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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우리를 낳아준 곰어머니와 만남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고맙습니다.”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이 말을 들으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런데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하고 나면 또 이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왜 기분이 좋아질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일반적으로 그 말의 뜻이 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따지나 그 말이 이루어지는 소리 자체에 대해서는 정작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그 말은 원래부터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왜 그 말은 “‘아’ 아니면 꼭 ‘오’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원리 곧 말이 이루어지는 언어학적 원리를 알게 된다면 더 좋겠지요. 말의 과학인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말의 뜻을 가리키는 부분인 기의(記意, 시니피에 signifie)와 표현을 이루는 부분인 기표(記標, 시니피앙 signifidant)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네거리 교통신호의 체계에서 붉은 등일 때면 “정지!” 곧 서시오가 되고 푸른 등이 켜지면 “출발!” 곧 가시오라는 말이 됩니다. 이때 붉은색, 푸른색의 색채는 명령기호의 표현이 되는 기표(記標, 시니피앙 signifidant)가 되고 정지, 출발의 명령내용은 말의 뜻을 가리키는 부분인 기의(記意, 시니피에 signifie)가 되는 것입니다. 왜 붉은 등일 때 막 가고 푸른 등일 때 그냥 멈춰서면 안 될까요.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하면 교통신호 명령언어의 기표와 기의가 뒤바뀌어지어 교통의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언어는 이와 같이 표현을 이루는 부분과 내용을 이루는 부분 곧 기표와 기의 두 부분이 바로 합쳐져야만 비로소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다시 볼까요. 이 어휘의 뜻 곧 기의에 대해서는 우리가 사전을 펼쳐서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즐겁고 흐믓하다.”라는 것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니 제쳐놓고 말이 이루어지는 기표에 대하여 살펴본다면 이 말이 “고맙+습니다”이렇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습니다”는 종결어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고 문제는 앞부분의 “고맙…”에 있습니다.

 

우리는 “고맙…”의 “고맙다”는 단어가 “고마”에서 오고 어음론적으로 “고마”는 “고머”, “고무”, “고미” 또는 “구마”, “구머”, “구무”, “구미”의 변형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마, 고머, 고무, 고미”등은 단음절어 “곰”의 음가를 가지고 있고 “구마, 구머, 구무, 구미”등은 단음절어 “굼”음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곰”과 “굼”! “고맙습니다”라는 말의 신비를 여는 첫 번째 열쇠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열쇠말(키워드)이 바로 “곰”이라는 말이었건 것입니다. 이 “곰”은 곰(熊)을 이르는 순 우리말입니다. 그 어원과 변형에 대한 설명으로 우리는 한반도 남부의 한 지명에서도 일부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금강기슭의 옛 도시 공주의 지명에 유관된 것입니다. 이 도시의 관광가이드책자에는 공주지명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공주는 옛날엔 우리말로 고마나루 혹은 곰나루라 부르고 한자로는 웅진(熊津) 웅주(熊州) 등으로 적었으며 곰주라고도 불렀다. 고려 초 고유어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지금의 공주(公州)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도시 한 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옛 산성 공산성(公山城)도 그 이름이 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도시의 둘레를 비단결처럼 감돌아 흐르는 아름다운 강, 금강도 본래의 옛 이름은 곰내, 곰강이며 후세에 한자를 쓰면서 우리말과 비슷한 음을 취해 금강(錦江)으로 부르게 되고 그 한자의 뜻풀이를 따라 비단의 강으로 의미가 다시 변형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끝내 “고맙습니다”라는 말의 “고마”에서 서서히 “곰”의 우람진 몸체의 윤곽을 어슴푸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곰이 마침내 그 “고마”운 마음을 안고 저기서 막 우리에게로 엉기적엉기적 다가오는 시점이지요. 그러면 왜서 곰일까요. 지상에 수많은 짐승이 있고 그 가운데는 힘센 백수지왕 호랑이도 뿔이 예쁜 우아한 왕관의 사슴도 있고 우리의 생활과 가까운 소나 말이나 강아지도 있는데 왜서 꼭 곰일까요.

 

그것은 곰이 바로 우리민족의 토템(totem, 원시사회에서,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시하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의 기원신화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하나의 여자로 변신하였으며 그 여자가 신단수 아래서 하늘과 정을 통하여 자손을 낳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자손인 곧 천손(天孫)인 우리 배달의 족속들은 이렇게 곰여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곰은 여자가 되어 하늘의 씨를 받아 이 땅에 자손을 낳았고 우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배달민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낳아주신 “고마”운 곰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맙습니다”라는 이 말의 신비를 여는 두 번째 열쇠는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요. 그 비밀번호가 이번엔 “굼”이라는 말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굼”을 다시 풀어내어 “구마”, “구머”, “구무”, “구미”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중 “구머”는 오늘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현대어 “구멍”의 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또 함경도 등 일부지방 사투리에서 구멍을 뜻하는 말인 “굼기”, “궁기”, “구렁”, “굴헝” 같은 말에 그 그림자가 살짝 비끼어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르면 구멍은 솟아남의 맞은편 것으로 양(陽)의 대상 면인 음(陰)이며 음은 해와 대비되는 달 그리고 하늘 아래 펼쳐진 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이 양성(陽性)의 해와 하늘은 남자로 상징되고 음성(陰性)의 달과 대지는 여자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아버지가 되고 그 남자와 짝을 이루어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 생산하게 됩니다.

 

다 왔습니다. 우리의 “고맙습니다.”라는 이 고마운 말의 깊은 뿌리와 그에 담겨 있는 참된 뜻을 찾아 태초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의 긴 여행은 끝내 우리를 낳아준 곰어머니를 만남으로써 그 종착역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 “고맙습니다.”라는 말,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말, 입에 담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귀에 들리면 얼굴이 밝아지는 말, 그래서 이 말을 하고 나면 또 이 말을 듣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말 “고맙습니다.”는 말은 결국 이렇게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를 찾아가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하면 좋겠지요. 이 땅, 이 하늘 아래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의 고마움을 입에 귀에 그리고 가슴에 늘 담고 있으면 좋겠지요.

 

“고맙습니다.”

 

                                                                                            《장백산》 2006년 제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