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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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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신복사터 삼층석탑 (보물 제87호)

가람 흔적에 기대어 고려를 듣는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3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릉신복사터 삼층석탑 - 이 달 균 누가 고려를 저문 왕조라 했나 북쪽엔 금당지 좌우측엔 회랑지 이 가람 흔적에 기대어 고려를 듣는다 황급히 옷깃 적시고 떠난 여우비도 하늘을 걸어와 사라지는 무지개도 해묵은 고려를 잠시 펼쳐 보인 것이리 탑 찾아 다니다 보면 의외로 지역민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땐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게 상책이다. 정작 근처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것을 내비게이션이 아는 것을 보면 한국 정보통신(IT)산업의 척도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찾아간 신복사터탑은 화려함보다는 범박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낮은 산릉이 내려와 가지런한 솔숲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먼저 탑 앞에 배치된 보살상에 눈길이 간다. 손은 가지런히 모았는데 원통형의 커다란 관을 쓴 채 왼 무릎은 세우고 오른 무릎은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앉음새에 따라 흘러내린 옷의 주름이 자연스럽다. 가람을 짓고 탑을 세운 고려인들의 기원이 간절했겠지만 탑과 보살상을 만든 석공의 노고가 그려진다. 연꽃 모양을 한 탑 상륜부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기단과 몸돌 각층 밑엔 고임돌을 넣어 안정감 있게 배치하였다.(시인

경주 장항리서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동탑의 잔해 구를 때 서탑은 울지 않았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장항리서오층석탑 - 이 달 균 신라를 갖고 싶다면 역사도 갖고 가라 부장품이 탐난다면 정신마저 앗아가라 동탑(東塔)의 잔해 구를 때 서탑(西塔)은 울지 않았다 탑은 토함산이 굽이치다 한 호흡 가다듬는 능선 끝자락에 서 있다. 절 이름과 연혁에 대해서는 자료나 구전이 없어 마을 이름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터’라 부르고 있다. 탑 구경 다니다 보면 애잔한 심지 돋을 때가 한두 번 아니다. 이 탑도 그중 하나다.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서에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서 있는데, 서탑은 그런대로 제 형상을 갖추었기에 국보(제236호)로 지정되었으나 동탑은 원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계곡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1층 몸돌을 가져와 다섯 지붕돌을 겨우 모아 세워두었다. 서탑을 자세히 보면 정교한 장인의 손놀림이 상상된다. 어떤 연유, 어떤 간절함이 있었기에 이렇게 정교한 숨결을 불어넣었을까. 1층 몸돌 4면(面)에 도깨비(鬼面) 형태의 쇠고리가 장식된 2짝의 문, 그 좌우에는 연꽃 모양 대좌(臺座) 위에 서있는 인왕상(仁王像)의 정교함은 가히 걸작이라 할 만하다. 이런 서탑의 아름다움을 보면 원 형체를 잃어버린 동탑이 더욱 안

달성 대견사터 삼층석탑

석탑은 그저 빙그레 웃고만 계시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달성 대견사터 삼층석탑 - 이 달 균 대숲은 씻어라, 귀마저 씻어라 하고 바윗돌은 잊어라, 깡그리 잊으라는데 석탑은 그저 빙그레 웃고만 계시네 듣고 싶지 않은 말, 들은 날에 대견사터 찾아간다. 대숲에 들어 귀를 씻고 싶다. 돌로 손등을 찧어 그 아픔으로 잊고 싶다. 하지만 삶이 그리 간단하며 인연을 끊는 일 또한 그리 쉬울까. 차라리 나를 묻고, 세속과 절연하는 심정으로 길을 떠난다. 내 속마음이야 끓든 말든 탑은 언제나처럼 말이 없다. 석탑은 산 정상 암반에 건립되어 넓은 시계를 확보하고 있는데,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이 흥한다는 비보사상(裨補思想)에 따라 세운 예라고 한다. 대견사엔 꽤 그럴듯한 전설도 있다. 당나라 문종(文宗)이 세수를 위해 대야에 물을 떠 놓았는데, 그 물에 대국에서 본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기에 가히 길지라 하여 이 터에 절을 짓고 이름을 대견사라 했다는 구전이 그것이다. 고개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당간지주와 느티나무가 멀리 산안개를 배경으로 서 있다. 그 풍경 속에서 조금씩 모가 깎여가는 나를 느낄 수 있다. 돌아올 즈음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의 그 미움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었다.(시인 이달균)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

