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3 (수)

  • 맑음동두천 3.7℃
  • 구름조금강릉 11.5℃
  • 맑음서울 4.9℃
  • 흐림대전 8.4℃
  • 흐림대구 13.2℃
  • 구름많음울산 13.9℃
  • 흐림광주 11.3℃
  • 구름많음부산 14.8℃
  • 흐림고창 11.2℃
  • 흐림제주 17.2℃
  • 맑음강화 4.6℃
  • 흐림보은 7.5℃
  • 맑음금산 8.3℃
  • 구름조금강진군 12.7℃
  • 구름조금경주시 15.1℃
  • 구름많음거제 15.6℃
기상청 제공
닫기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전체기사 보기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 '방상시' 벅수

황금빛 네 개의 눈을 가진 수호신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5]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방상시(方相氏)‘란 중국의 주나라와 한나라 때 궁궐과 백성이 잡스러운 귀신이나 역신(천연두)을 쫒아내기 위하여 섣달그믐에 베풀었던 ‘나례의식’에서 사용한 눈(目)이 4개 달린 ‘탈(假面)’의 한 종류다.​ '나례의식(儺禮儀式)과 '구나(驅儺)의식'은 삼국시대부터 왕실과 민가에서 무당이 묵은해의 '몹쓸귀신'과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벌이던 의식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때 '방상시'가 도입되어 왕실의 장례의식이나 역귀(疫鬼,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를 쫓는 의식에 쓰기 시작하였고, 나무를 써서 만들었으며, 종이나 짚으로 엮어서 만든 간편한 '방상시탈’은 주로 백성들이 사용하였다.​ '방상시'는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황금빛 네 개의 눈을 가졌으며, 검은색 저고리와 붉은색 치마를 입었고, 창, 도끼, 방패를 들고 있다. 네 개의 '눈' 가운데 위쪽의 두 눈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 곧 이승을 보고, 아래의 두 눈은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가서 사는 세상' 곧 저승을 볼 수 있다. 동서남북의 사방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전염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있는 곳을 확실하게 살피며, 찾아내는

아름다운 전통 '솟대'당산

'솟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잡귀를 막는 신앙물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4]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솟대'의 역할은 ‘벅수’와 같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잡귀와 부정, 그리고 '불길'(화마, 火魔)이 마을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세운다. 또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도하며, 마을의 '모양새'(꼴)가 “물위에 뜬 '배[行舟形]'처럼생겼다.”라고 하는 곳에서는 배의 돛대 구실도 하고 있다. '솟대'와 '벅수'는 같은 성질이지만, 동一하지는 않은 신앙물로 치성을 올리는 대상은 같다. '솟대'는 인간의 소망과 기도를 하늘과 연결하여 주는 ‘희망의 사다리’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한민족을 상징하는 우상(icon)이기도 하다.​ 다음의 사진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통당산'의 ‘솟대’들 이며, 아름다운과 차별성이 확실한 명품 '솟대'들로 진귀한 신앙물들이라 할 수 있다. 두메산골에 깊숙이 숨겨져 있거나, 가까운 곳에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보고 기억하기 어려운 우리들만의 고유한 수호신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사의식을 받고 있는 '솟대'의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단독솟대당산'과 '복합솟대당산'을 포함하여 강원도 20곳, 경기도 12곳, 경상남도 15곳, 경상북도

한 마리에서 다섯 마리까지 118곳의 '솟대당산’

마을의 신앙을 표현하는 대상물 '솟대'당산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3]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솟대'위에 올려진 새(鳥)의 숫자는 마을의 부실한 곳, 혹은 허약한 방향을 나타내는 숫자를 뜻 한다. '솟대'라는 것은 나무나 돌 또는 쇠로 만들어진 새의 모양을 긴 막대기나 바지랑대 끝에 고정을 하여 하늘높이 올린 조형물로 우리 마을의 신앙을 표현하는 대상물이다. 솟대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마을의 어귀 또는 당산에 세워진다. 솟대만을 단독으로 세운 곳을 '솟대배기' 또는 '짐대배미'라고 하며, 강원도 강릉지역에서는 '진또배기'('짐대'가 밖혀있는 곳)라고도 한다.​ 솟대는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벅수'(서낭)나 돌탑, 당산나무 등과 함께 세워져, 마을의 '하당신(下堂神)‘이나 '솟대신'으로 모셔진다. '솟대'와 '벅수' '돌탑' '당산나무'와 함께 세워지면, '복합당산(複合堂山)’이라고 한다. ​ 솟대 위에 올려진 새는 주로 '오리'라고 표현하지만, 지방에 따라 까마귀, 까치,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학 등으로도 불려진다. 솟대는 풍수지리에 의하여, 물 위에 떠있는 배(舟)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르고 약한 땅에 '배'를 상징하는 '돛대'의 기능을 세워서 힘을 보완 한

한민족의 상징 '솟대’

