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4 (토)

  • 구름많음동두천 27.6℃
  • 구름많음강릉 23.8℃
  • 구름많음서울 27.2℃
  • 흐림대전 24.3℃
  • 흐림대구 23.3℃
  • 흐림울산 20.4℃
  • 흐림광주 22.0℃
  • 흐림부산 20.9℃
  • 흐림고창 20.8℃
  • 흐림제주 20.3℃
  • 구름많음강화 23.8℃
  • 구름많음보은 24.7℃
  • 흐림금산 21.7℃
  • 흐림강진군 22.1℃
  • 흐림경주시 22.7℃
  • 흐림거제 21.8℃
기상청 제공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전체기사 보기


평창 절개산의 흥미로운 역사탐방 시작

평창 절개산을 찾아서 1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수원대를 정년퇴임 한 뒤 평창에서 전원생활을 즐기시고 있는 이상훈 교수님이 전화를 주신 것이다. 평창 마지리에 있는 절개산에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있으니 한 번 답사하러 오라는 것이다. 이교수님은 나와 같이 ‘얼레빗’ 회원이신데, 평소 내가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를 즐겨 보신다고 한다. 내가 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 있기에, 이교수님은 절개산의 숨은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되시자 나에게 전화를 주신 것이다. 2020. 5. 16. 아침 11시 35분에 배재흠, 김현기 두 분 교수님과 함께 평창역에서 내린다. 두 분도 같은 얼레빗 회원인 데다가 이 교수님과 함께 수원대를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기에 동행한 것이다. 사실 나야 얼레빗 회원이라는 인연밖에 없지만 세 분 교수님들은 같은 수원대에 봉직하였으니 더욱 유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분은 단지 수원대 동료 교수였다는 동류감을 뛰어넘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다. 세 분은 수원대를 올바른 학교로 이끌려고 교수협의회를 조직하여 재단 쪽과 싸우면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더욱 끈끈한

궁류시(宮柳詩)를 쓰고 죽은 석주 권필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祭罷原頭日已斜(제파원두일이사) 제사 마친 들판에 해는 이미 기울고 紙錢翻處有鳴鴉(지전번처유명아) 지전 태워 흩날리는 곳에 갈가마귀만 운다 山蹊寂寂人歸去(산혜적적인귀거) 적막한 산골짝에 사람들은 돌아가고 雨打棠梨一樹花(우타당리일수화) 팥배나무 꽃잎 위로 비는 치누나 석주 권필(1569~1612)의 ‘한식’이란 시입니다. 한식날 제사를 마치니 이미 해는 기울고, 지전 태워 흩날리니 갈가마귀들은 벌써 알고 제사음식에 침을 흘리는군요. 이제 사람들이 돌아가니 산골짝에는 적막만 감도는데 비는 왜 오는지... 비는 시인의 심정도 모르고 팥배나무 꽃잎을 두들기네요. 쓸쓸한 풍경이지요? 시인의 쓸쓸한 심정이 그대로 풍경에 젖어 든 것 같네요. 권필은 어디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 야인으로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이니 그 시대 속물 같은 양반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도 썼습니다. 이런 권필이기에 조선의 양반들을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부르주아로 보는 북한에서도 석주는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결국 이런 석주의 성격 때문에 석주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세종, “그대 말이 아름답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임금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꼽는 임금이 다르겠지만, 나는 세종대왕을 꼽고 싶다. 과학, 농업, 아악 등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이룬 임금이지만, 다른 것 다 아니더라도 한글 창제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종대왕을 꼽겠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언어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글이 없는 세상?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다. 세종대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런 임금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세종대왕에 대해 또 하나 존경할만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학문을 연구하고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을 중요시하였다. 그리하여 그전까지 형식적으로 열던 경연을 재위 기간 무려 1,898회나 열었다. 달로 따지면 매달 5회 정도 경연을 연 것이라고 한다. 당대에 신하들 가운데 인품이나 경륜, 학식 등에 있어 세종대왕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경연 석상에서 세종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신하의 말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 못마땅한 발언에 대해서도 이를 곧바로 공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죽음을 강요당한 여인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환향녀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끌려간 여자들도 많지만 끌려가기 전에 죽은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병자호란’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전쟁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들여다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서에 보면 ‘포개진 시신들 사이로 젖먹이들이 어미를 찾아 기어다니며 울고 있다’라는 처참한 표현도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는 많은 왕족들과 고위관료 가족들이 피난 가 있었습니다. 인종은 이렇게 피난시켜놓고 뒤따라 강화도로 들어가려다가 청군에 의해 길이 막히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었지요. 청군이 강화도에 들어왔을 때, 강화도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 성리학의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대부 여인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에 보면 유인립의 아내는 끝까지 버티다가 청군이 총을 난사해 몸의 살이 다 뜯겨나갔지만 꼿꼿하게 선 채 넘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호선의 아내는 토굴 안에 숨어 있다가 적병이 불을 질렀는데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타죽었답니다.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어머니 얘기도 나옵니다. 청군

