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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의성 탑리 마을 가운데 솟아있는 오층모전석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는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국보 제77호의 오층모전석탑이 있다. 탑이 있다는 것은 본래 절이 있었다는 것이고, 또 이만한 크기의 탑이 있다는 것은 그에 걸맞게 큰 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있었는지, 이곳에 있었던 절은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탑이 있어서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된 탑리에 5층으로 높이 솟아있다. 절이 폐사되자 그곳에는 마을이 들어섰고, 근세에는 탑리여중교가 들어섰으며, 또 그 바로 옆에는 교회가 들어서 있다. 탑리에 들어선 교회라 하여 탑제일교회.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서있던 석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탑의 기단은 화강석 판석으로 잘 다듬어 1단으로 한 뒤, 그 위 5개층은 탑신석은돌기둥과 판돌로 각각 층을 이루었으며, 1층의 지붕돌 부터는마치 벽돌처럼 넙적한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서 쌓았다. 그렇게 쌓은 돌이 5개층을 이루었고, 그 위에는 상륜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상륜부는 사라지고, 상륜부를 받치기 위한 기초인 노반만이 납작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이 탑이 주변지역보다 꽤 높이 솟아있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보] 법천사터, 지광국사현묘탑은 없고, 탑비만 남아

원주 법천사터에서 지광국사 흔적을 찾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법천사는 원주에 있었던 오래된 절이었다.법천사는 임진왜란 당시 방화로 폐사되면서 수백년 동안 이어온 절에 대한 기록도 모두 사라져 그 정확한창건연대도 알 수가 없지만, 옛 역사기록에 따르면 신라말에 이미 있었던 절임에는 틀림없다. 법천사는 고려초 지광국사(智光國師, 984∼1067)가 생존시 대대적인 중창을 하여, 크게 번성하였다. 그 때 한국 불교는 지상에 화엄불국토를 꿈꾸었다.따라서고려시대는화엄종이 대세를 이루어 법천사는 유식학을 중심으로 한화엄사상의 한 맥을 이루는 법상종의 절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절은 사라지고 빈터만 남아있었지만, 이곳에는 법천사에서 출가한 뒤고려의 국가적스승으로 살아서 국사로 올렀던지광국사가 가르침을크게 폈던 곳으로 이곳에는 지광국사의 사리를 모신승탑(지광국사현묘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지광국사현묘탑비가 남아있었다. 지광국사는 그 깨침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광국사현묘탑과 탑비는 신라말 이후 선종의 큰스님들에게 임금들이 내린많은 승탑 가운데 비교할 만한 비슷한 양식이 없다. 이련 양식은이전에도전혀 볼 수 없었고, 이 후로도 볼수 없는 매우 화려하면서도이례적인 모습을 하고 있

[화보] 가을이 깊어가는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에는 많은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요즈음에도 미얀마나 스리랑카에서 전수받은 사리를 모신 절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국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절들을 손꼽아 5대 적멸보궁이라 부르는데, 이 5대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중국의 청량산에서 문수보살로 부터 받아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뜻 한다. 5대 적멸보궁이란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그리고 이곳 사자산 법흥사이다. 법흥사는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도 유명하지만, 신라말 전국의 명산에 선종을 열었던구산선문의 사자산문의 중심도량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사자산문의 중심이었던 법흥사는 신라말 진성여왕 5(891) 병화로 소실되었고, 고려 초에 중건하였으나, 또 다시 불이나 사자산문의 명맥은 있지만, 겨우 명맥만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법흥사는 일제강점기인 1902년 비구니 대원각스님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조선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민족은 고단한 일제강점기를 시작할 때였지만, 대원각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전하기 위하여 일

[화보] 분단의 경계에 자리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 자락에는 불교가 신라에 공식적으로 승인되기 이전 법흥왕 15년(528년)고구려의 스님이었던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세웠다건봉사가 있다. 아도화상은 고구려사람이나, 그는 당시 국제혼혈아이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위나라의 사신이었던 아굴마이며, 그의 어머니는 고구려여인 도령이다. 아굴마가 사신으로 고구려에 왔을 때 도령을 만나게 되었고, 아도는 태어났다. 아도라는 이름은 아버지 아굴마와 어머니 도령에서 한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도는 태어나 아버지 없는 아이로 많은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성장한 뒤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출생비밀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 위나라로 찾아가 위나라 대신이었던 아버지를 만나불교를 알게 되고 부처님의 진리에 감동하여 위나라에서출가하여 다시 고구려로 돌아와 불교를 모르는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 아도화상이 세운절이 건봉사라는 것이다. 역사상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의 절로 가장 유명한 절은 경북 구미에 있는 도리사이다. 아도는 도리사 근처 모례의 집에 숨어살면서

[화보]가을의 길목에서 만나는 금강산 화암사(禾巖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고성에 있는 화암사(禾巖寺)는 신라 혜공왕때인 769년 창건한 절이다.신라후기 고승이었던 진표율사는 김제 금산사를 중창한 스님으로 변산 부사의 방에 들어 깊은 수련을 하였고, 이때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법을 전해받고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진표는 대연진(大淵津)에서 용왕으로부터 옥과 가사를 받고, 용왕의 권속들이 도와 당시 큰 연못이었던 곳을 메워금산사를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머물며 해마다 개단법회(점찰법회)를 통하여 중생교화를 하였으며, 이후 금산사를 떠나 속리산 법주사를 중창하고, 다시 강원도로 가 금깅신 발연사와화암사를 개창하였다.진표율사는금강산으로 와서도금산사에서 시행했던 점찰법회를 열어, 흉년에 굶주리던 많은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진표율사는 금강산 발연사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깊은 선정에 들었다가좌탈입망하였으며, 제자들은 스승의 선정에 든 모습을 그대로 두고 매일같이 공양을 올렸다. 이후 살이 다 썩어지고난 뒤그의 해골은 바위에서무너져 떨어지게 된 뒤에서야제자들이 뼈를 모아흙을 덮어 진표유율사의무덤이 되었다. 이렇게 신라말진표율사가 창건한 화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