‘솟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야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2]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신라시대 때 박제상(朴提上, 363-419)이 쓴 《징심록(澄心錄)》의 <부도지(符都誌)>에는 상고시대’(원시부족국가시대)의 “‘마고(痲姑)할매’가 인류의 조상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고할매’와 ‘삼신(三神,産神)할매’는 같은 뜻이다.​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우리 토속신앙 속에서의 ‘마고’신화는 단군신화 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다. 기원전(BC) 10,000년, 우리땅에는 거인족(巨人族)에 속하는 ‘마고할매’가 살았다. 제주도에서는 그를 ‘설문대 할망’이라고 하였고, 중국에서는 ‘반고(盤古)’ 또는 ‘금모랑랑(金母娘娘)’이라 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라고 하였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Maria)’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摩耶)’ 부인을, ‘마고’와 서로를 견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보다는 너무나 까마득한 10,000여 년 전에 생겨난 일이다. ‘마고시대’(麻姑之那)를 천문학적으로 풀이를 하여 따져 본 개국의 연대는 zodiac(黄道十二宮, 천체좌표상에서 황도가 통과하는 12개의 별자리)의 ‘나이’로 따지면 ‘쌍여궁시대(雙女宮時代, 마고삼신의 시대)’의

한민족 맨 첫 돌‘벅수’

이빨을 드러낸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웃음 띤 표정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1]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우리 조상들이 맨 처음으로 '돌'을 사용하여 만든 수호신(守護神)의 모습은 선사시대(先史時代)의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 '가오자기'마을(佳伍作里) 어귀의 '광치고개'(廣峙嶺)에서 길목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선돌멩이'(立石, menhir)로 짐작이 된다. '가오자기'의 '선돌멩이'는 '38선'을 지키기 위한 탱크저지선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원전 1,000여년 무렵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인돌'(dolmen)들과 함께 1969년에 발견이 되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선사시대 '원시신앙(原始信仰)‘의 수호신상으로 제작된 '선돌멩이'(立石)는 250cm의 높이와 155cm의 너비, 80cm의 두께로 육중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눈썹이 치켜 올려져 있는 모습이 마치 절집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연상하게 한다. 눈, 코, 입은 오목새김으로 되어있고, 입술은 사악함을 쫓기 위하여 이빨을 드러낸 험상궂은 듯한 얼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웃음 띤 표정을 하고 있다.​ 본디 '선돌멩이'의 앞가슴에는 짐승과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여러 가지 동물들의 모양이 흐릿하

두창신을 표현한 ‘곰보벅수’

전염병이 돌면 마을 들머리에 '벅수'(서낭)를 세워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0]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박석(薄色)거리',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돌림병의 하나인 '두창(痘瘡, 천연두)을 좋지 않은 귀신 때문에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두창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두창'이라는 '유행병'(돌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금기사항을 꼭 지켜야만 하였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금기사항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며, 제사도 지내지 말고, 남의 집 잔치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를 맺지 말고, 서로를 접촉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금기를 어기면 살아남기 어려우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욕을 자주 하고, 정성을 드려 두창신에게 기도를 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 우리 조상들은, 두창신을 ‘호귀마마(胡鬼媽媽)’ 또는 '손님'으로 떠받들었으며, 마을의 들머리에 정성을 들여 두창벅수를 만들어 세우고, 이들 '손님'(두창)들이 우리 마을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벅수'를 세워서 두창을 차단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왕실에서도 돌림병으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하여 '여제(

'에밀 놀데‘의 그림에 '선교사'로 표현된 '벅수’

나약한 민족의 토속문화를 망령된 신앙으로 취급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19]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독일을 대표하는 표현주의 미술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강렬한 색채와 거친 형상을 표현하는 미술가로 유명하였다. 그때의 사람들은 그의 종교적인 그림을 보고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사악한 악마가 그린 그림일 것이다.”라고 평가를 하였다. 그는 독일의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조선시대 때(1890년) 인천 성현마을의 당산(堂山, 서낭당)에서 남몰래 뽑아서 가져간 것으로 알려진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벅수, '天下第一大將軍'에게서 강력하고 세찬 느낌을 받고, "선교사(The Missionary)"라는 그림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에밀 놀데'는 조선의 벅수에서 강렬한 형태의 무속적인 느낌과 에너지를 받아 아프리카의 탈과 조선 벅수의 표정을 서로 견주어 상징적으로 배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아프리카의 여인은 벅수 같은 모습의 탈을 쓴 무섭고 오만한 태도의 선교사앞에 무릎을 꿇고 손에 들고 있는 무엇인가를 권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나약한 민족의 토속문화를 망령된 신앙으로 취급을 하여 말살시키고, 침략적

대전 민속자료 제1호 ‘돌벅수’는 조작되었다

70여 년 전 한 석수장이가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대전 돌벅수들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18]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범천골의 수호신 '天下(이승)大將軍'과 '地下(저승)大將軍'은 1989년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본디 나무벅수였으나 300여 년 전에 대전에서 큰 부자였던 송민노가 지금의 돌벅수를 세웠고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에 세워진 '석장승'이다,”라고 문화재청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꾸며서 만든 이야기며,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다시 검토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벅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으로 부터 300여 년 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1,700년 무렵의 벅수에서는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라는 글씨를 가진 벅수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란 글씨는 1876년을 앞뒤로 하여 개화기 때부터 우리땅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천골의 벅수는 300 여년 된 벅수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2003년 범천골 벅수를 조사하고 촬영하는 현장에서 만나 뵌 90대로 추정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로는 “이웃 마을의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교감선생이었던 남편이 6.25전쟁 때 범천골벅수의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라는 글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