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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국가도 외면한 전국 유일의 장흥 안중근 사당

순흥안 씨인 안중근 사당, 죽산 안씨가 60년간 지켜오다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孤幕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모신 국내 단 한 곳의 사당인 해동사(海東祠)안에는 안 의사의 심지 곧은 마음이 드러난 유품 몇 점 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국내 유일의 안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전라남도 장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6(), 서울에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간 기자는 안 의사의 유적지를 쫓아 거사 현장인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과 그곳에 들어선 안중근의사 기념관 그리고 거사 뒤 처음으로 잡혀갔던 일본영사관 건물과 자신이 죽으면 뼈를 묻어 달라던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청초당" 이란 돌비석을 세운 자리까지 찾아다녔지만 국내에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끄러웠다.


 


출발에 앞서 길찾개(네비게이션)에서 해동사(海東祠)를 찾으니 뜨질 않았다. 간신히 알아낸 정보를 통해 죽산 안씨 사당인 만수사 (萬壽祠,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에 안 의사를 모신 해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극비스런(?) 정보를 준 사람은 장흥의 향토사학자 안명규 씨였다.

 

안중근 의사 사당을 찾아가기 전에 기자는 장흥군 누리집 (http://travel.jangheung.go.kr/)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러나 안 의사 사당은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장흥에 오면 꼭 둘러 보라는 곳만 소개되어 있었는데, 추천 장소는 토요시장, 천문과학관, 치유의 숲, 물 과학관, 편백숲 우드랜드, 목공예 센터, 청소년수련원, 유치자연휴양림, 해양낚시공원, 모범음식점, 심청공원오토캠핑장, 하늘빛수목원 등뿐이었다.

 

혹시 안중근 의사를 모신 곳이 관광시설이 아니라 유물, 유적지인가 싶어 더 찾아본 결과 사찰, 서원, 정자란에서 만수사(萬壽祠)를 찾았지만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라는 말은 적혀있지 않았다.

 

해동사는 죽산 안씨 가문에서 안중근 의사를 모셔온 사당입니다. 올해로 60년째 안 의사를 위한 제사를 모셔오고 있지요. 안중근 의사는 순흥 안씨지만 해방 이후 국내에서 안 의사의 제사를 모실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죽산 안씨 가문에서 당신들의 사당 곁에 해동사를 지어 정성껏 해마다 제례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이는 해동사를 안내해준 안명규 씨의 말이다. 그는 말한다. “안 의사 사당인 해동사 창건일이 1957312일입니다. 1957년이라면 1945년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에 6.25 한국 전쟁까지 터지는 등 국가가 독립운동가를 미처 챙길 여력이 없던 때라고 봅니다. 그러한 때에 안 씨 문중에서는 십시일반으로 안 의사 사당을 짓고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정성껏 제사를 모셔온 것이지요.해동사에 대한 유래를 듣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일제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조선이 자주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했던 불굴의 투사 안중근 의사는 1910326, 32살의 꽃다운 나이에 뤼순 감옥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순국 뒤에 조선은 경술국치를 맞아 제대로 된 제사밥 한 번 올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35년간 피 끓는 독립의 함성으로 광복을 맞이했지만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조국은 반토막으로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죽산 안 씨 문중에서는 지극 정성 안 의사의 제향을 거르지 않았다.

 

한편 서울에서는 안 의사의 독립정신을 잇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의 염원이 결실을 맺어 19701026, 서울 남산 자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세웠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하고 열악하다하여 201010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여 구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철거하고 기존의 기념관이 있던 자리에 높이 3층의 유비쿼터스식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야 아무리 크게 확장해도 그의 업적에 견주면 작을 수밖에 없다. 안 의사는 한국 독립정신의 표상이요, 희망이며, 영웅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기념관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안 의사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온 사당 해동사라고 할 수 있다. 어찌 안 의사 사당을 기념관에 견줄 수 있을 손가!


 



한 개인이 죽어도 제사를 모시는 법인데, 대한민국에 독립 영웅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 없어 멀고먼 장흥의 죽산 안 씨 문중에서 60년간 묵묵히 제례를 모시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맙기만 하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간 많은 이들이 장흥을 찾았을 텐데 밑도 끝도 없이 도로 팻말이나 사당입구에 해동사라고만 되어 있어 무슨 절인가? 싶을 정도니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기자가 찾은 해동사로 오르는 길은 겨우 승용차 한 대 밖에 지나갈 수 없어 차 한 대라도 만나는 날에는 낭패다. 대형 버스로 참배객을 태우고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이야기다. 안 의사 사당 건물은 그나마도 해마다 죽산 안씨 가문에서 공을 들여 초라함은 면했지만 사당 안의 관리는 부실한 편이었다. 부실하다고 한 것은 사당 안의 족자화한 유품 액자가 제대로 걸려있지 않고 그냥 대충 놓은 것 등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보다는 서울의 근사한 기념관에 견주면 너무 초라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곳이 국내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던 시절인 1957년부터 안 의사를 추모해온 공간인 만큼 안 의사 사당답게 성역화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길은 없나 싶어 해당 관청인 장흥군청 이승주 문화관광과장에게 29(화요일) 전화 질문을 했다. 그 결과 해동사는 그렇지 않아도 현재 계발계획에 대한 연구용역 중이며, 국비지원 등으로 내년(2018)에 예산 70억 원을 투입하여 재정비할 예정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사적지 지정 등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라는 답을 들었다.

 

해동사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안중근 의사의 국내 단 한 곳의 사당인 만큼 그 격에 맞는 정비를 기대함과 동시에 사당의 구실과 함께 이곳을 참배할 때 안 의사의 독립정신을 돌아 볼 수 있는 너무 크지 않은 조촐한 기념관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해동사라는 이름으로만 두지 말고 성역화 전이라도 이곳이 안 의사 사당이라는 것을 꼭 표시 해주었으면 한다.




참고로 해동사 편액은 해동명월(海東明月)이라는 글씨가 걸려있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라고 한다. 친일파 청산을 포기한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운동가 중의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사당의 편액 글씨를 썼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안 의사 사당을 찾은 날은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 탓에 늦여름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초가을이라 해야 좋을 만큼 날씨가 청명했는데 해동사가 들어선 용두산 기슭은 마치 명당처럼 아늑하면서도 앞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안온한 곳에 자리하여 한 없이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동사를 나오며 아무도 돌보지 않던 겨레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제향(祭享)을 말없이 60년간이나 지내온 죽산 안씨 문중에게 왠지 모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해동사 안내를 맡아 지난 60년 동안의 발자취를 소상하게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해동사 성역화의 필요성을 꼼꼼하게 짚어준 향토사학자 안명규 선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안중근 의사를 60년간 모셔온 사당 해동사 안내

 *주소 :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길찾개(네비게이션)는  주소를 치거나 장흥 만수사를 치면 해동사로 갈 수 있다. 해동사는 죽산 안씨 사당인 만수사 옆에 있다. 현재 해동사에 가면 사당 앞에 안내판이 하나 달랑 있을뿐 해동사를 누가 관리하는지, 궁금한 것은 어디다 물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안내가 없다. 장흥군이 내년에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때늦은 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60년이나 제사를 지내오는 동안 아직도 절(?) 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도로 표지판도 그러하고 해동사로 오르는 마을 안길도 좁고 누추하기 때문이다.  문중의 노력에만 의지해온 60년의 세월이 현재의 해동사를 말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