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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조선시대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 40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69]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마 전 제천과 밀양에 큰 불이나 많은 사람이 죽는 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종 때에도 한성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실록8(1426) 215일 기록에 보면 한성부에 큰 불이나 행랑 16간과 중부 인가 1630호와 남부 350호와 동부 190호가 불에 탔고, 남자 9, 여자가 23명이 죽었는데,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 일 이후 세종임금은 명을 내려 소방관청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집 사이에 방화장(防火墻, 불을 막는 담)을 쌓고, 곳곳에 우물을 팠으며,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고쳤지요. 이 금화도감은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 되었다가 성종 12년에는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에는 멸화군(滅火軍)’이란 상근 소방대원이 있었는데 불을 없애는 군사라는 말이 참 재미납니다. 정원은 50명이었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불이 나면 곧바로 출동해서 불을 끄는 소방관입니다.


 

조선에서 불을 지르는 방화(放火)는 대부분 사형으로 다스렸고 대사령(大赦令) 때도 사면되지 않는 상사소불원(常赦所不原)’에 해당하였습니다. 잘못해서 불을 냈을 때도 엄벌했는데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 40, 남의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를 50대 맞았습니다. 종묘(宗廟)와 궁궐을 태운 자는 실수라도 목을 매 죽였지요. 불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는 장 100대의 형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