허종ㆍ허침 형제 다리에서 낙마, 화를 면하다

종교교회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가다 보면 ‘종교교회’라고 있습니다. 종교교회는 캠벨 선교사가 1900년 부활절에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는데, 교인이 늘어나면서 1908년 지금 자리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역사 오랜 교회지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제 고교, 대학 선배가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처음 ‘종교교회’라는 이름을 접하였습니다. 처음에 종교교회라고 하니, 당연히 ‘종교(宗敎)’가 먼저 떠올랐겠지요? 그래서 “굳이 교회 이름에 ‘宗敎’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나?” 하며, 피식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宗敎’교회가 아니라 ‘琮橋’교회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종다리교회’가 될 텐데, 교회 이름에 다리 ‘橋’자가 들어가는 것도 여전히 특이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여기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청계천의 상류 부분인 백운동천과 백운동천에 합류하는 사직동천이 여기에 있어서 이를 건너가는 종침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거지요. 백운동천과 사직동천은 지금은 복개되어, 그곳을 지나다녀도 여기에 시내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교회가 들어설 무렵에

부당한 명령 거부, 295명을 살린 경찰

우린 너무 몰랐다 6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오스카 쉰들러(1908~1974)라고 아시지요? 쉰들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유대인 약 1,200명을 자신의 공장 노동자로 빼돌려 자기 재산을 소모해가며 끝까지 지켜낸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의인이 있어 한국판 쉰들러라고 불리지요. 도올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한국의 쉰들러는 바로 6. 25 당시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문형순 경감(1897~1966)입니다. 문 경감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직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입니다. 그는 광복 뒤 경찰에 투신하여 1947년 7월 제주도로 부임합니다. 그다음 해에 4.3 민중항쟁이 발생하였으니, 문 경감은 4.3 민중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입니다. 1948년 12월 말 무렵에 진압군인 제9연대는 여순진압 작전에 공적을 세운 제2연대와 맞교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9연대는 떠나기 전에 자기들도 제2연대의 여순진압에 필적할만한 공적을 세우기 위해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심도 버립니다. 곧 이들은 가

여순 민중항쟁 때 검사 빨갱이로 몰려 총살

우린 너무 몰랐다 4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보면 여순 민중항쟁 때 죽은 박찬길 검사 얘기도 나옵니다. 검사가 죽었다고 하니까 반군에 의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것입니다. ‘으잉? 경찰이 죽였다고? 그럼 빨갱이 검사였겠구먼.’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박 검사는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검찰의 위력을 생각하면 검사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 않지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여순항쟁 무렵 박 검사는 순천지청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어떤 시대입니까? 없던 빨갱이도 만들어내던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박 검사는 경찰이 송치해오는 사건 가운데 증거가 부족한 사건은 과감하게 무혐의 처분을 하고, 경미한 사건은 기소유예합니다. 이렇게 박 검사의 무혐의 결정과 기소유예가 늘어가니까 경찰의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불만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겼습니다. 박 검사가 어느 경찰관을 기소한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느 경찰관이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이 경찰관을 보더니만 갑자기 도망가더랍니다. 의심이 든 경찰관은

미국과 이승만이 구원해준 친일파들

우린 너무 몰랐다 3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분단이 되고, 아직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는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3.8선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미국은 일본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별로 생각이 없던 소련을 끌어들였습니다. 당시 소련은 서부전선의 병력을 빼서 동쪽으로 돌릴 만큼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소련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관동군과 대결을 벌이는 것을 주저하였습니다. 아마 러일전쟁 때 만만하게 보던 일본에 참패한 쓰라린 기억이 있어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일본이 원자탄 한 방으로 비틀거리자, 소련은 미국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갈까 봐 부랴부랴 만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정세 판단을 잘하여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분단의 비극도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우리의 역사나 문화, 우리민족의 염원에 대해서는 무지하였습니다. 그러니 한반도에 진주한 하지 중장은 약소국의 서러움을 씻어준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패전국의 한 영토에 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