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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라, 한손은 그냥 비워둬라

곰이 옥수수 하나만 따 가지고 가는 까닭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8]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들의 옛말에 “곰이 옥수수따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곰이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를 따는데 오른발로 딴 이삭을 왼쪽 겨드랑이게 끼고 나서 왼발을 들어 한 이삭을 따려하니 그 겨드랑이에 끼어있던 먼저 딴 옥수수가 빠져버리는데 그러자 다시 오른발을 들어 또 다른 이삭을 따서는 왼쪽 겨드랑이에 낀단다. 곰이 이렇게 온 하루 온 밭을 다 헤매며 옥수수를 따도 결국에는 한 이삭만 들고 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온 하루 옥수수밭 한 뙈기를 다 버려놓고 나서 달랑 한 이삭만 들고가는 곰, 뒤뚱뒤뚱 걸어가는 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어 “참, 미련한 곰이구나.”하고 제 딴엔 개탄하는 이가 있다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아직 세상 돌아가는 리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만약 정말 하느님이 계시여 하늘에서 곰이 옥수수를 따는 모양을 굽어본다면 “그 자식 참 귀엽구나.”라고 하시며 빙그레 웃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리치를 곰만이 먼저 깨닫고 그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량손의 떡”이라는 말에 이어지는데 욕심스레 량손에 모두 떡을 쥐고나면 이제 또 다시 무엇을 더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손아귀에 모두 무엇인가를 꽉 움켜쥐고 있으면 그 다음 생기는 더 좋은 것을 잡을 손이 없다. 이것저것 다 챙기려 욕심만 부리다가는 도리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다 놓쳐버리고 말게 된다. 우리에게는 손이 두 개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손은 항상 비워둬야 한다는 말이다.

 

옥수수를 따는 곰은 이 리치를 먼저 깨닫고 한 손은 그냥 비워둔다. 우리가 미련하고 우둔하다고 비웃는 곰이지만 그 곰의 립장에서 두 손에 모두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전전긍긍하고 허둥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어느 분야에서 눈곱만한 성과를 이루고 나서 그 길로 계속 정진하여 탐구하며 더욱 훌륭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눈망울을 이리저리 돌리며 그것으로 다른 것을 바꾸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궁리나 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책임을 맡았으면 맡은바 지위에서 직무에 충실하고 참답게 일하며 정성을 몰붓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동분서주하면서 허명을 쫓아가고 리익부터 챙기려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 손아귀에 잡은 권력을 리용하여 이것저것 집적거리고 얼토당토않게 남의 전문분야까지 휘젓고 다니며 제 얼굴을 내고 제 이름이나 올리며 제 배부터 채우려 드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문학과 예술은 특히 모든 것을 비워야만 이뤄지는 작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창작적 령감은 우리가 비워내는 것만큼 채워진다고 한다. 자기를 다 버릴 때, 다시 말해 향락과 만족으로 우리의 육체를 유혹하여 무한히 추락하게 하는 3욕, 5욕을 하나씩 모두 버릴 때야 만이 뮤즈는 비로소 한줄기 달빛과도 같은 은은한 서정과 끝없이 출렁이는 물결과도 같은 무한한 령감을 가슴에 흘러들게 하고 가득 고여 넘쳐나게 한다.

 

그러나 진실로 자기를 다 버린다는 것은 결코 말하기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몸곁 이곳저곳에서 흰 눈을 번뜩거리며 흥청거리는 되지도 않는 온갖 짓거리들과 돈 버는 재미, 세도 부리는 재미, 우쭐거리는 재미 또 무슨 무슨 재미들은 늘 우리들의 마음을 꼬드겨 욕망으로 부풀게 하고 욕망은 또 더 큰 욕망을 낳아 나중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욕망으로 부풀어 꽉 차버린 가슴에는 이제 또 다른 무엇이 담길 틈이 없게 된다.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세상 좋은 일은 혼자 다 하고 싶으면서도 문학을 한답시고 소설 쓰고, 시 쓰고, 수필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진실한 문학과는 별개인 문학의 껍데기나 문학의 거품이나 문학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호메로스는 그 빛나는 예지의 두 눈을 주고 영웅서사시 “일리야드”를 얻었고 로빈슨은 절해도고의 고독으로 “표류기”를 바꾸었으며 굴원은 한 나라의 사직을 바쳐 불후의 《초사(楚辭)》를 적었고 리태백은 황궁에서의 부귀와 영화와 사치를 모두 버리고 그 자유의 시혼을 다시 찾았다. 우리의 민족시인 윤동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라는 시구을 얻고자 마침내 그 찬란한 젊은 생명을 다 바치지 않았던가.

 

우리의 육체를 끝없이 추락하게 하는 것이 수많은 욕망들이라고 할 때 우리의 령혼을 한없이 이끌어 올리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술이며 문학이다. 문학과 예술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야만이 이뤄지는 작업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옥수수를 따는 곰에게 물어보면 그냥 “비워라, 한 손은 그냥 비워둬라.”라고 할 것이다.

 

<낱말 풀이>

* 몰붓다 : 눈길 따위를 한군데에 집중하다.

* 뮤즈(Muse) : 그리스 신화에서 시ㆍ극ㆍ음악ㆍ미술을 지배하는 아홉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