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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사람의 말

어찌 함부로 말을 뱉을 것인가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6]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물론 새나 벌이나 이외 다른 동물들도 저들끼리 서로 의사를 교환하는 언어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들의 것을 사람의 말에 견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라는 이 말을 거꾸로 “말하는 동물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냐 사람이 아니냐 하는 것이 말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로 가늠될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말은 ‘말(斗)’이며, 말은 ‘말(馬)’이다. 담아서 가늠하는 ‘말(斗)’이며, 싣고서 달려가는 ‘말(馬)’이다. 담아서 싣고 가는 것 곧 다른 말로 “언어는 생각을 싣는 수레다.”라는 것이다.

 

말은 먼저 정확해야 한다. ‘님’에 점하나 보태면 ‘남’이 되고 ‘남’에서 점하나 덜어내면 ‘님’이 된다는 항간의 노랫말도 있지만 “님→ 남→ 놈”에서처럼 말에 조금이라도 보태거나 빼거나 바꿔치기를 한다면 상대를 지시하는 그 뜻이 전혀 다르게 변하게 된다. ‘돛’과 ‘닻’ 두 낱말도 다 같이 배에 쓰이는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같은 자음 ‘ㄷ’와 ‘ㅊ’ 사이의 모음 ‘ㅗ’와 ‘ㅏ’가 각기 만들어 내는 어휘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돛은 배가 바람을 안고 달려가게 하는 것이라면 닻은 배가 기슭에 안전하게 정박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한자의 믿을 ‘신(信)’자도 바로 사람 인(人) 자와 말씀 언(言) 자가 어울려져서 이루어졌다. 크게는 어떤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작게는 주위의 한 사람에 대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말이 이루어내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손가락을 걸거나 사인을 하거나 무슨 정표를 나누거나 아니면 법률적으로 어떤 장치를 한다고 하여도 그 사람의 말에서 믿음을 뺀다면 다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바벨탑을 쌓게 하는 것도 말이었으며 허물어지게 하는 것도 말이였다. “세 치 혀가 무쇠를 벤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 등 말에 대한 말이 많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리유때문이리라.

 

바른말, 믿음을 주는 말, 서로에게 따스한 위안이 되거나 힘에 보탬이 되는 말을 할 것이며 그와 반대되는 말은 삼가야 할 것이다.

 

신라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옛말이 있다. 어느 절의 스님 한 분이 종의 주조를 위해 저잣거리를 돌며 시주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쌀과 돈을 받았지만, 그것이 없는 자들에게서는 종을 만들 구리와 쇳조각 같은 것도 가리지 않고 받았다. 그러다 이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어느 한 뒷골목을 지나는데 한 아낙네가 아이를 안고 문가에 서 있다가 시주를 부탁하는 스님을 보고 좀 놀려줄 생각으로 이렇게 한마디 하였다.

 

“우리 집엔 스님께 드릴 것이라곤 이 안고 있는 아이밖엔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지요. 글쎄 이 아이를 가져가겠다면 할 수 없지만 말이에요. 호, 호, 호―”

 

어느덧 자금이 다 모이고 구리와 쇠도 가득 쌓였다. 수많은 이름난 장인들이 모여와서 정성을 다하여 쇳물을 녹여 종을 빚었다. 마침내 성덕대왕신종이 우람한 모습으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리 두드려도 종은 울리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의론이 분분하였다.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종은 울리지 않을까. 일이 이렇게 번지게 되자 그날 저잣거리에 나갔던 스님이 할 수 없이 앞으로 나와 그날 있였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아하, 문제는 바로 거기 있었구나. 중생이 어찌 부처님께 함부로 약속할 수 있으며 또 일단 입으로 뱉어 약속한 말을 어찌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여봐라, 그 아낙이 입을 잘못 나불거려 부처님의 노염을 사서 이 거룩한 종이 울리지 않는구나.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그 아낙의 약속대로 어김없이 시행하도록 하여라. 추상같은 령이 떨어지자 종은 다시 부수어지고 그 조각들은 다시 이글거리는 불가마에 던져졌다. 그 아낙의 말도 그대로 실행되었다.

 

종이 다시 주조되였다. 푸른 구릿빛이 어려있는 커다란 종은 몹시 슬픈 모습을 하고 사람들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드디어 타종이 시작되었다.

 

 

“뎅― 뎅―”

 

종은 끝내 울렸다. 그런데 그 울글진 종소리는 “에밀레― 에밀레―”하는 처량한 여음을 끌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 어미가 허투루 뱉은 말 한마디가 천고의 한이 되어 오래도록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란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또 천년을 가슴 훑으며 울리고 있는 이 신라 “성덕대왕신종” 그 에밀레종소리, 수많은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아, 사람아, 사람이 말하기 쉽다고 어찌 함부로 말을 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