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자 연합뉴스는 “광화문 월대에서 시작된 BTS 컴백, 복원된 역사가 세계를 만나다”란 기사를 올렸습니다. 다시 돌아온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경복궁 근정문에서 흥례문, 광화문을 지나 월대 앞 광화문광장 무대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따라가며 시작됐지요. 복원된 월대 앞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의 귀환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귀환 공연이 열린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 현판이 한자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 달려있는 광화문 한자 현판은 세종 때의 원형도 아니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세종 때 ’원형‘을 모른 채 썼는데 그것도 훈련대장이 직접 썼던 것이 아닌 복제품이어서 그 현판을 붙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문화유산으로의 복원은 아닌 것입니다.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글자 ’한글‘이 있음을 아는 것은 물론 많은 이가 한글을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데 대한민국 상징의 하나인 광화문에 중국 글자인 한자로 쓰인 한자 현판이 달린 것을 보고 세계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걱정입니다. 따라서 한자 현판을 굳이 그대로 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16년 전 오늘(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 집행을 당한 순국일입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형제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안 의사의 유언은 116년이 지나도록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제가 철저히 은폐한 탓에 사형 집행 뒤 주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명확치 않았음이 가장 큰 까닭이지만 우리의 노력도 많이 모자랐다는 쓴소리에 할 말도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자 <통일뉴스>에는 단독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뤼순감옥 묘지 지하 2.1미터 아래 잠들어 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기사에는 이규수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특임교수가 1910년 9월 10일 '방외생'(일본 이름 고마츠 모토고)기자가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한 '안중근의 무덤'이라는 제목의 현장 취재 기사를 발굴해 안 의사 순국 116주기를 앞두고 공개했는데 이에는 안중근 의사의 주검이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마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방탄소년단(BTS)이 새로 내놓은 음반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울림소리가 앨범 중반부에 반영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듣고 감명 받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아이디어를 내 성사된 것으로, 그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음반 발매가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는 뒷이야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에밀레종 음원과 무늬가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수록곡과 협업 상품에 활용됐다고 20일 밝혔지요. 한국인이라면 애틋한 전설이 서린 1,300년 된 ‘에밀레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에밀레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했으며, 공식이름으로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인데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지요. 오래 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8도에 여제(癘祭)를 실행하였다. 이때 돌림병이 불길 같이 크게 일어나 죽은 사람이 10여만 명이나 되니, 중신을 보내서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고 또 임금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8도에 두루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영조실록》 71권, 영조 26년(1750년) 3월 23일 기록으로 온 나라에 돌림병이 돌아 1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에 ‘여제(癘祭)’ 곧 돌림병 귀신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2019년 11월 17일 중국에서 처음 보고된 범유행전염병이자 사람과 동물 모두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탓에 각 나라들은 문을 꽁꽁 걸어 닫고, 온 지구촌은 초비상 상태였습니다. 또한 제1급 신종감염병 증후군 코로나19 탓에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PHEIC) 3년 4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6억 8,700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약 69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죽은 사람이 2020년 950명, 2021년 5,030명으로 발표될 정도였습니다. 지금 문명이 크게 발달한 때에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춘분(春分)’으로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춘분점(春分點)에 왔을 때입니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습니다. 음양이 서로 반이란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세계를 함께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춘분에 특이한 것은 겨우내 두 끼만 먹던 밥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지금이야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고작이었죠. 그 흔적으로 “점심(點心)”이란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간단한 다과류를 말합니다.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이지요.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 하지만, 왕실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작이었습니다. 