부처님 경전 펼쳤으니 미륵세상은 곧 온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 - 이 달 균 사자도 절간에 오면 할 일이 있나보다 소신공양 좋다지만 몸 공양도 거룩하다 짊어진 말씀이 서 말 닷 되 하늘이 다 노랗다 두촌면 괘석리를 몸 하나로 옮겨와 읍사무소에 세웠으니 청사가 곧 절이다 부처님 경전 펼쳤으니 미륵세상은 곧 온다 이 석탑은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었다 한다. 그곳을 먼저 찾아보니 주변은 경작지로 변해 있고,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 외에 별다른 흔적이 없다. 석탑이 선 곳은 홍천읍사무소 앞마당이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이 석탑은 가장 중생과 가까운 곳에 있다. 굳이 을씨년스럽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석탑 선 곳이 종일 경적소리 들리는 곳인데 이 또한 범종소리로 고쳐 들으면 되지 않을까. 비록 석탑의 각 부에 다소간 파손이 있고 부분적으로 마멸 흔적이 있으나 4좌의 석사자 모습이 그런대로 형태를 갖춘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다. 네 마리 사자는 투박한 연꽃을 새긴 기단 위에 뒷다리는 구부리고 앞다리는 세운 채 다소곳이 앉았는데, 위엄보다는 소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고려 초기 탑으로 추정한다.(시인 이 달균)

함양 승안사터 삼층석탑(보물 제294호)

몸돌엔 사천상, 머리 쪽엔 부용꽃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함양 승안사터 삼층석탑 - 이 달 균 명산 있는 곳에 명찰이 있었고 명찰 있는 곳에 손 모은 탑 있었다 품을 것 다 품은 산이 지리산 아니던가 고려 적 한 석공은 부처님 부름으로 몸돌엔 사천상을, 머리 쪽엔 부용꽃을 미려한 부조 새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바쁜 길손이여 시절이 분주해도 이곳 지나거든 눈길 한 번 주고 가소 승안사 잊혀진 이름, 석탑 하나 의연하다 승안사터는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다. 자세히 눈길 주면 섬세한 석공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두 개의 기단이 3층 탑신을 받치고 있는데 맨 아래 기단부엔 연꽃 조각을 새겨 둘렀고, 두 번째 기단부에는 부처, 보살, 비천상을 새겼으며 탑신 1층 몸돌 4면엔 남방ㆍ북방ㆍ서방ㆍ동방의 사천왕상을 돋을새김(부조)해 놓았다. 사천왕상은 절 일주문에서 흔히 본 과장되고 험상궂은 모양이 아니라 미소 띤 동자상처럼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몸체 굴곡 또한 부드럽고 풍성하게 돋을새김(양각)하여 표정이 살아 있다. 현재 석탑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두 번 옮겨 세웠다고 하는데 이웃한 곳에 고려 시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석탑이 그러하거늘 석조여래좌상인들 우여곡절이 없을 것인가.

당진 안국사터 석탑(보물 제101호)

삼존불이 함께 있어 예까지 왔으리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당진 안국사터 석탑 - 이 달 균 낮이면 멈추고 밤이면 걸었다 그 뒤로 고려의 별들이 따라 왔다 쉼 없는 삼보일배(三步一拜)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묵언으로 걸어온 기나긴 수행의 날들 언제나 배경이 되어 함께 한 동반자여 어엿한 삼존불(三尊佛)이 있어 예까지 왔으리 아쉽다. 하긴 이런 모습이 안국사터 석탑뿐이랴. 1층 몸돌은 남아 있는데 2층 이상의 몸돌은 사라지고 지붕돌만 포개진 채 기형으로 서 있어 어딘지 엉성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세웠을 때 모습은 제법 어엿했으리라 짐작된다. 각 귀퉁이에 기둥을 본떠 새기고 한 면에는 문짝 모양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은 것이 그렇다.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탑이기에 1963년에 보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절은 사라졌으나 이 탑을 배경으로 입상의 석조여래삼존불이 있어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보인다. 가운데 본존불은 발 모양을 형상화한 부분을 빼곤 하나의 돌로 이뤄진 대형 석불인데, 머리 위에는 화불이 장식된 보관을 착용하고 있어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이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협시ㆍ우협시 보살상이 함께 서 있는데 이 역시 훼손의 흔적이 크

곡성 '가곡리오층석탑'(보물 제1322호)

그 무게 내려놓고 이제 좀 쉬고 싶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곡성 가곡리오층석탑 이 달 균 나는 멀찍이서 마을을 내려다 본다. 어느 나무에서 까치가 우는지 오늘은 또 누가 죽어 곡성이 들리는지 백제계 혈통으로 고려를 짐 졌지만 그 무게 내려놓고 이제 좀 쉬고 싶다 잊고픈 이름 있다면 이곳에서 잊고 가라 이 석탑을 찾아가다보면 마을 입구 길 옆에 석장승 2기가 서 있다. 남녀 한 쌍으로 보이는데 검은 빛을 띤 장승은 눈썹과 눈 주위가 마모되어 형체가 불분명하지만 뭉툭한 코는 든든한 사내다움이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고, 흰빛을 띤 장승은 머리에 족두리인지 뭔지를 쓴 채 가렴한 눈매를 가진 색시상으로 보인다. 마을 수호신으로 세운 것인지 유서 깊은 옛 탑을 지킨다는 염원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범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주민에게 탑 자리를 물으니 큰 관심 없다는 듯 대답은 심드렁하다. 석탑은 마을 끝자락 매봉 초입 언덕에 서 있는데 막상 다가가보니 그 자태는 늠름하다.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생각해 보니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을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고려탑이지만 백제계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더욱 그런가 보다. 전해 들으니 예전 유물보전에 소홀했던 시절에는 가까이 가도 대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