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수원 독립운동의 길’을 조성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한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와 수원시자원봉사센터는 다음 달 13일까지 시민추진단을 공개 모집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수원 독립운동의 길’ 시민추진단은 시민 815명을 공개 모집하며, 수원시자원봉사센터 누리집(착한공터)와 수원시 ‘새빛톡톡’을 통해 신청하거나 직접 수원시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시민추진단은 독립홍보팀, 독립지원팀, 독립후원팀, 독립해설팀 등으로 나눠서 활동한다. 이와 함께 추진위와 (재)수원그린트러스트는 ‘수원 독립운동의 길’ 조성 시민모금을 1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민 모금의 주체는 (재)수원그린트러스트이고, 추진위와 수원시자원봉사센터는 홍보를 맡는다. 시민의 모금액은 ‘수원 독립운동의 길’ 조성과 관련한 벽화 등 컨텐츠 제작, 안내판과 기록물 설치, 시민 참여형 역사교육·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에 사용된다. 이주현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장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수원 독립운동을 기록하고 길을 만드는 일에 동참해달라”며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던 오기호(1962년 독립장), 이기(1968년 독립장), 홍필주(1990년 애국장) 선생을 ‘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이에 전국적 의병 봉기 등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이 격화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정부와 정계 인사에게 장서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대한제국의 주권 보전을 요구하는 등 외교적 대응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의열투쟁으로 전환되었다. 오기호(1865년∼1916년) 선생은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이후 외교적 저항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 조직을 주도하여 폭탄과 저격 등을 통한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였고, 자금 조달과 무기 구입 등을 직접 관장하였다. 이후에도 계몽운동, 실업교육, 대종교 참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독립운동을 실천하였다. 이기(1848년∼1909년) 선생은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대일 외교활동 이후 자신회에 참여, ‘자신회 취지서’를 작성하여 을사오적 처단이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민사회단체로 구성한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가 ‘독립운동의 길’ 조성을 본격 가시화했다.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회’는 지난 16일 올해 첫 회의를 열고 김세환, 임면수, 이하영, 박선태, 김향화, 이선경 등 6명을 수원지역 대표 독립운동가로 뽑은 데 이어 2개 길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날 추진위는 ‘수원 독립운동의 길’을 2개로 나눠 조성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길에 대표 독립운동가의 생가터와 집터, 학교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1시간 길은 팔달구청→ 아담스 기념관→ 수원삼일여학교 터→ 임면수 생가터→ 일제강점기 북수동 천도교 교당(북수동 성당 인근)→ 수원 삼일학교(현 종로교회)→ 옛 수원 자혜병원(화성행궁)→ 정조 때 ‘한데우물’→ 박선태 집터→ 김향화 집터→ 김세환 생가터 등 11곳 1.7㎞다. 2시간 길은 연무대 활터→ 동장대→ 삼일공고(옛 삼일학교)→ 화홍문→ 삼일여학교 터→ 아담스기념관→ 임면수 생가터→ 일제강점기 북수동 천도교 교당(북수동 성당 인근)→ 종로교회(옛 수원 삼일학교)→ 옛 수원 자혜병원(화성행궁)→ 정조 때 ‘한데우물’→ 박선태 집터→ 김향화 집터→ 김세환 생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박사님께서 조상의 행적과 순국 과정에 대한 유족들의 애타는 의문을 풀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조부님이신 김상윤(金相潤) 의사(義士)의 순국 과정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순국의 길을 걸었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저희 유족들은 조부님이 돌아가신 연도를 1927년(10.19)으로 알고 지금까지 이날을 제사로 모셔왔습니다.” 이는 의열단에서 활약한 김상윤 의사의 손자 김기봉 선생(80)의 이야기다. 팔순의 손자 김기봉 선생은 어제(19일) 연구소에 들러 글쓴이가 그동안 찾은 자료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가슴속의 한을 다시 한번 쏟아냈다. 요즘 부쩍 김기봉 선생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고 했다. '요즘 부쩍'이라고 했는데 이 이야기의 시작은 75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이전까지 김상윤 의사의 순국일(殉國日)은 1927년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유족들은 이날을 순국일로 알고 제사를 모셔 왔다. 75일 전인 지난해(2025) 11월 3일 월요일 낮 12시 반, 그날은 독립포럼(대표 최용규, 국립인천대 전 이사장) 모임이 있는 날로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10여 명의 회원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산 안창호(1878~1938)가 1913년 창립해 독립운동에 뿌리를 둔 흥사단(이사장 김전승)은 1919년 3월 1일의 역사적 의미를 바로 세우기 위해 ‘3·1절’을 ‘독립선언절’로 이름을 바꾸자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추진하며, 2월 7일까지 국민 5만 명의 동의를 목표로 전국적인 국민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동의 청원은 1919년 3월 1일이 단순한 항일 시위나 만세운동의 날이 아니라 모든 겨레가 하나 돼 대한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공식적으로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흥사단은 현재의 이름인 ‘3·1절’이 날짜 중심의 표현에 머물러 있어 독립선언이 지닌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청원을 제안했다. 김전승 흥사단 이사장은 “1919년 3월 1일, 민중의 거족적 항쟁과 함께 발표된 독립선언은 민족 주권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으며, 이는 같은 해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법통을 여는 출발점이 됐다”라며 “‘독립선언절’이라는 이름이 자주독립, 민족자결, 평화적 저항이라는 기념일의 정신적 핵심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간절한 마음을 토로하여 피를 뿌리며 널리 고하노라. 듣건대, 여러 고을에 일진회ㆍ순검ㆍ순사대를 두고 기예를 졸업시킨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를 위한 것인가? 