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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977년 환경교육 국제회의 열린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불구대천지원수 관계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날이 밝았다. 조지아 국경에 도달하자 기차는 멈추고 검문과 입국 수속이 있었다. 승무원에게 여권을 넘겨주고 승객들은 모두 기차 밖으로 나갔다. 입국 수속에 시간이 좀 걸리나 보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기차에서 내려 체조도 하고 생명탈핵 유인물도 나눠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발견하면 실크로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서울에서 로마까지 순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라면서 관심을 보인다. K-pop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매우 반갑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기차에서 손말틀(휴대폰)로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 검색하다가 나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종교가 다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적대 관계인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불구대천지원수 관계인 것은 몰랐다.

 

2004년 1월, 나토(NATO)의 후원을 받은 군사 훈련 세미나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 여러 국가의 장교들이 파견되었는데,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장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2월 18일, 아제리 장교 라밀 새패로프는 시장에서 구입한 도끼날을 예리하게 갈기 시작한다. 2월 19일 밤, 새패로프는 아르메니아 장교인 마르가랸이 자는 방으로 잠입하여 잠든 마르가랸의 몸을 19번 내리치고 목을 잘라버린다. 그는 다른 아르메니아 장교가 머물던 방으로 가서 도끼로 문짝을 부수려 했지만,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막았고 새패로프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새패로프는 수사관의 심문에서 "만약에 상대가 아르메니아 민간인이었다면 난 건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난 군인이니까요. 하지만, 두 놈 다 아르메니아 군인이니까요. 그 새끼들은 전쟁을 일으켜 내 동족들을 죽이고 우리나라 땅까지 빼앗아 갔지요. 그런 군복 입은 놈들이라 이 일을 벌인 겁니다. 난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놈만 죽이고 한 놈을 못 죽인 게 아쉽네요."라고 말하면서 전혀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헝가리 당국은 1급 살해 혐의로 새패로프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다. 새패로프는 감옥에서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헝가리어 소설들을 아제리어로 번역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뒤, 2012년 8월 31일 헝가리는 새패로프를 수형자 이송 협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새패로프 대위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석방시키고 훈장을 수여했다. 또한, 8년 동안 복역했던 기간을 군복무로 인정하여 급료를 주고, 소령으로 진급시키고, 아파트까지 주었다. 아제리 사람들은 새패로프를 영웅으로 환대했다.

 

분노한 아르메니아의 사르키샨 대통령은 즉각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아제르바이잔과의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다. 새패로프를 석방시킨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온갖 비난을 받았는데 '아제르바이잔 측이 그를 석방하면 석유 수입가를 낮춰준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냐?'라는 아르메니아측의 비난을 헝가리 야당이 인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약소국의 장교 한 사람이 죽은 이 사건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나 또한 처음 듣는 사건이었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일어난 매우 잔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코카서스 3국 여행기를 읽어보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이처럼 사이가 나쁘다 보니 엉뚱하게 여행객이 피해를 본다고 한다. 여행자는 아르메니아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직접 들어오지를 못하고 조지아를 통하여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어느 여행기를 읽어보니 아제르바이잔으로 들어올 때 입국심사장에서 가방을 열게 하여 아르메니아에서 산 상품과 기념품을 모두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다행히 이번 순례길에서 아르메니아는 빠져 있다.

 

아침 9시쯤에 기차는 조지아의 트빌리시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 앞의 시장으로 걸어가서 서민 식당을 찾아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서 숙소 근처로 이동한 다음 가방을 끌고서 숙소를 찾아 걸어갔다. 여행 가방의 바퀴에서 소리가 나지만 병산의 방침으로는 여간해서 택시를 타지 않고 2km 이내의 거리는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또 호응이 좋으면 사진을 같이 찍으므로 우리는 매우 느릿느릿하게 이동하였다.

 

이번 숙소도 정식 호텔이 아니고 아파트를 빌려주는 에어비앤비 형식의 숙소였다. 타쉬켄트에서 빌렸던 숙소에 견주어 트빌리시의 숙소는 낡은 건물에 있었다. 방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전망이 매우 훌륭했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병산은 숙소를 구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사용 후기를 읽어보았다고 한다. 전망이 좋으며 교통이 편리한 매우 훌륭한 숙소라고 독일 사람이 아주 좋게 평가한 사용 후기를 읽고서 이 숙소를 예약했다고 한다.

 

 

주인에게 전화하여 열쇠를 받고서 우리는 짐을 풀었다. 숙소는 3층에 있었는데, 테이블이 놓여 있는 작은 베란다가 딸린 그럴듯한 집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숙소의 주방에서 내가 가져온 라면을 끓여 점심으로 먹었다. 각시는 긴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라면과 매실, 멸치, 고추장을 챙겨 주어서 가볍게 한 끼 때울 때 매우 편리하다.

 

오후 시간은 각자 자유롭게 보내기로 하였다. 나는 밖에 나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우리의 숙소는 번화가의 뒷골목에 있어서 한적하였다. 편의점도 있고 작은 과일 가게도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숙소에 다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여 조지아와 트빌리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조지아는 면적은 69,700 km2(남한 면적의 0.7배)이고 인구는 390만명(2018년 기준)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다. 예전에는 러시아 이름으로 그루지아라고도 불렀다. 조지아는 오랫동안 터키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소련을 구성했던 15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로 1991년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후 최초로 구성된 정부가 전복되었고, 분리주의 운동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하다. 기후는 아열대성이고 언어는 조지아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정교회가 84%, 이슬람이 10%를 차지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카즈베기 산이 조지아에 있다.

 

1921년에 조지아의 수도가 된 트빌리시는 인구가 110만 명인 대도시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5세기에 세워진 티빌리시는 수차례 아랍인과 터기인에게 점령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801년부터 러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1883년에 트빌리시에서 아제르바이잔 바쿠까지 철도가 개설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조지아의 공업, 문화 및 교육 중심지로서 종합대학교와 100여 개가 넘는 연구소들이 있다.

 

트빌리시는 환경을 공부한 나에게는 그 이름이 친숙한 도시이다. 1977년에 환경교육에 관한 국제회의가 트빌리시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채택한 환경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 태도 등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지구 차원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도 환경교육을 통하여 자라나는 세대에게 친환경적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 산성비, 사막화, 환경호르몬 등등의 문제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이제는 친환경 시대가 아니라 필환경(必環境) 시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