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1-1. 비틀즈만 있나? 조선엔 밀리언셀러 임방울이 있었다
예전엔 음반 백만 장을 판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십만 장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백십이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이야 집에 누구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한 대쯤은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새까맣고 넓은 SP라는 음반을 유성기라는 기기에 얹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음악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유성기는 부잣집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몇 천 대나 있었을까?
▲ 일제강점기 '쑥대머리'로 120만 장의 음반을 판 임방울 명창
그런 그때 조선(한국)과 일본 그리고 만주에서 판소리 음반 120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 명창이 그다. 임방울 명창은 “쑥대머리”를 부르며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민족현실과 가난에 대한 한스러움을 춘향의 신세에 견주어 울분의 소리를 토해냈다. 목이 잡혔다 트였다 하기를 수십 번 가슴이 붓고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비를 거듭하여 비로소 제대로 소리하게 된 임방울은 외삼촌인 국창 김창환의 도움으로 25살에 서울로 올라와 첫무대에서 쑥대머리를 불러 선풍을 일으킨 뒤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측음기판으로 녹음하여 1백20만 장이라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가운데 “렛잇비”를 불러 유명한 팝송 가수 비틀즈와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라는 파바로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은 임방울 명창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2. 고흐만 있나? 조선엔 자신의 눈을 찌른 최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네덜란드의 고흐도 잘 안다. 하지만,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찌른, 스스로 최칠칠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른 조선의 화가 최북은 모른다. 최북은 스스로 '붓(毫)으로 먹고 사는(生) 사람'이라 하여 호생관(毫生館)이라는 호를 가졌고, 자신의 이름 북(北)를 둘로 나누어 스스로 ‘칠칠이’라고도 불렀음은 물론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고도 하였으며, 산수화에 뛰어나 '최산수(崔山水)'로도 불렸다. 고집쟁이 최북은 그림 그리기 싫을 땐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 조선시대 자존심의 화가 최북
그런데 어느 날 권세 있는 사람이 와서 강제로 산수화 그림 하나를 그리라고 하자 최북은 못 그린다고 했고, 권세 있는 사람은 그리라고 윽박지르는 실랑이를 했다. 그러다가 권세 있는 사람이 닦달하자 자기 문갑 위에 있는 필통에서 송곳을 꺼내 자기 눈을 찌르면서 차라리 나 자신을 해칠지언정 남에게 구속받지 않겠다고 외쳤다. 그때부터 최북은 애꾸가 돼서 돋보기안경을 사도 한 알만 샀다. 이렇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던 우리 화가 최북은 모르고 남의 나라 화가 고흐만 알아도 될까?
1-3. 박지원의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그런가 하면 ≪걸리버여행기≫는 읽었어도 조선 최고의 작가 박지원이 쓴 세계 최고 여행기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다. 자유롭고 기발한 글을 써서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청나라 고종의 칠순잔치에 사신단으로 가는 팔촌형 박명원을 따라가 중국의 문인, 명사들과 사귀며 그곳 문물제도를 보고 배운 것을 기록한 여행기다. 정조가 임금 자리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인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무려 여섯 달 동안 애초 목적지인 청나라 서울 연경(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2,300여 리를 한여름 무더위와 큰비가 온 뒤 무섭게 흐르는 강물과 싸우며 가고 또 갔다.
그 《열하일기》를 요즘 말로 번역해서 옮긴이들은 이 책을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말했다. 어째서일까? 너무도 힘든 여섯 달 동안의 긴 여행, 지금처럼 교통편이 편한 세상도 아니고 목숨을 건 고행 길에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보고, 꼼꼼하게 살펴보고, 다양한 사람을 사귀는 창조의 여행을 누가 박지원만큼 쉽게 할 수 있을까?
연암은 늘 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일행보다 먼저 떠나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청나라 사람들과 수없이 글씨를 써서 밤새 대화를 나누는 박지원은 그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없이 보고, 생각하며, 창조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는 칭찬을 듣는 것이다.
