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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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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감경, 판사가 피고에게 술을 먹이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예전 재판에서 판사들이 많이 한 ‘주취감경’이 생각납니다. ‘주취감경(酒醉減輕)’이란 술에 너무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렀다고 형을 감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술 먹고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제가 형사재판장을 할 당시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발생하는 범죄 가운데 많은 범죄가 폭행입니다. 그런데 당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여 남을 폭행하는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고(3조 1항), 특히 야간에 이런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3조 2항). 그런데 술집에서 시비가 벌어지면 술병을 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대개의 술집 시비라는 것이 야간에 일어나는 것이니까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야 할 만큼 죄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평소 교도소라고는 가 본 적이 없는 소시민이 술집에 갔다가 이런 경우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자

공민왕, 남색에 빠지고 관음증 즐겼다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제 공민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공민왕은 망해가는 고려에 마지막 희망을 던지며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사랑하는 노국공주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심지어는 자제위를 설치하여 미남 청년들과 남색(男色)을 즐기기도 합니다. 《고려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민왕이 심화병이 나서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비를 강제로 능욕하게 했다. 비가 이를 거절하자 임금이 노하여 칼을 뽑아 치려고 하니 비가 겁을 먹고 복종했으며, 그 뒤에도 홍륜 등은 임금의 명령을 핑계 삼아 여러 번 왕래했는데, 비도 그것이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 드디어 임신했다.” 공민왕은 남색을 즐길 뿐만 아니라 관음증에도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자제위의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인 익비를 간음하게 하고 그걸 보면서 즐겼습니다. 당연히 왕비가 반항을 하니 칼을 뽑아 협박하고요. 으~음~~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 강간하는 것을 보면서 즐긴다? 제 정신으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세상에! 개혁군주가 타락하니 이렇게 변하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는 다른 한편으로 한 때 고려 부흥을 위해 개혁의 팔을 걷어 올렸

정도전, 왜구에 쫓겨 고향 영주를 떠나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避寇難吾土(피구난오토) 도적을 피하기 어려워 내 살던 땅을 떠나 攜家走異鄕(휴가주이향) 식구들을 이끌고 낯선 고장으로 옮겨가누나 荊榛行目蔽(형진행목폐) 가시넝쿨 앞길을 가로막고 눈앞을 가리니 桑梓耿難望(상재경난망) 상재(고향)는 눈에 선해 잊기 어렵네. 世險憐兒少(세험련아소) 세상이 이리 험난하니 어린아이들 가엽고 家貧仗友良(가빈장우량) 집마저 가난하니 어진 벗을 의지할 수밖에. 乾坤空自闊(건곤공자활) 천지는 부질없이 넓기만 하니 獨立興蒼茫(독립흥창망) 나 홀로 창망하게 섰노라. 정도전의 ‘도적을 피하다(避寇)’는 시입니다. 정도전은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3년이 지나 유배가 완화되어 고향에서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고향 영주로 와서 4년을 지내는데, 이 때 왜구가 쳐들어와 왜구에 쫓겨 고향을 떠나면서 쓴 시입니다. 아니? 내륙지방인 영주까지 왜구가 쳐들어오다니요! 당시 고려의 국방과 치안은 엉망이라 왜구가 영주까지 쳐들어와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 충청, 호남, 영남 지방 중 왜구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요. 당연히 해안 지방은 멀리 평안도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나?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까닭 가운데 하나는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입니다. 요동 정벌을 한다면 명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텐데,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을까요? 원나라가 명나라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 간 후, 요동은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도 새로 나라를 세워 안팎으로 나라 기틀을 잡는데 힘을 쏟느라고 아직 요동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기에는 힘이 딸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요동은 원래 우리의 선조 고구려와 발해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라서, 명나라로서는 고려나 뒤를 이은 조선이 이를 차지하려 할까봐 꽤나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이미 공민왕 때인 1370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온 일도 있으니까요. 우왕 14년(1388)에도 명나라는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위의 반환을 요구하여, 이에 반발한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무산되기도 하였지요. 이제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국경 분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명나라는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자꾸 시비를 겁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명나라에 조선 건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명 황제 주

“다스 만 (Das Man)” 되지 않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9] 언론매체에 휘둘리지 않는 슬기로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회관계망(SNS)이 발달하면서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 소식이라도 인터넷망을 타고 순식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그야말로 지구촌 가족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가짜뉴스도 그 진위 여부를 가릴 새 없이 퍼져나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이념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는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이 군사합의서 불복선언을 하였다는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져나갔지요?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중심을 잡고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언론이 가짜뉴스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26일에는 한 신문이 가짜뉴스 제공자에게 속아 1면 머릿기사로 ‘한미동맹 균열 심각... 靑의 실토’라는 기사를 실었다가 망신살 톡톡히 당했지요. 아니, 그냥 휘둘리는 것에서 나아가 어느 정파적 입장에 서서 교묘하게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10월 조선일보의 문화부 차장이 쓴 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고용 참사가 이어지고, 취업자 증가폭이 급격히 추락하며 개인의 삶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이

생김새도, 크기도 역할도 다른 다섯 손가락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예가, 철학자, 소설가, 건축가, 변호사 이렇게 5명이 모여 책을 냈습니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현재도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책을 내게 되었을까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지난 봄날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인사동 어느 한정식 집에 모인 5인이 그 동안의 삶을 풀어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신작가가 불쑥 말을 꺼냅니다. “우리 같이 책을 낼까요?”그렇게 우리의 책 내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10년 이래 유례가 없었다는 여름 불가마의 한 가운데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글은 곰삭을 대로 곰삭여지고,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는 가을의 들판을 지나와 드디어 지금 이렇게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내는 책 제목은 <다섯 손가락>, 부제는 ‘5인 5색 인문에세이 五人五色’입니다. 책 제목이 ‘다섯 손가락’이라고 하니, “왜 다섯 손가락이지?”라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5인을 대표하여 책머리의 글을 쓴 신아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섯 손가락은 생김새도 각각이고, 굵기와 길이도 다르고, 방향도 그 역할도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한 손바닥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부채표 활명수’와 민강 사장의 독립운동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12월 6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에서 ‘2018 대한민국 지식재산 대전’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화시킬 겸 들어가 보았지요. 저는 ‘대한민국 지식재산 대전’이라 하여 국내의 지식재산에 대한 전시회인 줄 알았더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참가하였더군요. 관람객 중에는 미래의 지식재산 강국을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이끌면서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도 있네요. 다양한 전시물 중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동화제약의 ‘부채표 활명수’입니다. 한국 사람치고 부채표 활명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소화가 안 되고 체하거나 과식했을 때 먹는 약’정도로만 알지 활명수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는 모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번 전시물을 통해서 활명수에 대해 이모저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활명수는 폐지된 선전관청의 선전관 출신인 민병호가 1897년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개발한 최초의 국산약으로 당시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급체와 토사곽란만으로도 목숨을 잃던 시대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약 이름도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고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