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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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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슬픈 제주

[맛있는 서평] ‘리사 시(Lisa See)’의 《The Island of Sea Women》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잠시 국내에 들어와 있던 동생이 출국하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며 나에게 영문소설을 하나 주고 갔다. 리사 시(Lisa See)라는 미국 여류작가가 올 3월에 펴낸 《The Island of Sea Women》라는 소설이다. 동생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영어 원어로 된 소설을 읽어본다. 처음에는 의무감에 읽기 시작하였으나, 곧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소설은 영숙과 그녀의 친자매 같았던 친구 미자라는 해녀를 중심으로 1938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의 삶을 그린 것인데, 소설을 통하여 제주 해녀들의 삶과 애환, 슬픔 등이 피부에 와 닿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제주의 풍토, 민속 신앙, 역사 등 제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여 나는 작가가 당연히 한국계 미국인일거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백인 여자다! 비록 증조부의 중국인 피가 조금 섞여있긴 하지만, 외모는 완전 백인 여자다. 어떻게 백인 여자가 제주를 우리보다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리사는 어느 잡지에 실린 제주 해녀의 사진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언젠가 제주 해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

한 일본 화가의 ‘신라인과 대화’

[맛있는 서평] 《신라인과 대화》, 히라노 교코, 사람in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온라인 중고서점(www.bookoa.com)에서 《신라인과 대화》라는 책을 주문하여 읽었습니다. 나는 ‘신라인과의 대화’라고 하기에, 신라의 역사나 문화 예술에 관한 책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주문했던 것인데, 배달되어온 책을 받아드니 지은이는 히라노 교코(平野杏子)라는 일본 여자 화가입니다. 이를 정희정씨가 번역하여 2000년에 출판하였네요. 책 표지에는 ‘화폭에 담은 경주 남산 마애불’이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고, 경주 남산의 마애불도 그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일본 여자 화가가 경주 남산의 마애불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교코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현모양처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정대로 진학합니다. 1930년생인 교코가 대학 들어갈 때인 1950년대에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여자는 대학을 보내더라도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대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코는 미술에의 꿈을 버릴 수 없어 대학 입학 후 미술 동아리에 가입했고, 졸업 후에도 회화연구소 조수로 일하며 끝내는 일본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하여 화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아이들이 서너 살쯤 되었을

조선시대 14살 소녀의 온 나라 유람기와 소설

[맛있는 서평]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만약 당신의 14살 딸이 혼자서 몇 달 동안 전국을 유람하며 다닌다고 한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뭐라고요? 학교 빠지고 유람하는 것을 누가 허락하겠냐고요? 아! 그렇지요. 학생이 몇 달 동안 학교 땡땡이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할 부모는 없겠군요. 그럼 방학 기간이라면 허락하겠습니까? 이 역시 허락하겠다고 선뜻 손을 들 부모는 많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여러 여건상 남자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조선 시대에 이렇게 혼자서 전국을 유람하며 다닌 14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물론 남녀유별이 엄격하던 시대라 남장을 하고 다녔지만요. 그 소녀는 바로 원주 출신의 금원 김씨(1817 ~ ?)입니다. 금원은 진사 시험에만 통과했을 뿐 계속 과거에서 미역국을 먹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집에 들어앉힌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금원은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면서 넓은 세상에 눈을 뜹니다. 그런 금원에게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조선 여인의 운명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금원은 14살이 되어 이제 자신도 곧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를 따라가야 하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오자, 그 운명에 묶이기 전에 집을 박차고 떠납니

일제강점기 개발, 신기루처럼 사라져

[서평] 《개발 없는 개발》, 허수열, 은행나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반일 종족주의》를 읽으면서 그저 감정적으로만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처럼 자료에 입각하여 엄밀한 학문적 논증을 거쳐 이를 비판하는 책은 없을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쓴 《개발 없는 개발》이 보이더군요. 당장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허 교수는 오랫동안 일제 강점기 한국사는 침략, 수탈, 저항 등의 키워드로 뒤덮여왔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관에 대한 맞바람은 외국에서 왔습니다. 피티(Mark R. Peattie)가 ‘개발과 수탈’이라는 개념을 제기하면서 ‘개발’이라는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때만 하여도 개발의 측면을 부각시키지만 여전히 ‘수탈’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데, 점점 더 ‘개발’에 비중을 드는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바로 이런 학자에 속하는 것이지요. 허 교수는 일제 강점기 각종 경제통계를 훑어보면, 개발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 지배가 일본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조선 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것이었다는 점도 명백하다고 합니다. 한편 개발론자들은 식민지 조선을

