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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제89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 열린다

8일(금) 낮 11시, 효창공원 삼 의사 묘역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제89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오는 8일(금) 낮 11시,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 의사 묘역)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은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만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헌화 및 분향, 묵념의 순으로 간소하게 거행된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조국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고, 이를 통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침체된 항일운동을 되살리는 도화선이 됐다.

 

1932년 9월 30일 이 의사는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 의사 주요 공적 (공훈록 자료)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31년 1월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실행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뒤 출국하여 12월 말 동경에 도착하였다.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날을 거사 일로 결정해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 의사는 거사 일인 1932년 1월 8일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왕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宮內大臣)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하여 궁내대신의 마차가 뒤집히는 데 그쳐, 일왕 폭살 계획은 안타깝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하였다.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지만, 그의 의거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 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루쉰공원)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만보산(萬寶山) 사건으로 악화되었던 한ㆍ중 간 감정 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