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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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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내려놓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람들에게 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지혜를 알려주는 언론인 배연국님은 자신의 책 《소소하지만 단단하게》에서 28개의 소확행을 4개의 상자에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내려놓기’에 담긴 소확행이 내 눈길을 끈다. 욕망으로 눈이 이글거리는 인간의 정글 속에 살다보니 우선 제목 ‘내려놓기’부터 내 마음을 잡는 것이다. 배연국님이 들려주는 사하라 사막의 잿빛모래쥐는 묘한 습관이 있다. 건기가 다가오면 잿빛모래쥐는 궁핍할 때를 대비하여 온종일 열심히 풀뿌리를 모은다. 잿빛모래쥐가 무사히 건기를 지내려면 2kg 정도의 풀뿌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잿빛모래쥐는 이렇게 필요한 양이 다 차도 계속하여 풀뿌리를 모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풀뿌리를 모으는 데에 열중할 때 누가 방해라도 놓으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불안해한단다. 이렇게 모으다 보니 심지어는 너무 많이 모은 풀뿌리가 썩어버릴 정도인데도 잿빛모래쥐의 풀뿌리 모으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식으로 잿빛모래쥐가 모은 풀뿌리의 양은 10kg이 넘게 된다.​ 이게 비단 잿빛모래쥐에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오늘날 인간사회에서도 잿빛모래쥐 같은 인간들을

신영복, 청구회의 추억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최영묵 박사와 김창남 교수가 같이 쓴 《신영복 평전》을 읽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중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을 받아 출소했으며,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2016년 7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신영복 평전》은 그야말로 신영복 선생님의 삶을 샅샅이 찾아내어 분석하고 쓴 평전이지요. 2019. 12. 16.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부터 사본다 사본다고 하던 것이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사실 그동안 신영복 선생의 책은 대부분 읽었고, 또 신영복 선생이 원장으로 있던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에서 개설한 CEO와 함께 하는 인문공부 11기 과정도 들으면서 직접 신영복 선생의 강의도 들었기에, 굳이 《신영복 평전》까지 읽어볼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의 삶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평전인데 한번은 읽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마침내 책을 찾은 것입니다. 역시 책을 사보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평전을

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꿈의 날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제 대학 30년 후배인 손상민 만화스토리작가가 《권기옥, 꿈의 날개》라는 만화책을 보내왔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 선생의 일생을 그린 만화책이지요. 스토리작가이니 만화그림은 협업한 홍혜림 작가가 그렸습니다. 이 책은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이 광복회를 지원하여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출판되었습니다. 책을 내면서 광복회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바쳤지만, 분단 이후 정쟁과 이념의 그늘 속에서 그들은 잊혔습니다. 당시 이천만 국민 가운데 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지만, 현재까지 국가보훈처에 서훈이 된 독립운동가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들을 찾아내고, 잊히고 지워진 선열들의 피땀이 서린 노력과 뜻을 찾아 새기는 일은 너나없이 나서서 이 땅에 다시 드러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하나씩 빛나는 자긍심이

<수덕사의 여승>과 일엽스님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노래 가사입니다. 노래를 작사한 김문응씨는 어느 여승을 생각하고 작사한 것일까요? 수덕사가 비구니 절이니 많은 여승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님으로 일엽스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상아의 음악편지》에는 일엽스님에 대한 글도 나옵니다. 일엽스님! 속세에서의 이름은 김원주! 그녀는 참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불가에 귀의한 것일까요? 그녀는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23살에 마흔을 넘긴 연희전문교수 이노익과 결혼합니다. 이노익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꽃과 같은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 김원주는 이혼하고 일본으로 유학 갑니다. 그런데 동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석한 한 청년 오다 세이조가 김원주에게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그러나 세이조는 일본 최고 명문가의 종손인지라 집에서 혼인을 허락해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지만 세이조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원주를 계속 만나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의 결실인 사내아

추억과 낭만의 노래에 빠져들었던 행복한 시간

[서평] 《김상아의 음악편지》, 김상아, 도서출판 얼레빗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매번 도서출판 <얼레빗>에서 책이 나올 때마다, 저에게 책을 보내주던 이윤옥 시인이 책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내 준 책은 그 동안 보내주던 책과는 다른 종류의 책이네요. 《김상아의 음악편지》 - 오랫동안 디스크쟈키를 하였던 김상아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올리고, 그 노래 앞부분에는 그 노래에 얽힌 자신의 추억이나, 그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느낌이나 단상을 썼습니다. 그리고 노래 뒷부분에는 그 노래나 그 노래의 작곡가, 가수에 관해 쓰고요. 하나하나의 노래가 저의 감성에 들어맞는 노래입니다. 작가가 저랑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 그렇겠네요. 저는 ‘김상아’라고 하여 여자분을 떠올렸으나, 사진을 보니 남자네요. 김상아 씨도 저처럼 <우리문화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http://www.koya-culture.com/)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김상아 ∙ 김민서의 음악편지⌟, ⌜시 마을 나들이⌟라는 꼭지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글도 <우리문화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네요. 저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라는 꼭지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

아는 만큼 보인다, 수원 화성을 걸으며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찾기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2000년 7월 전근 발령을 받고 수원지방법원으로 왔다. 그때까지 나에게 ‘수원’이라고 하면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딸기 먹으러 왔던 곳이고, 1982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4달 동안 검사 시보를 하던 곳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나에게 수원이란 단지 그 정도의 피상적인 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00. 7. 정말 오래간만에 수원으로 다시 오니, 수원은 예전에 내가 기억하던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우선 법원ㆍ검찰은 화성 성곽을 빠져 나와 원천동으로 옮겨와 있었다. 예전에 내가 검사 시보를 할 때, 이곳은 그냥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화성 성곽은 대부분 복원되어 있었고, 그것도 단순히 복원만 된 것이 아니라,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되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니?” 그 전까지 내 고정관념으로는 문화유산이란 오래된 유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딸기 먹으러 올 때만 하더라도 수원 화성은 여기 저기 성곽이 허물어 있었지 않은가? 내 기억에는 허물어져 있던 구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18세기 말에 축조한 성곽이, 그것도 현대에 와서 복원한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조작되었다

《서애연구》 2권을 읽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해 봄 창간호에 이어 지난해 10월 30일 《서애연구》 2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서애의 후손인 고교 친구 벽하가 2권을 보내왔습니다. 벽하 덕분에 서애 선생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됩니다. 2권의 첫글은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서애학회 회장인 송복 교수의 논문입니다. 이번 논문의 제목은 <류성용의 중용 리더십>입니다. 송교수님은 서애 일생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단연코 성(誠)이라고 하면서, 이를 박학지(博學之), 심문지(審問之),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辯之), 독행지(篤行之)로 풀이해나갑니다. 이 가운데서 ‘박학지’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박학지’란 널리 읽고 넓게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조선은 성리학 외에 다른 학문은 인정하지 않았고, 특히 주희의 학설만 오로지 숭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주희의 학설에 이설을 다는 선비는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맹비난을 면치 못하였고, 박세당은 이 때문에 유배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송 교수는 정상적인 학문을 하려면 성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도 널리 넓게 두루 섭렵해야 한다는 것이 <중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