보통은 음력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2월부터 음력 8월까지는 점심까지 세 끼를 먹었는데, 낮 길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1445년) 4월 5일 기록에는 “편찬한 시가(詩歌)는 모두 1백 25장(章)이온데, 삼가 쓰고 장황(裝潢)하여 올라옵니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이를 시험하기 위해 의정부 우찬성 권제(權踶)ㆍ우참찬 정인지(鄭麟趾)ㆍ공조 참판 안지(安止) 등에게 맡겨 펴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0권을 이들이 올리면서 아뢴 말입니다. 여기 기록된 ‘장황’이란 말은 글과 그림에 종이ㆍ비단 따위를 붙여 미적 값어치를 높임과 동시에 실용성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서화처리법을 거쳐 족자ㆍ액자ㆍ병풍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종실록》 단종 1년(1453년) 7월 4일 기록에는 "일본의 중 도안(道安)이 일본과 유구(琉球) 두 나라의 베낀 지도(地圖) 4벌을 가져왔는데, 장배(粧褙)하여~”라고 하여 “장배”라고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기록에는 “장표”, “표배”, “배첩(褙貼)”이라는 말도 쓰였습니다. 그 가운데 간재집(艮齋集)에서는 “안감을 대어 풀을 붙이는 것을 속어에 배첩(褙貼)이라 이른다고 하였는데 병풍장, 배첩장(褙貼匠)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제 저 산모퉁이에서는 마파람(남풍)이 불어 완연한 봄입니다.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어김없이 온 나라는 곧 꽃대궐로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러 나들이하는 사람도 많아졌구요. 특히 예전엔 이즈음 들에는 쑥을 캐는 아낙들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의 잿더미 속에서 가장 먼저 자란 식물일 정도로 약이 되는 먹거리지요. 그 쑥으로 만든 쑥개떡, 쑥버무리, 쑥국은 우리가 즐겨 먹는 시절음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애탕국’이란 것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애탕국은 부드럽게 다져 양념한 소고기에 쑥을 잘 섞어 먹기 좋은 크기로 완자(잘게 다진 고기에 달걀·두부 따위를 섞고 동글게 빚어 기름에 지진 음식)를 빚어 끓인 궁중음식입니다. 혹시 강한 쑥향 때문에 보통의 쑥국에 거부감이 있었던 사람이더라도 애탕국은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지요. 애탕국은 글쓴이를 모르는 조선 후기의 요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 1917년 방신영(方信榮)이 쓴 《조선요리제법 朝鮮料理製法》(新文館 발행), 이용기(李用基)가 1924년 쓴 요리서 《조선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전조 때에 중국에서 가져온 편종에는 그림이 있어 사치스럽고 화려하였사오며, 병술년에 중국에서 내린 편종(編鍾)은 그림이 없으며 질박하고 검소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느 종의 체제에 따라서 주조하오리까. 제향(祭享)에는 검소한 악기를 쓰고 조회에는 화려한 악기를 쓰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하였사오니, 청하옵건대 편종의 체제는 몸체의 두꺼움과 얇음을 좇아 주조하되 모두 병술년에 중국에서 내린 편종의 체제를 따라서 주조하게 하소서.” 이는 《세종실록》 43권, 세종 11년(1429년) 3월 13일 기록으로 예조에서 중국 편종의 체제에 따라 종 주조하기를 건의했다는 내용입니다. 편종(編鐘)은 16개의 구리종을 두 단의 나무틀에 매달아 각퇴 곧 쇠뿔로 만든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한국의 전통 타악기입니다. 주로 궁중의 제례악이나 당악 계열의 곡에서 연주되며, 웅장하고 날카로운 금속성 음색이 특징입니다. 16개의 종은 크기와 모양이 모두 같지만, 두께에 따라 음높이가 결정됩니다. 종이 두꺼울수록 높은음이 나고, 얇을수록 낮은음이 납니다. 12율(기본음)과 4청성(높은음)을 합쳐 모두 16음을 낼 수 있습니다. 틀의 양 끝에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승만은 외교를 구실로 하여 직무지를 마음대로 떠나 있은 지 5년에, 바다 멀리 한쪽에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난국수습과 대업의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허황된 사실을 마음대로 지어내어 퍼뜨려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하였고(가운데 줄임)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 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 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이오 살아있는 충용의 소망이 아니라. 고로 주문과 같이 심판함.”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제42호에 나온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 사유 가운데 일부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7년(1925년) 3월 18일에 탄핵되고, 23일 면직됐습니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있는 것처럼 지금 정부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대한민국 역사의 첫 탄핵 대통령은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상해에서 임시정부와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허다한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도 쌀을 사지 못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시장의 장사치들과 쌀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서로 호응하여 암암리에 약속한 흔적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법에 저촉되는데도 이 무리를 용서한다면 장차 소요스러움을 진정하고 궁핍한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없으니, 청컨대 각 쌀가게의 우두머리들을 형조로 하여금 일체 모두 잡아다가 사실을 조사한 뒤에 섬으로 귀양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순조실록》 33권, 순조 33년(1833년) 3월 10일 기록으로 장사치들이 쌀값을 짬짜미하여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이 장사치들을 귀양보내자고 비국(備局, 임진왜란 뒤 으뜸 정부기관)이 임금께 아뢰는 내용입니다. 최근 밀가루값을 짬짜미했던 기업들에 정부가 큰 과징금을 부과할 것으로 보이고, 또 미국ㆍ이란 전쟁에 기름값이 폭등하는 것에 정유사 또는 주유소의 짬짜미를 의심하며, 정부가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판매자 사이에 상품 또는 용역의 값이나 생산 수량, 거래 조건, 거래 상대방, 판매 지역을 제한하고, 이러한 담합 행위를 통한 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