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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1919년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9년 오늘(411)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9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나라안팎 애국지사들 사이에선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는 수립 과정과 주체가 명확히 알려진 대표적인 임시정부들이었지요. 그 가운데 상해임시정부는 19194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하게 우리 겨레의 임시정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날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지요. 현재 한국 정부는 4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하고 있으나, 광복회에서는 413일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공문을 뿌린 날이고, 실제 결성일은 411일이라며 임정 수립일을 411일로 바로잡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후 1945815광복까지 상해[上海, 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1939]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피눈물 나는 광복운동을 펼쳤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독립전쟁은 국제외교와 의열투쟁 그리고 광복군창설 등의 군사활동으로 이루어졌지요. 특히 광복군을 창설하여 일본군과의 전쟁을 벌여나갔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이후엔 군대를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얀마사이판필리핀 등지에 파견하였고 1945년에는 국내진입작전의 하나로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습니다.

 

광복 이후 임정 측은 임시정부 자격으로 귀국하려 했지만, 미 군정청이 받아들이지 않아 지도부는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임시정부의 내각은 물론 정책도 계승되지 못했지요. 귀국 이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서울 중구 새문안로 경교장에 임시정부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이승만이 배후라고 알려진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당해 임시정부는 그 운명을 다했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분명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대한민국의 지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