만약 적병의 밑천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운데 줄임) 너희 조부와 부친은 선왕의 국민으로 500년 동안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지금까지 이 나라 천지에서 길러졌으니, 조그마한 것도 모두 임금의 은혜인 것이다. 왜적과는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한이 있다. 너희 선조로서 옛날 임진년(1592)의 난리에 피 흘리고 살이 찢기지 않은 자가 있었는가! (뒷 줄임)” -‘피를 뿌리며 널리 알린다’ 가운데서 ‘호남의소 도통대장(都統大將) 박용식(1909.2)’, 271쪽- “오늘이 나의 죽는 날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눈을 빼어 동해상에 걸어두어라. 너희 나라가 반드시 망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리라.” -전해산 의병장 대구공소원 법정 최후 진술 가운데(1910.7.9.), 1,178쪽 - 우국충정의 결의가 생생히 느껴지는 윗글들은 이태룡 박사가 쓴 신간 《일제침략기 의병문학》 (미래엔 출간) 속에 나오는 명문(名文) 가운데 명문이다. 이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뱀띠해(乙巳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세월 가는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다가도 문득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다보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기자에게도 지난 1년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분주했다. 그 가운데서도 이 시대의 마지막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를 떠나보낸 지 1주기(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를 맞이하던 날이 유독 가슴에 와닿는다. 다시 마주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추모의 날은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가신 이의 발자취를 추모하는 일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그나마 위안을 받게 된다.특히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경기도에서 '독립영웅 80인의 선정'하여 3.1절과 임시정부수립일, 8.15경축식 등 1년간 추모의 시간을 가진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업의 한 고리로 지난 12월 10일(수), 새로 조성한 경기도서관 지하 1층 플래닛 경기홀에서는 <세대를 이어, 독립을 잇다>(전시는 4층 특별전시실)라는 제목의 독립영웅들 후손의 구술 영상, 사진 및 일부 유품 등의 전시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에서 오희옥 지사의 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전국에 퍼져있던 의병 세력을 모아 13도 의병 연합군을 조직하여 서울진공작전을 펼친 <13도창의군 결성>을 ‘2025년 12월의 독립운동’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13도창의군은 1905년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전국에서 확산한 의병항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결성된 전국적 연합의병부대였다. 대한제국 정부가 외교권을 빼앗기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자, 해산 군인과 각지의 의병이 결집하며 투쟁이 확대되었다. 강원ㆍ경기에서 활동하던 이인영과 허위를 중심으로 전국 의병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1907년 말 13도창의대진소를 조직했고 이인영이 총대장, 허위가 군사장으로 추대되었다. 이들은 일제 통감부를 공격해 일제와 강제로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국권을 회복하며 친일 관료를 처단한다는 목표로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1만 명 규모의 의병이 지평과 양주에 집결해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속부대의 본진 도착 지연과 탄약 부족 등으로 서울까지 진공이 어려워졌으며,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이 이어지면서 민긍호(1962년 대통령장)ㆍ이강년(1962년 대한민국장)ㆍ허위(1962년 대한민국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희옥 애국지사님 가족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동신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수빈입니다. 저희 반에서 대대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독립운동으로 저항하며 광복을 바랐던 독립운동가들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아프고 큰 상처를 6학년이 돼서야 깨닫게 된 것이 그저 후회되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오희옥 애국지사님을 알게 된 계기였던 프로젝트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빼앗긴 위험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독립운동가들을 알아가고 그에 관련된 체험활동을 하며 그분들의 활동에 감사함을 전하는 일입니다. (중간줄임) 편지를 쓰기 전 오희옥 애국지사님께서 '광복절 경축식'에서 임시정부 시절 애국가를 부르시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꽃 같은 나이 14살에 어떻게 독립운동이란 길을 선택을 하셨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그 당시 정말 무섭고 두려우셨을 텐데 용기를 내신 것이 감히 제가 말을 못할 정도로 대단하시고, 또 감사합니다. 오희옥 애국자사님께서 애국가를 부르실 때 진심이 느껴져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부디 하늘에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어 조국독립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 뒤인 1945년 11월 23일, 국내로 환국하는 모습을 임시정부 요인의 유족들이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광복 80년과 임시정부 요인 환국일을 맞아 23일(일) 오후, 김포공항 국제선청사 입국장에서 임시정부 요인 유족과 정부 주요 인사, 광복회원,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환국 재현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재현 행사는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C-47 수송기를 타고 환국**했던 김포공항(당시 김포비행장)에서 진행, 선열들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고 국민에게 그 역사적 의미를 알리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 (선정 취지) 정인보 선생이 지은 광복절 노래를 인용,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이 우리 땅, 우리 조국을 다시 만져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 임시정부 요인들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고, 국민에게 역사적 의미를 알리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겠다는 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