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 “연변ㆍ5찰떡”은 자칫 연변의 교육열과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시편이지만 보다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시편이다. 이 시에서 “머리 허연 어른”이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작시 “연변”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역마살이 낀 것처럼 떠돌아다니지만 말고 찰떡같이 진득이 붙어서 천년만년 살아보자는. 또한 민초들의 원초적인 생의 욕구에 대한 긍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는. 다른 한편 “아무데나”, “아무데라도” 붙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활태도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도 읽힌다. 시대와 인간의 아픔을 남 먼저 아파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고 사랑의 방식이며 영원한 숙제라면 연작시 “연변”은 시인이 고향 연변에 바치는 또 하나의 사랑이며 완성된 숙제이다. 새로운 충전을 목적으로 한 시인의 “한국나들이”는 연변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며 이 작품도 그러한 결과물의 하나다. 시의 묘미는 여운에 있다. 좋은 시란 말은 끝났어도 여운이 남아있는 시다. 그렇다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을 제한된 언어로써 번역해내는 시평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장백산》, 1987년 제4호 < 해설 > "바람이 분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문풍지를 바른 집"이라는 공간은 인위적인 "막힘"의 공간으로서 "안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폐쇄"와 "보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고금중외"로부터 불어오는 "락타"같이 거센 바람이 "집"에 사정없이 불어칠 때 처음의 부적응에서 오는 맹목적인 저항과 거부에서 초래한 "숨막힘", 그리고 주동적으로 바늘로 "문창"구멍을 뚫어 호흡을 하던 데로부터 나중에는 벽까지 없애치울 의향을 가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막힘" 공간에서 "트인" 공간에로의 진출의 지향을 말해준다.(광천 <공간의 미학>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일보≫, 1997년 11월 8일 - 해 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그 자체가 창조적인 복잡하고 간고한 작업으로서 테두리를 벗어났을 때만이 시의 가능성이 이룩된다. 석화시인은 ‘곡선의 이미지’에서 이 테두리를 벗어났음이 확연하다. 제목은 곡선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왔지만 해돋이 전야의 산과 강(1연에서)은 해돋이 황홀경을 펼쳤고(3연에서) 쏟아지는 해살 속에 클로즈업된 우리 민족의 여성을 눈부시게 세워놓는다. 곡선과 산, 강, 언덕, 하늘, 무지개, 해, 여인은 의미론적으로 말할 때는 이질성을 띤 사물이지만 관조적으로 말할 때는 동질성이 있는 것이다. 그 동질성이 바로 곡선이다. 이질적인 사물의 공통점을 유추해내여 시작을 진행하는 것은 테두리사유를 벗어나는 하나의 비결이 아닐까? 석화시인은 곡선을 기하학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찾았고 자연에 서있는 “옥색 한복차림의 / 저 여인”한테서 찾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의 목적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보다 우리 민족 여성이 더 아름다운 극치를 이룬다는 것을 꾀함으로서 인간애—사랑의 목적에 도달해보려는 시인의 착상이다. 석화시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작품 해설 시인은 작품에서 ‘누나’를 향하여 무슨 말인가 연신 ‘발신(発信)’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방적인 ‘발신’이다. ‘누나’라고 불리는 ‘대상’에서부터 한번도 ‘답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다만 ‘수신’할 뿐 한 차례도 ‘발신’하지 않는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수신’만 한 것이다. ‘내’가 겨울과수원의 한가운데서 ‘누나’에게 말을 건넨다기보다 ‘누나’에게 일방적인 ‘통신’을 하고 있었으며 ‘누나’는 한 마디 말도 없었으며 마지막까지 듣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응답이 없는 ‘통신’이였다. 하늘을 향하여 ‘통신’을 발송하였지만 무수한 전파는 공중에 분해되고 흩어져버렸을 뿐이다. 거기에는 ‘누나’가 없었다. ‘겨울과수원’의 한 가운데에도 그 밖의 어디에도 ‘누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누나’를 향하여 ‘통신’을 진행하고 있다. “누나, 지금 꽃은 피어있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석화시인의 작품에서 보이는 ‘누나’의 이미지는 이와 같이 은근하게 표현되지만 ‘남자’의 상대로서의 ‘여자’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나’이며 ‘어머니’와 같고 대자연속의 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 1997년 5월 작품 해설 예술이란 그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쉽게 서정이라 불리는 자칫 무력한 시풍에서 벗어나 사물을 기호화하고 끊임없이 뻗어 가는 정신세계를 시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귀한 것이다. 산문형태로 씌여진 위의 시는 시인의 언어적 탐구가 외적 세계에 대한 응전의 방식과 연관지어보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나 시적 성취 면에서 떨어지지 않음을 위의 시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적인 시적 세련됨은 물론이요, 시인의 사물을 바라보는 엄정한 내부의 시선이 항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임헌영(한국 문학평론가) <중국조선족 시인 석화의 작품세계>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이 작품은 1988년에 발표한 시로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시인의 사고를 담고 있다. 초기 창작과정에서 “나는 구경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초보적으로 해결한 시인은 한시기 인생이란 구경 무엇인가? 인간이란 구경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에 노력하였다. 이에 앞서 1986년에 발표한 시 <가랑잎 하나>에서 시인은 이 문제에 대한 탐구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는바 거친 물결을 돛도 없고 노도 없는 운명의 쪽배와 같은 가랑잎에 기탁하여 인생도 가는 길이 어딘지 앞날에 굽이돌이와 소용돌이를 얼마나 만나겠는지 알 수 없는 신비와 우연과 의문으로 충일된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은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슷한 접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우리는 스스로 돌이나 나사못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생명의 불안에 떨고 있거나 인간의 운명에 복종하는 졸장부가 아니며 용인(범인)이 아니다. 그는 감히 운명에 도전하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내고 진리를 견지하는 용기가 있고 지혜가 있고 아집이 있는 새 시기의 문인이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150행에 달하는 이 시에서 시적 주인공으로 나타난 김삿갓은 조선시대 방랑시인이다. 이제는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을 옛 방랑시인을 되살려 현대생활의 절주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디스코를 추게 한 시인의 가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중복하는 것과는 더 넓은 뜻에서 상징과 내부함의를 묘파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설성은 결코 현실에 대한 이탈이 아니다. 다만 과장, 변형, 추상, 황당 및 상징적인 일련의 수법과 표현형식을 통해 현실의 내재적 본질을 굴곡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현실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민족의 상징인 김삿갓이 서방문화의 산물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동서방문화의 교류, 차용, 결합을 그리려고 한 시인의 지구의식의 표현이며 역사인물인 김삿갓이 현대문명의 표현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과 발전을 보여주려고 한 시인의 역사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시인 주체의 지구의식과 역사의식은 김삿갓이 디스코를 추는, 일련의 신들린 춤을 통하여 생명의지의 승화와 역사를 초월하려는 극복의지의 승화를 통해 실감 있게 엮어지고 있다. 생명의지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객관세계를 변형시키는 힘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방천의 사전적 의미는 둑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냇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한다. 그 둑을 방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각주를 달아 “두만강이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지역. 중, 조, 러 3국 국경이 인접해 있다. 중국 쪽으로는 해변에 닿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어 사전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천’은 훈춘 지역의 한 지명으로, 3국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한 마을의 이름이다. 국경 초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유람객들이 찾고 있다. 우리에게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두만강은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0킬로메터의 긴 강이다. 두만강은 수세기 동안 한국ㆍ중국ㆍ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인 동시에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두만강은 또한 중국ㆍ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국경하천으로서 수많은 우리 선조가 이 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기에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이 강의 의미를 시인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방천에 와서 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