중한 환경사범, 모조리 실형 선고하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보통 법원에는 재판부마다 그 재판부가 전담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전담한다고 하여 그런 사건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이를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199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단독 재판장을 할 때 저는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았습니다. 당시 저는 환경사범은 엄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하여 제가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고 나서 그 전에 선고된 판결들을 보니 실형 선고한 판결이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내가 맡은 이상 엄단하는 쪽으로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고 나서 얼마 후, 검찰에서 환경사범을 일제단속 하여, 죄질이 중한 쪽은 구속기소하고, 가벼운 쪽은 약식기소, 그 중간 사건은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사람이 구속되면 다급하니 변호사를 찾을 것 아닙니까? 사건을 상담한 변호사들은 종전에 실형 선고한 예가 별로 없고, 판결 선고 전에 보석으로 풀려난 예도 많아 석방시켜주겠다며 자신 있게 사건을 맡았겠지요. 그런데 저는 보석 신청 들어온 것을 모조리 기각했습니다. 선임된 변호사들은 아마 보석은 안 되었지만 집행유예는 틀림없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모든

귀가 큰 판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어떤 판사가 재판 잘 하는 판사일까요? 명쾌한 법논리를 통해 쾌도난마식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판결하는 판사? 속전속결로 신속하게 재판하는 판사? 상급심에서 판결이 파기되지 않도록 요령있게 판결하는 판사? 물론 다 재판 잘 하는 판사에 들어가겠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 하나를 꼽으라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판사가 재판 잘 하는 판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일반국민들이 송사로 법정에 서는 일은 일생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사자들은 재판 결과도 중요하지만 법정에서 자기 얘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어하고, 또 판사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판사는 하루에 재판 한, 두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건을 들고 법정에 들어오기에 당사자들의 장황한 얘기를 다 들어주다간 다른 사건 재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개 당사자들의 얘기는 처음 얼마간 들으면 무슨 얘기하는지 다 파악할 수 있기에 조리 없이 중언부언하는 당사자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판사들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당사자의 얘기를 중간에 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나는 한때 ‘따봉판사’로 불렸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따봉’이란 포르투칼어 단어가 있습니다. ‘정말 좋다’는 뜻일 텐데,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많이 아는 포루투칼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따봉’이란 단어가 우리나라에 유행하게 된 것이 1989년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 주스 광고 때문이지요. 당시 광고 화면에 브라질 오렌지 농장이 나오는데, 농장에서 오렌지 품질을 검사하던 남자가 ‘엄지 척’ 하면서 ‘따봉’이라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따봉’이 대유행하면서 사람들도 가게에서 ‘따봉주스’를 많이 찾았답니다. 그런데 정작 따봉주스가 없어 롯데칠성음료로서는 기껏 광고를 히트 치고도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뒤늦게 ‘따봉주스’로 상표 등록을 하려고 했으나, ‘따봉’은 상품의 성질을 직접적으로 표시하는 단어라고 하여 상표 등록이 거절되었다고 하고요. 이렇게 시중에 ‘따봉’이란 말이 유행할 때에 저도 한 때 ‘따봉판사’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따봉판사’로 불렸다면, 뭔가 제가 재판을 잘 했거나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그 사연을 말씀드리지요. 제가 부산지방법원에서 민사단독판사를 할 때입니다. 새로 민사단독재판장을 맡으면

두 끼를 굶어 집행유예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주취감경 얘기하다보니 꼭 감경해주어야겠는데 술도 먹일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던 사건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할 때인데,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올라온 사건입니다. 강도가 상해까지 입혔는데 무슨 봐줄 것이 있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명만 강도상해로 거창하지 실제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사건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잃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데 하는 것마다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 학비며 병원비며 나가야 할 돈은 많습니다. 그래서 방문판매를 시작합니다. 사건 당일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해보나 별 성과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 00원의 돈이 필요한데……. 한숨을 푹푹 쉬며 어느 아파트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준 안주인에게 상품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앞이 캄캄해오는 피고인의 눈에 피해자의 손가방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피고인은 순간적으로 가방으로 손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지하려는 피해자를 뿌리치다가 피해자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혔고요. 도둑이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