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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백년편지] 임시정부 설계자 조소앙 선생님께 -김삼웅-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걸출한 인물이 많습니다. 민족수난기에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입니다. 애국지사 중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분들도 적지 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조소앙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업적으로 대표적인 것만 들면 △ 지난 해 100주년을 맞은「대동단결선언」과, 우리나라 3대 독립선언서의 하나로 꼽히는 1919년의「대한독립선언」기초, 상하이 임시정부수립 당시 ‘대한민국’ 국호제안,「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헌법)」기초, 임시정부의정원의원ㆍ국무위원ㆍ외교위원장, 삼균주의사상가, 대일선전포고문작성, 대한민국건국강령작성 등이 꼽힙니다.

 

 

선생님은 독립운동사는 물론 민족사에 불멸의 문헌으로 남은 주요한 각종 ‘선언문’을 작성하고, 풍찬노숙의 독립운동가로서 생애를 바쳐 삼균주의사상을 연구하고, 그 결과 삼균주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뿐만 아니라 좌우 독립운동 진영의 이념적 기틀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때 무장투쟁 단체인 대한독립의군부의 부주석을 역임하는 등 결코 문약하지 않은 상무정신의 소 자이기도 하였지요.

 

해방 후에는 삼균주의에 바탕을 두고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에 참여하고, 피랍되어서는 북한에서 중립화통일론을 제기하였지만, 남북 양쪽에 포진한 외세와 분단세력, 권력지상주의자들에게 선생님의 사상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전반 민족의 수난기에 사상가 조소앙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 독립운동사는 매우 건조했을 것입니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지만, 세계 피식민지 해방운동사에서 우리 임시정부처럼 일관되게 이념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광복운동을 전개한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 중심에 선생님이 자리잡고 있었지요.

 

그는 사상가로서만 아니라 정치가ㆍ외교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열강의 한국에 대한 ‘위임통치’에 반대 이론을 전개하면서 대응해 나간 활동을 보면 선생님의 활동과 역량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가정이지만, 임시정부가 개인자격이 아니고 정부자격으로 환국하여 국민의 지지 속에서 해방정국의 통치기관이 되고 삼균주의가 새나라 정부의 국책으로 채택되었다면 한국의 방향은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또한 통일정부수립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일반의 여망대로 이승만이 초대 국무총리에 조소앙선생님을 지명했더라면 6ㆍ25전쟁을 막거나, 민족주의자와 중도파 인사들의 대량 납북 또는 월북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이승만의 독선과 독재는 크게 억제되었을 것입니다. 이 같은 가정에 상도할 때 조소앙선생님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입니다.

 

조소앙선생님은 해방 후 삼균주의학생동맹을 창설하면서 “삼균주의야말로 모든 인민이 골고루 배우고 골고루 살고 골고루 먹는 유기철학에 의한 절대진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균등사상을 풀어 설명한 것이지요. 민족자결의 독립국가, 민주정부, 균등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정치이념을 ‘균등’이란 단어만을 떼내어 사회주의, 회색주의자로 매도하는 식자들도 있었지요. 그 무지함과 협량함이 민망할 지경입니다.

 

선생님의 균등주의는 소비에트나 북한식의 ‘균등’이 아닌 독립국가, 민주정부의 전제로 가능한 정책이고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목표로서의 균등’이 아니라 ‘수단가치로서의 균등’이지요. 출발점이 다른 달리기 경주가 불공정하고 결과가 뻔하듯이, 수단이 균등하지 못하면 목표가 균등할 리 만무하지요. 예컨대 교육기회가 균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력ㆍ경제력의 균등이 불가능한 이치와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권력층이나 재벌가 자녀와 빈곤층 자녀의 교육의 기회가 같지 않듯이 말입니다.

