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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일본에 남은 사명대사 유정의 붓글씨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조 중기 임진왜란 때는 전국토가 유린되고 양국의 병사들이 각각 15만명씩 죽어갔고, 그 외 조선에서는 수십만명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최악의 국난시기였다. 이러한 억불과 국난속에서도 깨달음과 자비를 삶의 목표로 삼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자 했던 스님이 있다. 바로 사명대사 유정 대사다.불교탄압 시대에왕실과 조정에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본의무도한 침략에 당당히 맞서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승군을 이끌었던 사명당 유정스님은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는 국왕의 특사로외교에도 당당히 나섰다. 사명당 유정스님은 전쟁이 끝난 뒤 일본과의 강화조약에 일본의 담판상대로아무도 나서지 않으려는 당시 상황에서 조선의 임금을대신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일본인들의 모질고 다양한 시험을 보살승의 행적으로 다 이겨내고 오히려일본인들의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명당 유정스님은 강화조약이 마무리 된 뒤일본 곳곳에붙잡혀 갔던 전쟁포로들 1391명을 구해오고약탈해간 많은 문화재도 함께 가지고 돌아왔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의 정승 판서들은 임금의 강력한 요구에도 아무도 강화에 앞장서일본에

[화보] 피안의 세계를 찾는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치열했던 한국전쟁의 포탄 속에서 한때 사라졌다가 기사회생한철원 도피안사. 하지만 도피안사의 역사는 매우 깊다.도피안사는 신라 후기경문왕5년(865) 한국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국사는 당시 일천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을 세우고,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로 조성한 철불로모셨다. 도피안사사적기에 따르면 도선국사는 애초에는 철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철원 안양사에 모시려고 하였다. 그런데 철불을안양사로운반 도중 갑자기 철조비로자나불이 어디론가사라져버렸다. 스님은 황망한 가운데근처를 수소문하였더니 사라졌던 철조비로자나불이이곳에 앉아있었다. 부처님이 스스로 찾아온 것으로 여기고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철조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도피안사라고 이름지었다. 도선국사는 당시 신라땅 전국의 중요한 지역에 부처님의 힘을 빌어나라를 지키는 비보사찰로 절들을 창건하였는데, 이곳 도피안사도 그 가운데 하나로 정하였다. 도피안사가 있는 산은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화개산으로절은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절의 경내는 석탑과 철불을 모신 대적광전

[화보] 백제역사유적지역 내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백제 후기 미륵사가 있엇던 전북 익산시에는 백제말 옛 왕궁이 있었던 곳이 있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왕궁으로 불릴만한 곳이 없어서, 왕궁리의 지명자체가 매우 의아하다고 생각되었다. 왕궁터는 없는데 그 이름이 왕궁리이고 보니, 누구나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왕궁리에는 백제시대 양식의 전통이 살아있는 오층탑이 있었다. 절도 없는 곳에 탑만이 남아있어 이 또한 의아스러운 탑이었다. 탑이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탑이 있다는 것은 곧 절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고, 절이 있다는 것은 부처님을 모신 큰집이 있고, 그 앞에 부처님을 모시듯 탑을 세웠던 것인데, 왕궁리오층석탑은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에 이르기 까지 큰 손상없이 서있었던 이오층석탑은역사의 풍파를 견디며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었던 절의 이름도 잊어버려 그냥 마을의 이름을 따 왕궁리오층석탑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왕궁리에 왕궁은 찾을 수 없어서, 많은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궁금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기울어가던 왕궁리오층석탑을 1965년 해체복원하여 다시 세우고, 1998년에는 오층석탑의 주변을 깊이 파

[화보] 우리 땅에서 본 지평선 해넘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은 많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이다. 그렇지만 산 꼭대기에 빙하를 이고 있는 높은 산은 없으며, 마음 먹으면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사람과 친근한 산이고, 사람을 감싸주는 포근한 산들이다. 그런 산들로 가득한 한겨레의 국토는북쪽으로 가면서 더욱 거칠어지며 백두산을 경계로 북으로 대륙 중국과 맞닿아있고, 나머지는 동ㆍ서ㆍ남쪽은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한국은 산이 많아 땅의 7할이 산지이고 그 산과 산 사이에 흐르는 강가에는 비좁은 논과 밭이 있다. 한국의 산과 들은 광활하지 않아서중국의 발판이나, 미주의 대평원 같은광야나 대평원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광야에서 느끼는 광대한대지의 드넓음 대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에 담겨, 한국인의 예술적 심성에도 그대로 담기게 되었다. 하지만그런 가운데에도 한국에서도대륙의 광야에서 보는하늘과 땅이 아스라히 먼 곳에서만나는 지평선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오직 한군데 있으니, 그곳은 전라북도 김제 호남평야에서 보는 지평선이다. 호남평야의 몇몇곳은 한국에서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으로옛부터 드넓은 논에서 풍부한 쌀을 생산하였다. 하지만 벼를 심을 수 있는 조건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