가까워 오는구나! 그러나 나는 가끔 옷 괴* 안에 정히 두고 있는 그 한복을 볼 때면 흰 앞치마를 두른 엄마를 떠올리곤 한단다.

엄마의 흰 앞치마- 행주치마는 엄마가 걸어온 집의 부엌에서, 사범학교 식당에서, 연길시1중의 탁아소에서, 그리고 개혁개방의 물결 따라 떡시장, 콩나물시장에서, 조선녀성의 하얀빛을 뿌렸고 백의민족의 하얀넋을 지켜 갔었단다.

 

<낱말풀이>

* 가마목 : 부엌

* 만두기 : 멥쌀가루를 반죽하여 찐 것을 얇게 밀어 팥이나 강낭콩으로 만든 소를 넣고 반달같이 빚은 떡

* 떡함지 : 떡을 담은 함지, ‘함지’는 나무로 네모지게 짜서 만든 그릇

* 줄느른이 : 줄을 지어 또는 한 줄로 쭉 세우다.

* 가쯘하다 : 층이 나지 않고 가지런하다

* 슴배다 : 조금씩 스며들어 안으로 배다

* 괴 : ‘궤’의 강원도ㆍ함경남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