 

저는 2006년 7월 평양 소재 애국열사릉의 선생님 묘소 앞에서,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된 루소가 되었을 것이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면「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미국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퍼슨이 되었을 것이고, 중국에서 태어났으면 민족주의ㆍ민권주의ㆍ민생주의의 삼민주의를 내건 국부 손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학식과 경륜을 살리지 못한 민족사의 불운 앞에 한동안 발길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남북관계가 풀리고 있어서 다시 한 번 묘소라도 찾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다양한 외래문화와 외래사상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민족적 정통성 속에 용해시키고, 인류적 보편성과 민족적 특수성을 통합하여 한민족의 독자적이고도 진보적인 삼균주의 사회이론을 체계화시켰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사상가이고, 해방정국에서 최후의 경륜가였습니다. 175센티의 키에 70킬로가 넘는 (해방 후) 건장한 체구만큼 순금과도 같은 무게의 함량을 지닌 사상가이자 경세가였지요. 20세기 한 시대를 통털어 한국에서 선생님 만큼 폭넓은 식견과 정책과 경륜 그리고 투지를 지닌 인물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 생각하게 됩니다.

 

현행 헌법에는 선생님이 기초하여 1944년 4월 22일 임시정부의「헌장」으로 채택된 조항과 유사한 내용이 상당히 포함되고 있습니다. 제1장의 총강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조항은 그대로이고 권리와 의무, 평등권 등에서 유사점이 적지않습니다.

 

오늘에 ‘삼균주의 원칙’을 그대로 실행할 수는 어렵겠지만, 다시 개헌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ㆍ경제ㆍ교육균등의 기본정신은 반드시 살려 나갔으면 싶습니다. 빈부격차ㆍ양극화의 ‘99 대 1’의 현상이 지나치게 심화되고 갈수록 폭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 한 울타리에서 ‘양과 호랑이의 자유경쟁’으로 표상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은 헌법정신과도 배치되는 현상입니다. 국정농단과 부패로 수감된 이명박이 박근혜 정부는 ‘규제철폐’라는 구실 아래 호랑이를 가두었던 울타리의 말뚝을 많이 뽑아냈지요.

 

지금 한국사회는 상위소득 1%가 국부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소득불균형의 위험사회가 되었습니다. 위가 지나치게 무겁고 아래가 가벼우면 침몰하는 것은 세월호 뿐만 아니지요. 그래서 더욱 선생님의 삼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세워진 선생님의 어록비에는 “삼균주의-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제도와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호혜 평등으로 민주국가 건설하자”는 내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선생님의 사상을 집약한 것이지요.

 

해방 후 선생님이 정치현장에 뛰어들면서 사회당을 창당할 때의 비화가 전합니다. 다수의 간부들이 ‘한국사회당’이란 당명을 주장하자 선생님께서는 ‘사회당’이라 해야한다는 설명에서, 다시 한 번 국제주의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삼균주의를 실천해 나가려는 마당에서 이를 굳이 한국에 국한시킬 이유가 없다. 이는 사람 대 사람, 민족 대 민족, 국가 대 국가의 평등한 관계회복을 통해 세계 일가를 이룩하자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굳이 ‘사회’ 자(字) 위에다 ‘한국’을 붙여 지역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사상체계는 민족주의의 터전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지만, 안으로는 봉건적ㆍ신민적(臣民的) 굴종의식을 청산하고, 밖으로는 제국주의ㆍ침략주의를 분쇄하면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 3균에 기본하는 고루 잘사는 민주공화국가를 세우려는 국제주의의 보편적 철학사상이였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고유사상과 중국의 노장사상, 영국노동당의 정책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고드원ㆍ푸르동 등 아나키즘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이념의 용광로였지요. 그 용광로에서 단련되고 정제된 것이 3균주의 사상이고 실천논리가, 좌우합작ㆍ남북협상ㆍ통일정부수립ㆍ중립화통일론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철학과 정책은 우리의 ‘지나간 미래상’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뒤늦게나마 선생님의 철학과 사상, 경륜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살아있는 겨레의 사표이십니다.