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0 (수)

  • -동두천 26.7℃
  • -강릉 22.9℃
  • 서울 26.1℃
  • 대전 24.3℃
  • 대구 25.4℃
  • 울산 26.2℃
  • 박무광주 29.2℃
  • 구름많음부산 29.5℃
  • -고창 26.8℃
  • 흐림제주 33.6℃
  • -강화 25.4℃
  • -보은 21.9℃
  • -금산 25.8℃
  • -강진군 30.1℃
  • -경주시 24.9℃
  • -거제 29.9℃

한국문화답사

전체기사 보기


1300년의 고구려 역사를 간직한 사이타마 고마신사를 가다

고마신사(高麗神社) 제60대 궁사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와 특별대담

[신한국문화신문= 일본 사이타마 이윤옥 기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신사(神社) 경영이 어려워 아버지는 교사 직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게 1975년 무렵입니다. 이후 아버지는 교직을 사직하고 궁사(司宮, 구우지) 일에만 전념하게 되지요. 여러분이 고마역(高麗驛, 고구려를 고마라고 발음)에 내렸을 때 광장에 빨간 장승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것은 아버지의 글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쓴 글씨는 아닐 겁니다. 병환 중에 쓰신 글씨였거든요." 고마신사(高麗神社, 고마진자)의 제60대 궁사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는 대담을 위해 찾아간 기자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장승에 새겨진 글씨가 아버님의 글씨라고요? 아이고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보고 올 것을 그랬네요" 일행은 고마역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글씨가 누구의 글씨인지 몰랐다. 15일(일) 오전 11시, 사이타마현 히다카시(埼玉県日高市)에 자리한 고마신사의 접견실에서는 기자를 포함한 한국인 4명과 일본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도다 미쓰코(戶田光子) 씨 등 일본이 3명이 1시간 가까이 궁사(宮司)와 환담 시간을 가졌다. 고마신사를

돌비석에 고구려스님 창건기가 적힌 이바라키현 근본사에 가다

1702년 만겐시반 스님이 지은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이 근거 주지스님도 모르는 절의 창건유래 가르쳐주다

[신한국문화신문= 이바라키현 이윤옥 기자] "아니 이 돌비석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이야기가 써있단 말입니까?" 어렵사리 찾은 이바라키현 근본사의 가미하라(上原) 주지스님 (일본에서는 주직(住職, 쥬쇼쿠))은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되레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또 한다는 말이, "본당(대웅전)이 원래 이 자리가 아니었는데 본당을 세우면서 이리로 옮긴 것입니다. 그때 이 돌비석의 유래를 몰라 그냥 버리려다 이곳에 옮겨 온 것이지요." 아뿔사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주지스님한테 절의 유래를 들으러 갔다가 되레 기자가 주지스님에게 절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럴려고 멀고먼 한국에서 이바라키현 가시마시(茨城県 鹿嶋市)까지 낯선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나 싶어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 어제 10일(화), 기자는 근본사(根本寺, 곤뽄지) 를 찾아가기 위해 이른 아침 도쿄역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근본사가 자리한 가시마(鹿嶋 또는 鹿島)까지는 고속버스로 두어 시간 걸렸다. 가시마진궁역이 종점인 곳에 내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간신히 근본사에 도착한 기자는 인기척 없는 경내를 살피다가 본당 앞에 이끼 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백제계 행기스님이 손수 만든 관세음상 첫공개

1도삼례(一刀三禮)로 만든 관세음상의 요코하마 홍명사를 찾아서

[신한국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원래 사진 촬영은 금지입니다만 한국에서 오신 기자를 위해 특별히 허용합니다. 하지만 유리문 밖에서 보셔야합니다." 어제 5일(목) 찾은 관세음신앙의 명소인 연화원 홍명사 (蓮華院弘明寺, 렌게인구묘지)의 미마츠간다이(美宋寬大) 부주지 스님은 기자를 본당(대웅전) 안쪽 깊숙이에 모셔져 있는 11면관세음보살상(줄여서 관세음상) 앞으로 안내했다. 높은 천정의 조명은 흐리지만 관세음상 앞에 켜둔 여러 개의 촛불이 서로 관세음상을 비추려는 듯 흔들거리며 밝기를 조절해주는 듯했다. 아! 이 불상이 1,300여 년 전 백제계 행기스님이 직접 만든 불상이라니 기자는 합장하여 예배했다. "행기스님이 만든 이 불상은 1도삼례(一刀三禮)로 만든 것입니다. 곧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고,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는 방식이지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 간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홍명사의 관음상은 관동지역에서도 그 형식이 아름답기로 으뜸입니다." 부주지 스님은 관음상을 우러러 보고 있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역시 한국 최초 공개 불상이다.(기자는 군마현의 미즈사와절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 상을 최초로 공개한

