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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김포지역 만세운동의 유일한 여성 서훈자 이살눔 지사

[신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님은 1919년 통진교회 전도사로 월곶지역 3.1만세 사건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민족해방을 몸으로 실천한 님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만듭니다. 20038.15 광복절 푸른언덕모임

 

이는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푸른언덕교회 입구에 있는 이살눔(이살눔은 국가보훈처의 서훈 이름이고 다른 이름은  이경덕이다, 1886. 8. 7 ~ 1948. 8.13)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기념비에 적힌 글이다. 이살눔 지사를 기리는 기념비를 보기 위해 기자는 어제(13) 고막리 푸른언덕교회를 찾아갔다.

     

작은 규모의 시골 교회당은 신자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마당에 차를 세우고 나니 조화자 전도사 (59)가 찾아온 용건을 묻는다. 이살눔 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니까 반가운 얼굴로 차 한 잔을 내오며 거의 찾지 않는 추모비를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느냐며 반긴다.


 

이 교회는 이살눔 지사님의 며느리인 강동재 여사께서 다니시던 교회입니다만 5년 전 80살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그 집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살눔 지사님은 이곳 월곶의 3·1만세운동의 주동자이셨습니다. 그러한 활동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되자 누산교회 박흥규 목사님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여자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사실 만이라도 기념비를 세워 기려야한다고 해서 세운게 이 기념비입니다.”

 

 


조화자 전도사는 이살눔 지사에 대해 박흥규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흥규 목사님도 돌아가셨다면서 김포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한 두툼한 책 한 권을 내놓는다. 김포항일독립운동사(김포문화원, 2005) 책에는 이살눔 지사를 포함한 김포 월곶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의 기록이 낱낱이 적혀있다.

 

1919년은 이살눔 지사가 33살이 되던 해였다. 결코 여자 나이로 적은 나이가 아닌 이 무렵 이살눔 지사는 성서학교(聖書學校) 재학생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이살눔 지사는 거국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3, 김포에도 만세운동의 물결이 밀어닥칠 것을 예견했다. 322일 오후 2시 이 날은 통진 장날이었다. 이살눔 지사는 군하리 출신 박용희·성태영·백일환 등과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으로 유도했다.

 

이에 앞서 임용우·윤영규·조남윤·최우석·이병린 등의 주도로 장터에 있던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은 만세시위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만세운동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이살눔 지사 일행은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지를 돌며 이곳에 있던 일본인들에게 항의했고 일부 한국인 순사보들에게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김포의 만세운동은 329일에 또 다시 일어났다. 조남윤은 당인표 등과 함께 “29일 오전 11시에 전 통진 읍내에 집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라는 취지의 문서 7통을 작성한 다음 이를 면내 각 동리 주민에게 배포하였다. 이날 오전 11시쯤 마을주민 400여 명이 읍내에 모이자, 이들을 지휘하여 향교와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앞서 28일 밤 정인교·윤종근·민창식은 마을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마을 인근 함반산(含飯山) 꼭대기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월곶면의 임용우·최복석은 29일 정오 무렵 갈산리에 모였다가 군하리 공자묘와 공립보통학교, 면사무소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만세운동은 4월에도 이어져 덕적도의 명덕학교 교사였던 임용우는 49일 학교 운동회에서 이재관·차경창 등과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는 등 김포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의 전국적인 만세운동 이후에도 지속되었다김포지역 만세운동에서 여성으로 서훈을 받은 이는 이살눔 지사가 유일하다. 푸른연덕교회 조화자 전도사는 이살눔 지사가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주동자로 참여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살눔 지사는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 운동에 앞장서다 왜경에 잡혀 그해 7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91027일 중병으로 가석방되었다.


 

당시에는 옥중 고문이 심했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는데 일제는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옥중 사망을 피하려고 가석방을 시켰다. 수원의 이선경 애국지사(1902~1921)의 경우도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문으로 가석방 되자마자 순국의 길을 걸은 예에서 알 수 있다.

 

다행히 이살눔 지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출옥 된 이후 몸을 추슬러 고향 김포로 다시 내려 갈 수 있었다. 군하리로 돌아온 이살눔 지사는 교회를 개척하여 여전도사로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 친 혈육은 없고 양자를 들였는데 양아들 유 씨와 며느리마저 몇 해 전 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살눔 지사는 1948813일에 62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어수선한 해방 공간에서 무덤을 미처 챙기지 못해 기념비만 남은 상태다. 정부에서는 뒤늦게 고인의 공훈을 기려 숨진 지 44년 만인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포시에서는 이살눔 지사를 비롯한 수많은 김포지역의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201331김포시 독립기념관을 개관하여 항일의병, 3·1운동, 독립운동, 의열투쟁, 만주, 노령지역에서 활동한 김포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 가운데 단 한 명의 여성독립운동가가 이살눔 애국지사다. 

 

*이살눔 지사 기념비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로 37번길 30 푸른언덕교회 입구

*김포시독립기념관 :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30번길 46 (양곡택지개발지구제4근린공원 내) 전화 031) 996-62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