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일)

  • 흐림동두천 -4.3℃
  • 흐림강릉 5.2℃
  • 연무서울 -2.3℃
  • 구름많음대전 -3.1℃
  • 흐림대구 -2.0℃
  • 흐림울산 0.0℃
  • 흐림광주 0.6℃
  • 흐림부산 5.4℃
  • 흐림고창 -1.4℃
  • 제주 7.8℃
  • 흐림강화 -2.1℃
  • 흐림보은 -5.6℃
  • 흐림금산 -5.2℃
  • 구름많음강진군 -0.1℃
  • 흐림경주시 -3.3℃
  • 흐림거제 2.3℃
기상청 제공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기사 보기


장국밥 한 그릇과 홍성 “가무악전국경연대회”

[서한범 교수의 우리 음악 이야기 39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선소리산타령보존회> 2018 정기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의 이름은 이미 100년 전 발행된 잡가(雜歌)집에 보이고 있으며 답교(踏橋)놀이에서 빠질 수 없던 노래라는 점, 뚝섬패, 과천방아다리패, 왕십리패, 명동, 충무로 일대의 호조다리패나 방아다리패, 용산의 삼개패, 한강패, 쇠붕구패(서빙고), 공덕동의 동막패, 청파동의 청패, 진고개패, 배오개 마전다리패, 성북동패, 자하문밖패, 애오개패 등 등, 전문소리패들이 있었으나 해방이후 단절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다행히도 60년대 말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입타령(口音)이 많고, 장단이 불규칙하며 통성으로 부르지만, 사설 내용이 건전하고, 합창으로 부르는 신명의 소리인 점, 벽파의 고향 성동구에서 열렸고 경기와 서도의 산타령을 한 자리에서 견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홍성에서 열린 열네 번째 “가무악 전국경연대회”를 보면서 느낀 이모저모를 소개하고자 한다. 충남 홍성은 옛 홍주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내포문화권의 중심지로 한국의 역사를 이끌었던 수많은 선현이나 위

“산타령”을 함께 부르는 청중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재담소리 “장대장타령”공연과 <경토리 민요단>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민요단은 스스로의 발표회, 특별공연, 기획공연 등을 마련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산골마을이나 해안가의 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면서 경서도 민요의 멋과 흥을 전파하는 소리의 전도사역을 맡고 있다는 점, 재담극(才談劇)이란 말만 잘하고, 소리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민요창이라는 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대사처리, 연기력, 춤이나 동작, 등이 종합적으로 훈련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소리극이란 점, 장대장이 만포첨사라는 무관 벼슬을 얻어 멀리 떠나면서 또는 한양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한 내용이란 점, 아직 그들의 노래나 연기력, 무대 배경, 소도구 등 부족한 것이 많으나 모든 출연자들이 열연해 주어서 많이 웃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10월 23일 성동문화원 대극장에서 열린 <선소리산타령보존회> 2018 정기공연에 관련된 내용이다. 경기와 서도지방의 산타령을 한 무대에 올려놓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 난

일제강점기 재담소리, 대중들에게 큰 위안 줘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화용도(華容道) 좁은 길목에서 조우하게 된 조조와 관우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조가 부하들의 권고대로 관우에게 빌면 관공은 대꾸도 없이 “이 놈,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치고, 조조가 “전일을 생각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면 관공은“너는 한(漢)나라 적신이고, 나는 한나라 의장이라. 너를 보고 놓겠는가?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친다는 이야기,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수하 장졸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장군님 덕행으로 우리 승상 살려 주시면, 여산여해 깊은 은혜 천추만세를 허오리다.”에 관우는 조조를 쾌히 놓아 주고 돌아와 공명께 보고한다. “용렬한 관모는 조조를 놓았사오니 의율시행하옵소서” 공명이 내려와 손을 잡고 회답하되,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 충의가 무엇이고, 사나이들의 의리가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적벽가 끝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번 주에는 신념과 자부심이 남다른 경기소리 명창, 노학순의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발표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장군님은 유정하오나, 청룡도는 무정지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난주에는 판소리 적벽가 외에도 경기 좌창의 하나인 적벽가와 서도소리의 적벽가도 있다는 이야기, 판소리 적벽가는 중국 위의 조조, 한의 유비, 오의 손권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삼고초려대목, 장판교 싸움, 군사설움타령, 적벽강 싸움, 화용도 대목 등인데, 삼고초려는 장수들의 위엄이 우조로 그려져 있어서 담담하고, 싸우는 대목에서는 물고 물리는 긴박한 광경이 빠른 장단으로 전개되어 긴장감을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군사설움대목이나 화용도 대목에서는 계면조의 애처러운 소리와 함께 재담소리가 들어있어 부분적으로 웃음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를 하였다. 또 판소리 적벽가의 명창으로는 순조 때의 송흥록과 모흥갑, 방만춘, 주덕기, 박만순을 위시하여 많은 명창들이 이름을 남기었고 경기잡가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의 끝부분, 즉 화용도 대목의 일부분 사설을 도드리장단에 얹어서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적벽강 싸움에서 패한 조조가 쫒기는 몸이 되어 화용도에 들어섰는데, 이들의 앞을 관우가 가로 막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와 칼을 받으라고 명하는 관우의 설전이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막다른 골목에서 조우하게 된