백제계 행기스님의 유서깊은 절 성곡사를 찾아서

판동33소관음순례(坂東33所觀音巡禮) 제8번 도량

[신한국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로 가기 위해 도쿄에서 특급으로 한 시간여 달려가 내린 자마역(座間驛)은 한적한 소도시 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길을 묻고자해도 지나는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에 성곡사는 자리했다. 판동33소관음순례 제8번(坂東33所觀音巡禮第八番) 도량인 성곡사는 일본 최초로 대승정의 칭호를 받은 백제계 출신 행기(行基, 668~742)스님이 개산(開山)한 절이다. 행기스님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에는 행기스님을 백제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 행기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奈良 藥師寺)에서 신라승 혜기(慧基)와 백제계 의연(義淵)스님에게서 불도를 닦았으며 스물네 살에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덴표 17년(745)에 대승정 자리에 오른 일본의 고승이다. (초대승정은 고구려 혜관스님이고 행기스님은 이후 대승정으로 활약). 이후 민중 속에서 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다 81살의 나이로 스가와라지(菅原寺)에서 입적한다. 나라시대 뛰어난 고승들이 많았지만 행기스님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승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군마현 광은사서 만난 일본 최초 승정 고구려 혜관스님

광은사(光恩寺) 주직 나가라쿄코 스님과의 대담

[신한국문화신문=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 이윤옥기자] “1월 1일 오후 3시에 오시면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에 자리한 광은사(光恩寺, 고온지) 주지스님은 서울에서 누리편지(메일)를 보낸 기자에게 시간까지 정해주면서 찾아오라고 했다. 1월 1일은 일본 절에서 새해맞이(初詣, 하츠모우데) 로 한해 가운데가장 바쁜 때로 외부 손님과의 대담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님은 흔쾌히 기자와의 약속을 해주었다. 광은사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개산(開山, 산문을 연다는 뜻으로 창건을 뜻함)한 절로 이카호의 수택사(미즈사와데라, 水澤寺), 이바라기현의 근본사(根本寺, 곤본지)와 함께 관동 지역의 3대 고찰 가운데 하나인천년 고찰이다.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주지스님을 찾아뵙겠다고 한 것이 죄송스런 일이긴 하지만 기자 역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이때뿐인지라 용기를 내어 편지를 보낸 것이 가상했는지 광은사의 주지스님은 약속대로 3시에 기자를 맞았다. 팔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모습의 주지스님은 검은 옷에 흰 목도리를 두르고 기자를 만나자 마자 명함을 건네주었는데 광은사주직(光恩寺住職) 나가라쿄코(長柄行光)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실례지만 연세는? 이라

남원서 철의 테크노벨리, 가야제철유적 확인

지리산 달궁 일원 등 30여개소 제철유적 발굴 향후 발굴조사를 통해 전북 동부가야 실체 파악 필요

[신한국문화신문=하진상 기자] 전라북도(도지사 송하진)는 남원시(시장 이환주)와 함께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 제철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운봉고원 일대에서 30여소의 대규모 제철유적이 집중 분포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금년 4월부터 군산대학교박물관(관장 곽장근)에서 진행 중인 이번 조사는 백두대간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 뻗은 산줄기 양쪽에 20여개소와 지리산 달궁계곡 일원에 1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서, 운봉고원이 장수 대적골 일대의 제철유적과 함께 대규모 가야제철유적의 분포지라 할 수 있어 주목된다. 특히, 바래봉 북쪽 옥계동(현 운봉읍 화수리 일대) 제철유적은 천혜의 자연분지에 슬래그(광물 제련 찌꺼기)의 분포 범위가 500m에 달하고 제철유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현지조사 때 기벽이 상당한 두꺼운 회청색 경질토기편이 수습되어 제철유적이 삼국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리산 달궁계곡에 소재한 마한 왕 달궁터 부근의 하점골(현 산내면 덕동리) 제철유적은 운봉읍 공안리, 수철리 제철유적과 함께 유적의 범위가 넓고 유구의 보존상태가 매우

고구려개(고마이누)는 왜 도쿄 아사쿠사신사를 지키고 있을까?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서

[신한국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지만 25일 들린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초만원 상태였다. 도쿄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센소지 가미나리몽(浅草寺 雷門)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도쿄에서 센소지를 보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인사동을 안보고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만큼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는 일본 관동지역에 몇 안 되는 고찰인데다가 절보다도 절 입구에 들어서 있는 기념품가게(나카미세)가 관광객들에게는 매력 만점으로 꼽히는 곳이다. 더욱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센소지가 고대 한국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 절은 백제계 어부 형제인 히노구마 하마나리, 다케나리가 서기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에서 고기를 잡다가 건져 올린 작은 금불상이 인연이 되어 창건한 절로 《신찬성씨록》에 “히노구마(檜前) 씨는 백제계의 고조(高祖)” 라고 나와 있다. 센소지에 대해서는 백제계 어부형제 뿐만이 아니라 백제계 하지(土師中知) 스님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에 있는 고구려개(고마이누, 高麗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