▲ 열하일기(박지원) 필사본 |
1-4. 조선의 책들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조금만 관심을 두면 여러 가지 음식을 기록한 요리서는 물론이고 백과사전부터 문물제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겨레문화의 고갱이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많다. 서양요리서도 읽고 브리태니커사전도 보아야 하지만 민족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숱한 고전들도 이제 먼지를 털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내야 할 것이다.
◉ 책 내용 맛보기
①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정부인 안동 장씨가 1670년 무렵에 지은 요리서로 궁체로 쓴 필사본이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조리서이며, 최초의 한글조리서. 표지에는 '규곤시의방', 내용 첫머리에는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쓰여 있다. 음식디미방은 한자어로 그중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며,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음식디미방은 예부터 전해오거나 장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가루음식 조리법과 떡 빚기 그리고 어육류, 각종 술 담그기도 자세히 기록해두었다. 이 책의 원본은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②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년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쓴 여성백과.
▲ 빙허각 이씽의 여성백과 ≪규합총서(閨閤叢書)≫
현재 목판본 1책(가람문고본), 필사본(2권 1책)으로 된 부인필지(1권 1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및 개인소장본(필사본 6권) 등이 전해진다. 여성들에게 교양지식이 될 만한 것들이 한글로 기록되었다. 지금은 잘 알 수 없는 각종 비결과 문자가 많아 당대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주식의(酒食議) : 장 담그기, 술 빚기, 밥・떡・과줄(한과)・반찬 만들기 등
*봉임칙(縫紝則) : 옷 짓는 법, 염색법, 길쌈, 수놓기, 누에치기와 그릇 때우는 법, 불 켜는 방법
*산가락(山家樂) : 농작과 원예, 가축 치는 법 등
*청낭결(靑囊訣) : 태교, 육아법과 구급방, 약물 금기 등
*술수략(術數略) : 집의 방향에 따라 길흉을 아는 법과 귀신 쫓는 부적 등
19세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으로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종합 확대하고 발전시킨 책이다. 이규경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 이덕무가 이룩한 실학을 계승하여 집대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60권 60책으로 규장각 도서이며 필사본이다. 역사·경학(유학 관련)·천문·지리·불교·도교·예제(禮制)·재이(災異)·문학·음악·음운·병법·광물·초목·어충·의학·농업·광업·화폐 등 총 1,417항목에 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의 학문적 특징은 박학(博學)과 사상적 개방성에 있다. 저자는 13경(經)에 대해 주석을 달 정도로 성리학에 해박하였으며, 불교와 도교 및 서학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서학에 대한 내용은 <지구변증설(地球辨證說)> <용기변증설(用氣辨證說)> <척사교변증설(斥邪敎辨證說)> 등에 나타나 있는데, 발전한 서양의 과학기술은 수용하고 천주교는 사교로서 배척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역사 부분에서는 중국의 역사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애정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역사적 사실을 치밀하게 고증한 것이 특징이다. <울릉도사실변증설(鬱陵島事實辨證說)>에서는 평민 안용복(安龍福)이 울릉도를 우리 영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또 농가(農家)의 월령(月令)에 대한 것이 언급된 <오하전가지변증설(吳下田家志辨證說)>, 구황식물로서 감자의 중요성을 언급한 <북저변증설(北藷辨證說)>, 고기잡이 도구에 대한 <어구변증설(漁具辨證說)> 등이 있다.
1-5.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세계화는 무엇일까?
어느 대학 교수는 네팔에 가서 이름이 한자로 인쇄된 명함을 나누어줬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네팔 교수가 말하기를 “한자로 이름을 쓰면 분명히 발음이 달라지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 또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이 있는데도 왜 굳이 한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한다. 또 한 학자는 앞에는 한자로 쓰고 뒤에는 영어로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가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과연 무슨 대답 했을까 궁금하다. 스스로 자기 문화를 외면할 때 외국인들도 우리문화에, 우리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한국 최고의 재즈 가수 윤희정 선생은 한국적인 특징을 가진 된장재즈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은 서양 성악을 하더라도 한국적 판소리 발성법을 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만의 특징이 살아있지 않으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세계화”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의 문화를 알지 못하고 하는 세계화는 공허하다. 그리고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공자의 말이 있듯이 첫째는 우리문화 바로알기이고 그리고 이어서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우리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