옛 사대부들은 판소리 중 적벽가 좋아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8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요성법이 경기지방이나 남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방마다 말이 다르고,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민요에도 지방색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각 지역 민요의 음조직이나 창법, 시김새 등이 다양한데, 서도지방의 소리제는 <수심가조>, 또는 <수심가토리>로 부른다는 점, 수심가 소리제는 관서지방 사람들에게 벼슬을 주지 않게 되자, 그 설움을 노래에 실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서도소리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서도소리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되어있으나 이를 계승하려는 젊은이들이 극소수이며, 문화 예술의 변방으로 취급되어 독특한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1세대 전문예인들은 노쇠하였거나 타계한 상태라는 점, 서도소리를 포함하여 여러 권역의 다양한 문화와 독특한 예술의 존재가, 바로 대한민국이 높은 문화 수준을 구축하게 된 배경이란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적벽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적벽가라는 제목으로 불려지고 있는 노래들은 우선, 판소리 적벽가가 있고, 경기지방의 좌창 12곡 중에도 적벽가가 들어

서도소리, 전승자 극소수로 위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8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수심가(愁心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노랫말의 “약사몽혼 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 문전석로 반성사(門前石路半成砂)로구나”의 의미는“만약 님의 혼이라도 꿈에 다녀간 흔적이 있다면, 문 앞 돌길의 반은 모래길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상대를 그리워하는 절실함의 표현이라는 점, 2장의 형식의 구성으로 각 장은 안구(句)와 바깥구로 짜여 있어서 간결하다는 점을 말했다. “북에는 수심가, 남에는 육자배기”라는 말처럼 북쪽의 대표적인 소리가 수심가라는 점, “대동강 물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소리 흉내내기 어렵다.”는 말이 전해 오듯이 독특한 표현법의 처리가 쉽지 않다는 점, 특히 떠는 소리는 목을 조여 가며 치켜 떠는 목구성으로 처음엔 좁게 떨다가 점차 확대되면서 격하게 떠는 졸름목(졸음목)의 독특한 요성법을 쓴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처럼 서도소리에서는 그 요성법이 격하고 독특하지만, 경기민요의 요성은 대체로 음폭이 크지 않고 평이하다. 또 남도창에서는 음폭이 크고 격렬해서 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음을 떠는 형태도 서도소리와 경기소리, 그리고 남도의 소리가 다르다는 점이 마

수심가, 대동강 물 먹은 사람 아니면 흉내 어렵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8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창으로 부르는 적벽부(赤壁賦) 이야기를 하였다. 적벽부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벽파 이창배 명인이 곡을 붙인 것, 다른 하나는 박기종 명인이 사설을 남긴 것인데, 후자는 평양에서 이정근의 소리를 메모해 두었다가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에 실었으나 본인이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사설만 기록하여 전승이 불가하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러나 평양에서는 벽파의 그것과 다른 적벽부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 벽파의 적벽부는 3박을 기준으로 넘나들며 곡조의 분위기는 발림 엮음형식이지만, 지금은 거의 부르는 사람이 없어 단절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 이러한 <적벽부>에 반해 <적벽가>의 전승은 매우 활발한 편이어서 판소리와 경기좌창으로 부르고 있으며 서도 적벽가도 박태여의 《경서도 민요집》과 박기종의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에는 <화룡도>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리고 서도적벽가는 세마치장단을 근간으로 4, 5, 6박 등으로 넘나들며 그 시작은 “에 -에- 조조군사 대패하여 지향 없이 달아날 제, 이리가면 어디메묘, 저루가면 어디맵니까”<중간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