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2 (일)

  • 구름많음동두천 18.3℃
  • 흐림강릉 16.4℃
  • 흐림서울 18.6℃
  • 흐림대전 16.1℃
  • 대구 17.6℃
  • 울산 18.0℃
  • 구름많음광주 20.2℃
  • 부산 18.1℃
  • 구름많음고창 18.4℃
  • 맑음제주 20.1℃
  • 구름많음강화 18.9℃
  • 흐림보은 15.5℃
  • 흐림금산 17.1℃
  • 구름많음강진군 20.5℃
  • 흐림경주시 17.5℃
  • 흐림거제 19.3℃
기상청 제공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기사 보기


휘모리잡가 예능보유자 박상옥의 장기타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3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였는데,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라면 뒷산타령은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로 슬픈 느낌과 염불조의 느낌이 있다는 점, 뒷산타령의 도입부를 독창자가 낮은 음으로 내면, 제창자들은 7도 위로 받는 점이 특이하다는 점, 뒷산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인데, 받는 후렴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잦은산타령은 만(慢)-중(中)-삭(數) 중에서 삭에 해당되는 노래라는 뜻, 사설 내용도 다양한 편이어서 명산의 경개와 함께 춘향가나 심청가, 공명가나 초한가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쓰고 있다는 점, 산타령은 정가(正歌)나 무악(巫樂), 잡가(雜歌)나 민요가락과도 또 다른 독창적인 창법으로 대중들이 즐기는 소리란 점, 특히, 높고 시원한 목청과 다양한 발림, 그리고 장단형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독특한 소리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에 무계원 특별 공연에 초대되어 박상옥 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동 종목의 전승

답교놀이는 다리로 다리를 건너는 놀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과 같은 비인기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보존회원들에게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는 점과 뚝섬패의 모갑이, 이동운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동운은 어려서부터 산타령을 잘 불렀고, 어느 날 고종 황제 앞에서 부르게 되었는데, 고종이 감탄하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뚝섬벌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와 그의 형을 가르친 선생이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이종대, 이종대의 선생이 이의택으로 산타령의 계보가 정리되고 있는 점에서 늦어도 1800년대 초기에는 산타령이 불려 졌으리라는 이야기, 그리고 산타령을 부른 초기의 소리꾼들은 사당패, 예인집단, 또는 세속 음악인들이 그 앞 시대로부터 전해오고 있는 소리형태를 고치고 다듬어 전승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실제로 <앞산타령>이라든가 <뒷산타령>과 같은 산타령의 악곡 이름이 문헌에 보이는 것은 1910년~1920년대에 등장하는 각종 잡가집(雜歌集)들이어서 이미 이 시대에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처럼 1920년대 전후, 산타령이 활

고종황제 앞에서 산타령 부른 이동운 명창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산타령 정례발표회를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에서 열고 있는 배경도 왕십리패가 부르던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의 고향이 성동구라는 점, 이와 함께 무형문화재 종목은 개인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연례적인 공개발표회를 통해서 전승 의지나 실태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 발표자들을 따라 산타령을 함께 제창하는 청중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제 산타령은 대중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등을 앞에서 이야기 하였다. 문화원 대극장에서 산타령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사회자(방영기 전수조교)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 산타령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즉석 도움말을 하게 되었다. 평소 경기소리나 산타령에 관한 생각의 일단을 가감 없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이 비인기 종목을 붙들고,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여러분과 우리 사회가 보내는 진정어린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범한 직업인들이라는 점과,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여건을 뒤로 하고, 자

왕십리패의 산타령, 유일하게 전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