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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문화통신 8] 부귀공명은 썩은 쥐와 같다던 '성수침' 집터

청송당 (聽松堂) 터 : 청운동 89-3 (경기상고 경내)

 [그린경제 = 조기태 기자] ‘청송당’은 성혼(1535~1598)의 아버지인 청송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별당이었다.‘청송당’ 이란 이름은 눌재 박상 (1474~1530)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가 북악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부친 성세순(1463~1514) 때 부터로 성혼은 조부 성세순 행장인「조고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시사숙공 행장」에서 “백악산 아래 집을 정하였는데 숲이 깊고 땅이 외져 자못 산수의 멋이 있었다. 공무를 마치면 지팡이를 들고 신발을 끌며 왕래 하였다. 계곡마다 두루 찾아다니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갈 줄 몰랐다” 라고 사연을 밝혔다.

   
 

성수침이 본격적으로 이곳에 기거하게 된 계기는 1519년 기묘사화 때 스승이 처형 되고 선비들이 화를 입자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청송당을 짓고 제자 양성에 힘을 써서 많은 석학들을 배출하였다. 임억령(1496~1568)은「청송당기」에서 성수침의 청송당 생활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의롭지 않은 명성과 공명,부귀 따위는 썩은 쥐나 똥으로 보았다. 고고하게 누워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 성수침이 죽은 뒤 1668년에 외손 윤순거와 윤선거 등이 다시 중건하여 송시열,남구만 등과 함께 모여 시회를 열었다. 이후 청송당은 이이 등 성혼학풍을 계승한 후학들의 성지로 인식 되었다.

지금은 경기상고 뒷뜰에 “청송당 유지” 라는 바위 각자만 남아 있다.

   

▲ 청송당유지라고 새겨져 있다

 

**  조기태 : 세종마을가꾸기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