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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이슬람교도의 시아파와 수니파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지나가는 이는 날 구경한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이슬람(Islam)은 종교의 이름이다. 아랍어로서 이슬람(al-islām)은 ‘알라에게 복종하다’라는 뜻으로 ‘복종’을 의미하는 ‘아살라마’(asalama)에서 파생한 것으로 무함마드가 만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에서 이슬람을 회회교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간혹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믿는 종교가 아니며, 알라를 유일신으로 믿는 종교다. 무슬림은 알라에게 복종한 자, 곧 이슬람 신자를 가리킨다. 여자 신자는 무슬리마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은 알라 앞에서 평등하다. 이슬람은 절대자인 알라와 인간 사이에 일체의 매개자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신부나 목사 또는 승려 같은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무슬림들은 성장 과정에서 이슬람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선교사나 종교 교육자로 활동할 수 있는 자질을 습득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은 따로 성직자들을 둘 필요가 없다.

 

이슬람에서 특히 수니파에서 이맘은 예배할 때에 맨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모든 무슬림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 될 수 있다. 부자, 가난한 자,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무식한 자, 여행자 등 누구에게나 이맘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예배하러 모여든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거나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그 예배를 인도하면 이맘이 되는 것이다.

 

이맘의 지위를 얻기 위해 성직 임명식이나 안수식 같은 특별한 예식이 필요하지 않으며 신학교를 졸업해야 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의 성직자처럼 영적 권위와 자격을 갖춘 사제 집단이 이슬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이슬람은 매우 평등한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안사리의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으면서 때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궁금한 점을 확인하고,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분수 광장으로 걸어가 보았다. 날씨는 여름이지만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또 긴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광장 건너편에 있는 맥도날드 가게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사서 가지고 나와 광장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천천히 먹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흔치 않은 동양 사람을 구경한다고 생각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구경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유심히 살펴보니 히잡을 입은 여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많다고 생각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나라지만 세속화의 물결은 여기서도 출렁거리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히잡을 쓴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분수 앞에서 니캅을 입은 여자 4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눈만 빼꼼히 나오고 얼굴과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사진을 보고서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구별할까? 이처럼 더운 여름에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의복에 관한 이슬람의 계율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광장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안사리의 책을 읽었다.

 

무함마드는 죽기 전에 후계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슬림 공동체 사람들은 회의를 거쳐 무함마드의 칼리프(대리인)을 선출하였는데, 제1대 칼리프에는 무함마드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 아부 바르크가 추대되었다. 일부는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를 후보로 추대했지만 젊은 알리가 바르크에게 밀렸다. 아부 바르크는 2년 뒤에 갑자기 병사하면서 무함마드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우마르에게 제2대 칼리프 자리를 넘겨주었다.

 

우마르는 10년 동안 이슬람의 토대를 굳건히 했다. 우마르는 페르시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 이집트까지 정복하였다. 우마르는 공동체를 지휘하는 동안에 이슬람 신학의 진로를 정하고 이슬람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정립하였다. 안사리의 표현에 따르면 우마르는 기독교의 사도 바울과 소련의 칼 마르크스, 그리고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합쳐놓은 인물이었다. 우마르가 죽을 무렵에 이슬람은 500만 km2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마르는 모스크에서 한 노예가 휘두른 칼을 맞고 암살당하였는데, 임종 전에 그는 중대한 선례를 하나 남겼다. 그는 여섯 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인 ‘슈라’를 지명해서 그들이 새로운 칼리프를 선택하고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의 동의를 얻게 했다. 후대의 이슬람 사상가들은 슈라가 이슬람 사회에서 민주적인 제도의 기반을 이룬다고 보았다.

 

제3대 칼리프에는 무함마드의 12촌의 아들인 68살의 우스만이 뽑혔다. 우스만은 12년 임기 동안에 코란의 확정판을 만들고, 세수를 늘려 공동체의 재정을 정비하고, 상업을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우스만은 소요 사태가 일어나 폭도들에게 맞아 죽었다. 제4대 칼리프에는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가 선출되었지만, 내전에 휩싸였다. 알리는 칼리프로 선출된 뒤 5년 만에 한 젊은이에게 암살당하였다.

 

일부 세력은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리의 아들 하산을 칼리프로 추대하지만, 칼리프의 칭호는 우스만의 사촌이며 반란군의 수장이었던 무아위야에게 넘어가고 이후 우마이야 제국을 거쳐 칼리프는 승계된다. 이슬람교도 가운데서 칼리프를 추종하는 교파가 ‘수니파’다.

 

알리를 추종하던 세력들은 죽은 알리를 이맘이라고 불렀고 알리는 제1대 이맘으로 추서되었다.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리로부터 승계된 이맘을 추종하는 교파가 ‘시아파’가 된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이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맘은 수니파에서는 예배의 인도자를 말하는데, 시아파에게 이맘은 영적 지도자를 의미한다. 수니파의 칼리프에 해당하는 지위가 시아파의 이맘이다.)

 

알리의 장남인 하산이 제2대 이맘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만 반대파의 꾐에 넘어간 아내에게 독살당한다. 이어서 알리의 차남인 후세인이 제3대 이맘이 되었는데, 후세인이 수니파와의 전투에서 숨을 거두면서 이후 두 종파는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이슬람교도의 90%는 수니파인데 소수인 시아파와의 갈등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위 그림을 보면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시아파가 우세한 국가이다.

 

내가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불타는 산 ‘야나르닥’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고대로부터 천연가스가 새어 나와서 불타고 있는데, 2,500년 동안 땅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어서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바쿠는 오랫동안 실크로드 대상들이 지나가던 길목이었다. 그러다가 러시아 지배하에 있던 19세기 후반에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바쿠는 원유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쿠는 한때 세계 석유 생산의 반절까지를 차지할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지역 최대의 화려한 도시가 되었다. 바쿠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5년 추천 여행지 목록에 들어 있다.

 

병산은 혼자서 시내 구경을 마치고 저녁때에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밖에 나가 레스토랑에서 현지 음식을 먹었다. 병산이 낮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사진은 불꽃 타워이다.

 

 

불꽃 타워는 타오르는 불꽃을 상징하는 고층 건물 3개를 말한다. 불꽃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천연가스와 원유를 의미한다. 윗부분의 모양이 다른 세 건물은 각각 서, 남, 북쪽을 향해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석유의 힘으로 번영을 누리는 바쿠 시가지는 마치 두바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 작품인 바쿠 문화센터 건물은 미래의 우주선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리는 문화센터를 방문하지는 못하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