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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삶으로 쓴 독립정신, 운암 김성숙 선생님께 -최범준-

[100년 편지 282 ]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서 오십시오. 중국의 미래 광저우에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광저우에 도착한 김산을 이렇게 맞으셨지요. 저는 김산 평전을 통해 선생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저 말은 평전을 써내려간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진 말이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을 접할 때마다 저는 저 한마디가 함께 떠오릅니다.


무더웠던 올 여름, 저는 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독립정신 답사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답사장소 가운데 하나였던 베이징에서는 선생님이 수학하셨던 민국대학 터 극군근왕부를 방문했습니다. 비록 다른 답사지역에 견주어 짧은 시간 방문했지만, 저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답사를 위한 사전 공부에서 조선노동공제회라는 사회운동 단체를 알게 되었고, 선생님께서 이 운동에 참여하였던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강한 인상을 남긴 저 말 때문일까요? 선생님이 남긴 흔적과 조우할 때마다 따뜻이 맞아주는 푸근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세 번의 우연은 운명내지 필연이라고, 어느새 저는 선생님의 이력을 다시금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님을 흘려보내지 아니하고, 일대기를 가슴속에 품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승려출신 독립운동가로 유명하시지요, 또한 중국 안에서는 의열단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셨고,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직과 임시정부 입각을 통해 독립운동세력의 단결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오직 조국 독립만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셨던 운암 선생님. 하지만 임시정부 요인으로 환국하신 후, 선생님의 국내 활동들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복잡했던 당시의 국내정세에 가로막혀 선생님의 뜻을 펼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독립정신 답사 기간 중 조선의용대원들의 처절했던 생활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의용대원과 함께했던 현지 할머니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독립정신은 일제와 맞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열악한 현실과 조우하면서도 품은 뜻을 저버리지 않는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요? 비록 선생님의 말년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하나, 품은 뜻을 위해 힘쓰신 선생님의 정신은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제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이 더 주목받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들의 결단이 독립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립과 더 좋은 조국을 위해 매일 매일을 힘써온 세월의 무게가 주는 울림 역시 경이롭습니다.

 

선생님 사후 13년 뒤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추서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기까지 35년이 걸렸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늦게나마 선생님의 업적과 공이 인정받았습니다. 지금도 한국사회는 꾸준히 선생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알리기 위한 선양사업이 이루어지고, 추모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힘든 환경을 이겨내며 품었던 독립정신이 더 널리 알려져 저희 세대에 더 많은 교훈과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독립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앞으로도 오롯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 범 준

 

11, 13기 독립정신 답사단

국민대 광보홍보학과 재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