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에 해주항아리 232점이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이번 기증은 목인박물관 목석원(관장 김의광)이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수집해 온 소장품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소중한 자료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존ㆍ관리하고, 더 많은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기증자의 높은 뜻으로 이루어졌다. □ 옹기와 백자 사이, 실용에 아름다움을 입히다 해주항아리는 북한 황해도 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된 조선 후기 백자로, 옹기의 쓰임새에 조선 후기 청화 백자의 전통 제작 기술이 결합된 생활 자기다. 일반 옹기보다 고가였음에도, 황해도ㆍ평안도 지역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해주항아리는 대부분 길쭉한 옹기 형태로, 크기는 약 60~70cm다. 흰 바탕에 청색ㆍ갈색ㆍ녹색 물감으로 그려낸 모란과 물고기 무늬는 길상과 번영을 상징하며,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동시에 민화를 연상시키는 장식성을 보여준다. 해주항아리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도 생산과 소비가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전통 도자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이번 대규모 일괄 기증은 향후 해주항아리의 양식과 시대별 변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장용준)은 4월 8일(수) 산청 순천박씨 문중 소장 문화유산〈금관〉등 24건 31점을 기증받았다. 산청 순천박씨 문중은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에서 300여 년 동안 대대로 살았던 가문이다. 이번에 기증된 문화유산은 대한제국기에 비서원승(祕書院丞)을 지낸 박해용(朴海容, 1849∼1924)이 사용했던 유품이다. 박해용은 1849년에 태어나 1894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이후 가주서, 홍문관 시독, 비서원승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 비서원: 갑오개혁 이후 임금 명령의 들어오고 나가는 것과 기록을 담당하는 관청. 비서원의 우두머리는 경(卿이)고, 승(丞)은 그다음 벼슬임. 이번에 기증된 자료에는 조복(朝服)을 입을 때 쓰던 금관(金冠), 조복을 갖출 때 입었던 적초의(赤綃衣)와 청초의(靑綃衣), 조복의 뒤에 늘이는 장식인 수(綏)와 대대(大帶), 패옥(佩玉)과 패옥 주머니, 각대(角帶), 홀(笏), 목화(木靴) 등 조복 일체와 제관(祭冠), 사모(紗帽), 제복(祭服), 단령(團領) 등의 복식, 호패 등이 있다. 이 자료들은 조선말∼대한제국기 양반 가문의 복식과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그 값어치가 높다. 사용자가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덕수궁 조원문 권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1910년대 일제에 의해 헐어버렸던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발굴조사 현장: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99, 덕수궁 조원문 권역 * 발굴조사 기관: 재단법인 호서문화유산연구원 조원문 유구 확인으로 복원 근거 마련 궁궐은 기본적으로 ‘삼문(三門)체계’*를 갖추는데, 경운궁(덕수궁)의 삼문체계는 ‘대안문(대한문)-조원문-중화문’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그 가운데 중문으로 건립된 조원문은 1902년 중화전을 중층으로 건립할 당시 궁궐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세워졌다. 1904년 덕수궁에 발생했던 큰 화재 당시에도 살아남았던 조원문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 궁궐 헐어버리는 과정에서 사라진 이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 발굴조사에서 기단석*과 모서리석 등이 드러남에 따라 『경운궁 중건배치도』 등 문헌과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조원문의 건축적 실체가 확인되었다. * 삼문(三門)체계: 궁궐의 정문·중문·전문을 차례로 배치해 궁궐의 위엄과 질서를 드러내는 ‘삼문삼조(三門三朝)’ 원칙을 구현한 구조 * 기단석: 돌로 건물의 기초가 되는 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