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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

낙화암의 아우성 돌에 가둔 채 석탑은 말이 없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3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이 달 균

 

       거기 절이 있었다 한 왕조가 있었다

       무너진 계백의 하늘은 어떤 빛이었을까

       아득한 역사의 성문을 여는 열쇠는 내게 없다

       시방 나침반은 어느 곳을 향해 있나

       낙화암의 아우성도 장수 잃은 말울음도

       조용히 돌에 가둔 채 석탑은 말이 없다

 

 

탑을 우러러 본다. 정읍에도 이보다 높은 건물은 즐비하다. 그러나 천년이 훨씬 지난 6세기경, 정림사지에 우뚝 세운 이 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견할까. 이런 정도라면 건립 당시 석가세존의 나라를 칭송하여 무지개라도 찬연히 걸리지 않았을까. 이 탑은 그날의 황홀과 감동, 백제의 흥망성쇠를 재는 가늠자임에 틀림없다. 안타까운 것은 신성한 탑신에다 백제의 멸망과 연관 있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大唐平百濟國碑銘’이란 글을 새겼다니…. 수난의 역사가 가슴 아프다. 분명한 것은 이 탑과 정림사지석불좌상(보물 제108호) 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정림사는 백제 왕실 또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 잊힌 역사의 성문을 여는 열쇠는 내게 없다. 낙화암의 전설과 황산벌의 흙먼지를 떠올리며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걸어볼 뿐이다.(시인 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